오는 17일 쿠팡 개인정보 유출 청문회가 예정됐지만, 정작 쿠팡의 대관 실태를 파악할 수 있는 직접적 자료 중 하나인 대관 직원들의 국회 출입기록은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 대관 활동의 대상인 국회의원들이 관련 자료를 쿠팡에 요청하지도 않았고, 국회 사무처도 관련 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범석 의장은 기업가나 경영자가 아니라 로비스트, 브로커”(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라는 비판이 국회에서도 제기된 만큼, 국회가 먼저 쿠팡의 대관 실태를 밝히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쿠팡은 최근 5년간 정·관계 인사 62명(국회 출신 48명·규제 기관 출신 14명)을 영입했다. ‘공룡 대관 조직’을 꾸린 쿠팡은 여의도와 강남에 상주하며 입법·행정부를 집중 공략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정보 유출 사고와 노동자 사고가 반복되는 배경에 쿠팡의 대관 중심 경영이 있다는 비판이 커지자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도 지난 8일 행정부 내 쿠팡 전관에 대한 전수 조사를 지시한 상태다.
그러나 정작 쿠팡 청문회가 열리는 국회에 대한 쿠팡의 대관 실태를 알 수 있는 자료는 공개 여부가 불투명하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 9일 오전 전체회의를 열고 422건의 자료를 오는 12일까지 제출할 것을 쿠팡에 요구했다. 여기엔 쿠팡 대관 조직 신상정보 자료 요청 등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쿠팡 내부 사정에 밝은 업계 관계자는 “영업 기밀이나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자료가 대부분이라 쉽게 제출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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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권리 차원에서 쿠팡 의원실 출입기록 공개해야”
또한 국회가 자체적으로 확인할 권한이 있는 자료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다. 국회는 국회법 128조 1항에 따라 의결을 거쳐 쿠팡 직원의 의원회관 출입기록(일시·방문 의원실)을 국회사무처를 통해 받아볼 수 있다. 하지만 국회는 사무처에 쿠팡의 의원회관 출입기록을 요구하지 않았다. 국회사무처는 이를 근거로 “국회 의결 없이는 연도별 출입건수와 같은 통계도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반복 중이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단순 통계라도) 다른 정보와 결합하면 특정인임을 알아볼 우려가 있어 공개할 수 없다는 해석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반면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속 이리예 활동가는 “특정인임을 알아볼 수 있는 정보는 계좌번호·주민등록번호·유심 번호 등을 뜻한다”며 “단순 출입 통계는 특정 개인과 관련성이 없고 식별이 어려운 정보이며 공익적 이익이 더 커서 공개할 수 있는 정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쿠팡 등 각종 기업의 대관 실태 공개는 로비 대상인 정치권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실정이다. 그러나 한 과방위 소속 여당 보좌진은 “쿠팡 대관 조직에 민주당 사람이 많이 가서 청문회를 벌집 쑤시듯 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설령 마음에 걸리는 게 있더라도 국민 알 권리가 우선이므로 국회의원들이 선제적으로 공개를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 출입기록 공개를 둘러싼 논란은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23년 게임사 ‘위메이드’ 직원이 김남국 전 의원을 상대로 입법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사무처는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출입기록 공개를 거부했다. 결국 여론에 밀린 국회가 여야 합의로 의결한 뒤에야 사무처는 위메이드 직원이 여야 의원실 8곳을 총 14번 방문했다는 자료를 공개했다. 다만 위메이드 직원의 김 전 의원실 방문 기록은 확인되지 않아 입법 로비 의혹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쿠팡뿐 아니라 각종 대기업이 대관 조직 규모를 날로 키우는 만큼 ‘로비스트 합법화’ 논의가 불가피하단 주장도 나온다.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로비 활동이 등록도, 규제도 없이 이뤄진다는 점을 지적하며 “미국에서는 로비스트 등록·신고·공개 체계가 정착돼 있다”며 “우리도 로비 활동을 투명하게 관리할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과방위 소속 이준석 의원도 “쿠팡의 의원실 출입기록 공개는 당연하고, 이참에 로비스트 합법화도 고민해봐야 한다”며 “등록된 사람이 국회를 출입하며 언론 감시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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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정부 법 개정에 형사처벌 까다로워져
한편 국회에서 2년 전 법을 바꾸는 과정에서 개인정보 유출 기업에 대한 처벌을 낮춘 탓에 쿠팡에 대한 수사나 처벌이 과거보다 까다로워졌단 지적도 일각에서 제기된다. 2023년 2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당시 ‘안전성 확보 등 개인정보 보호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은 자’에 대한 형사처벌 조항이 삭제됐기 때문이다. 대신 이를 과징금(매출액의 최대 3%)으로 대체하도록 만들었다. 이같은 내용은 2020년 12월 발의된 윤영찬 민주당 의원안과 2021년 9월 정부가 직접 제출한 개정안에 포함돼 있었다.
법안 논의 과정에서 의원들은 해당 부분을 쟁점화하지 않았다. 당시 법안 소위에 참여했던 야당 의원은 통화에서 “형벌은 완화하고 기업의 경제적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사회적 흐름이 있었다”고만 설명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처벌이 낮아진 탓에 쿠팡의 관리 부실에 대한 수사는 쉽지 않은 상태”라며 “기업 입장에선 대표 등 책임자 징역 대신 회삿돈으로 내는 과징금 처분을 훨씬 선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개인정보를 취급하는 기업도 돈만 내면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선례가 남도록 국회가 조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