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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은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 자랄까...베스트셀러 작가의 결핵 르포[BOOK]

중앙일보

2025.12.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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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결핵협회가 브레드이발소와 협업해 발행한 2025 크리스마스 씰. 한국인 3명 중 1명이 잠복 결핵 감염자다. 연합뉴스
모든 것이 결핵이다
존 그린 지음
정연주 옮김
책과함께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감염병, 결핵에 대한 논픽션이다. 그런데 저자는 병리학이나 보건의료 쪽 관계자가 아니다. 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인 청소년 소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을 쓴 존 그린이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왜 결핵에 꽂혔을까?

이야기는 그린이 의료 지원 활동을 위해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을 방문, 결핵에 걸린 한 소년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아홉 살 가량의 쾌활한 아이처럼 보였던 헨리가 실은 17세의 다제내성 결핵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저자는 결핵의 잔혹함과 세계의 불평등에 눈뜨게 됐다. 다제내성 결핵은 주요 1차 치료제에 모두 내성을 지닌 결핵균에 의해 발생하는 난치형 결핵이다. 헨리의 상태는 심각했지만, 그린의 주선으로 선진국에서 널리 쓰이는 치료 프로토콜을 시에라리온 최초로 실시한 덕분에 회복할 수 있었다.


책은 헨리의 치료 여정을 따라가면서, 결핵의 생물학적 기원과 문화적 이미지, 그리고 치료제와 치료법이 어떻게 발견되고 발전해 왔는지를 교차 서술한다. 한때 결핵은 '문명인의 병'으로 불리며, 미학적으로 낭만화됐다. 지금도 살아 있는 사람의 4분의 1은 결핵균에 감염된 상태다. 대개는 평생 잠복 상태로 남지만, 이 중 최대 10%는 발병한다. 불치병도 아닌데, 여전히 매년 100만 명 이상이 결핵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결핵은 단순히 의학적 현상이 아니라, 불평등ㆍ빈곤ㆍ낙인ㆍ정치구조가 얽혀 만들어낸 사회적 병이다. 저자는 숫자 뒤에 놓인 치료 접근성의 격차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질병은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 자라날까? 이미 있는 치료제와 치료법을 어떤 방식으로 누구에게 제공할까? 공공자금으로 개발한 치료약을 거대제약회사가 독점 공급하는 작태도 있지만, 고의 없이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내성균의 발생을 억제하기 위해 한 지역에서 완성된 치료 프로토콜이 다른 지역에서는 내성균을 증가시키기도 한다. 여건이 맞지 않아 치료를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이 늘기 때문이다.

결핵은 통제 가능해진 ‘옛날 병’도 아니며, 감염이 환자 개인의 잘못도 아니다. 근대 병리학의 창시자인 루돌프 피르호가 19세기 중반에 남긴 통찰, ”질병의 분포와 결과는 사회구조와 정치적 의사결정에 깊이 연관돼 있다“는 여전히 유효하다. 결핵균은 매우 느리게 성장하며, 병원균을 잡아먹는 대식세포 내부에서조차 살아남아 증식한다. 이런 독특한 생존 전략 때문에 사회 경제적 난점을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책은 이런 생물학적 특성을 자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이 책의 핵심 가치는 결핵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기보다, 결핵이라는 질병을 의료기술이라는 좁은 틀을 넘어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저자는 동생과 함께 구독자 833만 명의 과학 유튜브 채널인 ‘SciShow’를 키웠다. 이관수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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