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충남 천안시 풍세면 주민들은 현관 앞에 놓인 상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상자엔 종합비타민, 레몬 생강청, 배도라지청 등과 함께 “이랜드 물류센터 화재로 불편을 드려 깊이 사과드린다. 건강 회복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편지가 들어 있었다. 지난달 16일 풍세면 통합물류센터 화재가 발생한 이랜드그룹이 보낸 물품이었다.
이랜드는 이 화재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의류·잡화 1100만여 점이 불에 타는 등 약 2400억원으로 추산되는 피해가 발행했다.
불이 옮겨 붙는 피해는 없었지만, 화재 당시 발생한 매캐한 냄새 등으로 불편을 겪은 주민들에게 사과의 뜻을 전한 것이다. 이랜드는 물류센터 인근 4500가구에 물품을 전달하고, 주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출장 건강검진도 제공했다.
풍세면 보성리의 김준진(76) 이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풍세면은 공업·제조 시설이 많아 과거에도 여러 차례 화재가 있었지만, 주민들에게 편지와 물품을 보낸 건 이랜드가 처음”이라며 “주민들이 고마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소셜미디어(SNS)엔 “호흡기·기관지 건강을 배려한 선물 구성 같다”, “‘돈쭐’(선행 기업 제품을 소비로 보답하자는 의미)을 내주자”는 댓글이 달렸다.
권상집 한성대 기업경영트랙 교수는 “사고 후 기업의 대응 태도가 소비자 신뢰 회복의 핵심인데, 이랜드의 사후 대처는 신속하고 적절했다”고 말했다.
최근 기업 경영에서 이른바 ‘감동 경영’이 ‘생존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소비자의 눈높이가 높아지면서다. 실제 지난 8월 대한상공회의소가 Z세대로 불리는 전국 만 17~28세 3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6.9%가 “조금 비싸더라도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실천하는 기업 제품을 구매하겠다”고 답했다.
이런 소비자 인식에 발맞춰 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도 다양해지고 있다. 매일유업은 2016년부터 독거노인 고독사 예방을 위한 ‘우유안부’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문 앞에 우유가 2개 이상 쌓이면 배달원이 즉시 매일유업 고객센터에 알리고, 관공서가 노인의 안부를 확인해 고독사를 예방한다. 매일유업은 ‘소화가 잘되는 우유’의 영업이익 10%를 ‘어르신의 안부를 묻는 우유배달’ 단체에 기부해 전국 6280가구에 가구당 연 365개의 우유를 지원한다.
농심은 2021년부터 취약계층 가구에 화재경보기를 설치하는 ‘세상을 울리는 안심캠페인’을 진행해 올해까지 누적으로 4만개의 경보기를 설치했다. 이 캠페인은 최근 세계라면협회(WINA)의 모범 사회공헌 사례로 선정되기도 했다.
권상집 교수는 “요즘 소비자들은 광고나 마케팅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며 “SNS로 정보가 실시간 공유되는 시대엔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착한 기업’만이 살아남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