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는 친기업 정부인가. 이재명 대통령의 친기업 메시지를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지난달 대기업 오너들 앞에서 이 대통령은 “친기업·반기업 이런 소리를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정부는 기업인들이 기업 활동을 하는 데 장애가 최소화되도록 정말 총력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첨병은 기업”이라며 국내 투자와 고용을 가로막는 규제를 과감하게 철폐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기업인 귀에 착 감기는 멘트가 아닐 수 없다.
여당도 재계 목소리를 열심히 듣긴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엊그제(11일) 경제 8단체 부회장단과 정책 간담회를 했다. 여당이 추진하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상법 개정과 배임죄 폐지가 주요 의제였다. 재계는 자사주 소각을 강제하면 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무방비로 노출될 것으로 우려하며 속도 조절을 요청했다. 하지만 여당은 자사주가 대주주의 지배력 강화 수단으로 쓰이지 못하도록 3차 상법 개정안을 연내 처리할 방침이다.
이재명 정부는 ‘실용적 시장주의’를 표방한다. 정부 출범 이후 6개월 간 대통령·여당과 재계의 공식 회동은 20차례 이상 있었다. 하지만 재계의 우려와 하소연에도 불구하고 1·2차 상법 개정안부터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까지 기업 규제 성격이 강한 법안들이 잇따라 통과됐다. 주 4.5일 근로제와 정년연장 등도 추진 중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공격적으로 제시했다.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환경 모범생’ 소리를 들을지 몰라도 기업들은 죽을 맛이다. 지난 정부에서 소폭 내렸던 법인세는 원래대로 돌아간다. 정부 출범 이후 쏟아진 이 모든 정책이 기업들의 비용을 증가시키고 산업 현장의 혼란을 키울 것이다. 겉으로는 ‘친시장’을 외치며 간담회 하자고 기업을 부르지만 결국 재계를 들러리로 세우기만 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가 사흘 전 기업인과 함께 의욕적으로 발표한 반도체 전략도 마찬가지다. 2047년까지 700조원 이상을 투입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반도체 업계가 절박하게 요구했던 주 52시간제 예외 적용은 대책에서 빠졌다. 반도체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24시간 3교대로 연구하는 대만 TSMC와의 시스템 반도체 경쟁에서 우리 기업이 이길 수 있겠나.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주 6일 일하는 ‘996 근무’의 중국 추격자를 따돌리고 메모리 분야의 압도적 1위를 유지할 수 있을까.
한국은행은 올해와 내년, 내후년까지 한국 경제가 3년 연속으로 1%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위기가 아닌데도 이런 저성장이 이어진다는 건 우리 경제 근본 체력에 대한 심각한 경고다. 일본에서 1990년대 초반 3년 연속으로 2%를 밑도는 저성장이 이어졌고 ‘잃어버린 30년’은 그렇게 시작됐다.
대만 경제가 요즘 잘나가는 데에는 진보정부의 친성장·친시장·친기업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 2016년 재집권한 민주진보당은 기업 친화적 정책을 10년간 밀어붙였다. 2017년 반도체 등 첨단 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노사 합의 시 하루 12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근로법을 개정했다. 2022년에는 첨단 기업의 연구개발(R&D) 비용 세액공제율을 높이는 대만판 반도체법을 통과시켰다.
‘정치인은 입이 아니라 발을 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정치인의 말(입)이 아니라 실제 행동(발)을 통해 진정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업을 위한다는 백 마디 말보다 구체적인 정책 하나하나로 보여줘야 한다. 정부가 친기업 정책을 정말 잘하는지는 앞으로 기업의 고용과 국내 투자 성적표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