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피디씨' 채널에는 "한고은 부부, 쌍으로 우는 거 어떤데?"라는 제목의 영상이 업로드 됐다.
이날 한고은은 자신의 유년시절에 대해 "나의 10대와 20대는 먹고 살기 바빴다. 나의 유년생활은 정말 물리적으로 어려운 시간이었고 엄마, 아버지의 부재가 많았다. 그래서 엄마가 아침에 일을 나갈때 감자를 이만큼 쌓아놓는다. 그러면 엄마가 밤에 올때까지 그거 먹으면서 기다리는거다"고 털어놨다.
그는 "불을 우리가 석유 곤로를 썼지 않냐. 옛날에는. 성냥을 켤 줄 모르고 성냥 켜는걸 엄마가 금지했다. 위험하잖아 애들만 있으니까. 항상 엄마를 어두컴컴하게 기다리던 기억이 되게 많다"고 돌이켜봤다.
이어 "그리고 13살때 미국에 이민을 갔는데 그렇게 달라진 건 없었다. 그래도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알바를 많이 했다"고 밝혀 놀라움을 안겼다. 그는 "그렇게 어릴때?"라고 놀라자 "13살때. 13살이 왜 어려? 한국나이로 14살인데?"라고 어리둥절해 했다.
[사진]OSEN DB.
한고은은 "나는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일했다. 학교 매점 같은곳이다. 왜냐면 그렇게 언어가 지유롭지 않았고 어리니까 캘리포니아는 운전해야되는데 차도 없고 그러다 보니 할수 있는 일들이 한정적이었다. 항상 그렇게 일을 하면서 살았는데 우리 엄마가 나중에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 엄마도 일을 하셨고, 어느날 일 하고 집에 들어오면 냉장고 문을 열어보면 냉장고가 차있었다더라. '고은이가 오늘 돈을 좀 받아구나' 이렇게 생각하셨다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먹을 게 없었다. 먹고 살기 위해 우린 일을 했다. 당장 다음주에 뭘 먹지? 어떻게 살지? 언제 우리는 이 쳇바퀴같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며 "어느정도 내가 컸을때는 돈을 더 많이 벌수있으니까 주단위가 아니라 월단위로 ‘다음달은 어떻게 살지?’ 했는데 이것만으로도 감사했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여기서 벗어날수가 있을까?'이런 생각이 가장 컸던 것 같다. 그리고 한국에 와서 돈을 벌면서 다 엄마도 내가 모시고 이렇게 저렇게 집안을 정리해 나간게 내 일이었다. 그런 데에서 지쳐갈 때쯤에 결혼하게 된 것"이라고 밝혀 안타까움을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