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그래서 요즘 진행 중인 AI 거품 논쟁에 관한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다. 책의 원제는 『AI Snake oil』, 즉 ‘뱀기름 AI’다. 뱀기름은 과거 미국에서 만병통치약 또는 자양강장제로 팔리던 가짜 약이다. 우리도 예전에 “이것이 무엇이냐~”로 호객하던 ‘뱀장수’들이 있었으니, 사람 사는 법은 동서양이 매한가지다. 그러니 번역본 제목을 ‘뱀장수 AI’나 ‘AI 만병통치약’ 정도로 했으면 나았겠다는 생각이다. 저자들이 서두에 밝히고 있듯 AI에 대한 과대평가나 부정적 영향력에 대해 알려 궁극적으로 AI 버블을 막는 것(대놓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이 책의 목적인 까닭이다.
AI가 대중의 지대한 관심을 끈 것은 2022년 챗 GPT가 출시된 후부터다. 개발사인 오픈 AI가 리서치 프리뷰(정식 출시 전 시험 공개) 형식으로 발매한 이 제품이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면서 챗 GPT는 두 달 만에 앱 사용자 수 1억명을 넘겼다. 이와 함께 이미지 생성 AI들이 쏟아내는 이미지와 영상들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내가 지브리 만화 주인공이 되고,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 스타워즈 예고편이 등장하니 안 그럴 수 있겠나.
이런 AI들이 갈수록 더 지능화되고 자연스러워지면서 일상에서의 사용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걸로만 봐서는 버블이란 말이 실감 나지 않는데, 그것은 AI라는 코끼리의 발만 더듬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하나로 뭉뚱그리는 오류를 범하지만 AI 종류는 수없이 많다. 이 책은 그 중 사회적 영향력이 큰 생성형 AI와 예측형 AI, 콘텐트 조정 AI에 대해 살펴본다. 챗 GPT 같은 것이 생성형 AI다. 생성형 AI보다 훨씬 오랜 역사를 가진 예측형 AI의 성과는 그야말로 재앙에 가깝다.
미국 최대의 의료정보시스템 회사인 에픽은 2017년 미국인 2억5000만명분의 정보를 토대로 패혈증을 감지하는 AI 제품을 출시했다. 병원 수 백 곳에서 그 시스템을 채택했고 에픽은 자사 모델이 패혈증으로 인한 사망률을 크게 줄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시간 대학의 연구 결과는 충격이었다. 에픽AI의 정확도는 63%에 불과했다. 이는 동전 던지기보다 조금 나을 뿐이라는 뜻이다. 저자들은 인간의 사회적 미래는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며 아무리 많은 데이터를 넣어도 이 한계를 극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낸다.
콘텐트 조정 AI도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다. 2018년 미 의회에서 가짜 뉴스, 테러 콘텐트, 증오 발언 등에 대한 대처 방안에 대해 질문받았을 때 마크 저커버그는 문제성 있는 게시물을 탐지, 봉쇄할 AI 도구를 만들고 있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저커버그 역시 ‘뱀기름’을 팔고 있었다. 저커버그는 직접적으로 해롭진 않지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는 콘텐트를 금지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참여 패턴”이라고 불렀다. 그런 콘텐트일수록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는 점을 무시하지 못한 것이다. 소셜미디어가 콘텐트 조정에 실패하는 것은 시스템 문제가 아니다.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생성형 AI라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나도 여러 번 경험한 AI의 뻔뻔한 거짓말은 애교 수준이다. 법정에서 인용될 정도로 그럴싸한 가짜 판례를 만들어내거나, 화가와 사진가들의 작품을 아무런 보상 없이 도용하는 문제는 지체할 수 없는 과제다.
AI는 이윤에 목을 매는 기업과 연구자, 전문지식이 없는 언론, 유명인사들의 설레발, 대중의 인지 편향이 뒤엉켜 ‘뱀기름’이 된다. 하지만 앞으로 AI가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렵다. 어떤 종류의 기막힌 AI가 새로 나올지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뱀기름’을 가려내는 눈이 필요하다. 이 책은 AI가 인류를 절멸시킬 것이라는 공포와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환상 사이에 놓인 올바른 길을 밝혀주는 안내서다. 시사지 ‘타임’이 선정한 ‘AI 분야 가장 영향력 있는 컴퓨터 과학자 100인’에 포함된 두 저자는 그 역할을 책 한 권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normaltech.ai’라는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다.
이훈범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