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첫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가 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렸다. 이번 회의는 전임 정부의 합의 사항을 이어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지만, 미 전략자산 전개와 관련한 문구가 빠지는 등 내용적인 측면에선 다소 후퇴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12일 국방부에 따르면 제5차 NCG 회의에는 김홍철 국방부 국방정책실장과 로버트 수퍼 전쟁부(옛 국방부) 핵억제·화생방 정책 및 프로그램 수석부차관보대행이 한·미 대표로 각각 참석했다. 양측 대표단에는 국방부·외교부·군·정보 당국자들도 참여했다.
한·미는 사후 배포한 공동언론성명에서 김 실장이 “한국이 한반도 재래식 방위에 대한 주도적 역할을 수행해 나갈 것임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수퍼 대행은 “핵을 포함한 미국의 모든 범주의 군사적 능력을 활용해 한국에 대해 확장억제를 제공하는 공약”을 재확인했다.
NCG 회의에서 한국의 재래식 방어 역할이 강조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지역 동맹국에게 재래식 억제력 분담을 확대하려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기조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조창래 전 국방정책실장은 “전반적으로 지역 위협에 대해 동맹국들이 우선적으로 대응하라는 트럼프 정부의 대외 정책 기조가 NCG까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짚었다.
또 3·4차 NCG 공동발표문에 들어갔던 “미국 전략자산의 정례적 가시성 증진”이란 문구가 이번엔 빠졌는데, 여기에는 전략자산 전개를 비용 측면에서 접근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각이 반영됐을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핵 공격 상황시 한국의 재래식 전력과 미 측 핵 전력을 통합해 운용한다는 취지의 "공동의 접근" "공동 기획” 등은 “협력적 의사 결정”으로 반영됐는데, 수위가 낮아졌다고 볼 여지가 있다.
양측이 NCG가 한·미 동맹과 확장억제를 강화하기 위한 “지속적인 양자 협의체”라는 데 공감하고, 내년 상반기 제6차 NCG 회의 등 향후 임무 계획을 승인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한·미 간 정보 공유와 핵·재래식 통합(CNI), 정부 모의연습(TTS)과 군 당국 간 도상연습(TTX) 등 확장억제 관련 연습·훈련도 지속하기로 했다.
일각에선 올해 들어 한·미가 동시에 정권 교체기를 맞으며 조 바이든·윤석열 정부의 유산인 NCG 체제가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지만, 한·미 새 정부는 이를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여러 차례 확인했다. 지난달 발표한 한·미 정상회담 공동설명자료(조인트 팩트시트)에는 “양 정상은 NCG를 포함한 협의 메커니즘을 통해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 전쟁부 장관도 지난달 개최한 한·미안보협의회(SCM)를 통해 NCG 회의를 지속하기로 했다.
한편 올해 1월 10일 4차 NCG 회의 공동 발표문에는 “미국 또는 동맹국에 대한 북한의 어떠한 핵 공격도 용납할 수 없으며, 정권 종말로 귀결될 것”이라며 강한 대북 경고성 메시지가 담겼는데, 이번 성명에선 이런 표현이 빠졌다. 당시는 바이든 정부의 마지막 NCG 회의였다. 반면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대화 재개 의사를 여러 차례 밝힌 만큼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표현은 피한 것일 수 있다.
국방부는 이번 NCG 회의를 계기로 범정부 TTS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이와 관련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올 하반기 이후로 진행한 CNI TTX, NCG TTX도 비공개로 진행했다는 설명인데, 이를 두고 군 안팎에선 북한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