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아프리카 가나서 온 첫 한국계 대사 최고조 "고국서 일해 영광"
한국계 주한 아프리카 대사는 최초…"기회의 땅 아프리카에 도전해달라"
(서울=연합뉴스) 김성진 박성진 기자 = 최고조(48) 신임 주한 가나대사는 "태어난 한국 땅에 가나의 대사로 다시 서 있다는 사실이 제 인생에서 가장 특별하고 영광스러운 순간 중 하나"라면서 "양국을 잇는 진정한 가교 역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첫 한국계 주한 아프리카 대사인 최 대사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가나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신임장을 제출하고 대사로 공식 업무를 개시한 12일 서울 한남동 주한 가나대사관저에서 진행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학생 때 서아프리카에 있는 가나에 갔다가 현지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정착한 뒤 사업가로 성공한 최 대사는 지난 10월 한국에 가나 대사로 부임했다.
최 대사는 자원의 보고이자 젊은 대륙인 아프리카는 기회가 있는 곳이라며 "한국 젊은이들이 그 기회를 첫 번째로 잡을 수 있도록 도전해 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최 대사와 일문일답.
-- 주한 가나 대사로 서울에서 임기를 시작한 소감은.
▲ 제가 태어난 한국 땅에, 가나의 대사로 다시 서 있다는 사실이 제 인생에서 가장 특별하고 영광스러운 순간 중 하나이다. 앞으로 한국과 가나가 서로에게 실질적인 기회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양국을 잇는 진정한 가교 역할을 다하겠다.
-- 첫 한국계 주한 아프리카 대사로 활동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 제 임명은 단순한 '출신의 다양성'을 넘어 한국과 가나가 서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여전히 강한 민족주의 정체성에 머물러 있는 여러 아프리카 국가에도 중요한 시사점이 될 것이라 믿는다.
-- 대사 임명 두고 가나 소셜미디어에서 찬반 논쟁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인데.
▲ 제 임명을 두고 이렇게 뜨거운 논쟁이 생길 것으로 솔직히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가나에 처음 왔을 때의 제 어린 모습, 현지 중학교에서 친구들과 활짝 웃는 사진, 저와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전한 '생생한 일화', 그리고 제가 선교적 나눔의 삶을 살아온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퍼져나가면서 여론이 변하기 시작했다.
-- 가나는 서아프리카 지역 내 민주주의가 안정적으로 정착한 국가로 평가받는다. 한국과 가나 양자 관계를 어떻게 평가하며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길 바라는가.
▲ 한국과 가나는 1977년 수교 이래 반세기 동안 일관되게 서로를 신뢰하며 관계를 발전시켜 왔다. 가나는 금 생산량 아프리카 1위 국가로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니켈·리튬·보크사이트 등 미래 산업의 핵심 광물도 다량으로 가지고 있다. 한국의 산업화 경험과 기술력, 가나의 풍부한 자원과 성장 잠재력이 만나면 양국 모두에게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확신한다.
-- 가나가 가장 희망하는 한국과 협력 분야는 어떤 것이며 진행 중 또는 추진 모색 사업을 소개해달라.
▲ 가나는 망간을 비롯한 핵심 광물을 보유하고 있고, 최근 배터리 및 전기차 생태계를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한국의 배터리, 자동차 산업과의 협력은 자원개발을 넘어 제조 및 고도화 단계까지 함께 도약할 수 있는 최적의 분야이다. 현대자동차의 가나 조립공장이 그 출발점이라 생각하며, 여기에 배터리 전·후방 산업 협력이 더해진다면 양국 모두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 한국은 지난해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처음 개최하며 대아프리카 외교를 점차 중요시하는 추세이다. 한국이 어떤 관점과 방향성을 가지고 아프리카와 외교를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가.
▲ 한국이 한-아프리카 정상회의를 출범시키며 아프리카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매우 환영할 만한 변화이다. 한국의 아프리카 외교는 존중과 상호성에 기반한 외교여야 한다. 아프리카와의 관계는 대한민국 국익과 글로벌 위상 강화에 직결된다.
-- 대사는 선교사 아들인데 어떻게 가나에서 살게 됐는가. 한국에서 유년 시절은 어떠했으며 가나에서 학창 시절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 춘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마치고 가나로 떠났다. 선교사 부모님을 따라 해외에서 자랐다. 중학교 1학년, 영어 한마디 못 하고, 문화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현지 친구들 사이에 유일한 외국인으로 섞여 살아가야 했다. 처음엔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깨달은 것은 그 속에는 호기심, 친근함, 그리고 따뜻함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오거나 미국 등으로 갈 생각은 없었나.
▲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이나 한국으로 떠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때 아버지께서 제게 "미국에 가면 수많은 한국인 중 한 명일 수 있다. 하지만 가나에 남으면 더 귀한 존재가 되어, 한국도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부모님의 조언을 따라 가나에 남기로 선택했다. 가나에 남았기에 저는 가나를 사랑하는 한국인, 한국과 아프리카를 잇는 다리가 될 기회를 얻었다.
-- 가나는 어떤 나라인가. 현지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 가나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 가나는 활력과 따뜻함이 가득한 나라이다. 평창올림픽 때 꼴찌를 하고도 기뻐 춤추며 환한 미소를 지었던 스켈레톤 선수 아콰시 프림퐁이 바로 가나의 모습이다. 가나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절로 흥이 나고, 에너지가 살아난다.
-- 가나에서 어떤 계기로 사업을 시작했으며 사업가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인가.
▲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나는 가나에 남기로 결정하고 가나 국적을 정식으로 신청했다. 지금의 이름인 Kojo(고조)도 그렇게 공식적으로 갖게 됐다. 사업가로서의 성공 비결은 정직하게, 그리고 끈기 있게 버텼다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인의 근면함이 저에게 큰 자산이 됐다. 또 하나 가장 중요한 비결은, 현지를 깊이 이해하고 현지 파트너를 존중하는 마음이었다.
-- 가나 정부 인사들과 어떻게 인맥을 쌓았을 수 있었나.
▲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가나에서 명문으로, 많은 동기가 정·재계 지도자 가정 출신이었다. 대학교 역시 가나 국립대학교에 다녔는데 존 마하마 현 대통령을 비롯해 가나의 주요 정치·사회 지도자들이 저의 대학 선후배들이다. 이 인연은 제 삶에서 매우 큰 힘이 돼주고 있다. 1992년 가나 문민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가나에는 총 5명의 대통령이 계셨는데 모두와 개인적 인연을 맺었다. 그중 3명의 대통령은 한국에서 특사나 고위 인사들이 오셨을 때 통역과 자문을 맡으며 양국 관계를 비공식적으로 돕는 역할을 해왔다.
-- 가나 국민에게 한국 이미지는 어떤가. K팝이나 K드라마가 현지에서 인기가 많은지 궁금하다.
▲ 가나에서 한류의 영향력은 무엇보다 강력하다. 가나에는 K팝 노래를 끝까지 부를 수 있는 젊은이들이 정말 많다. 가나의 몇 안 되는 TV 방송사들이 더 우수한 K드라마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2027년은 한국-가나 수교 50주년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K팝 아티스트가 가나에서 월드투어 공연을 진행하고, 현지에서 기억에 남을 따뜻한 기부와 사회공헌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현재 협의하고 있다.
-- 한국에서 가나 대사로 근무하시면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 저의 가장 큰 목표는 저를 낳아준 한국과 저를 키워준 가나가 가장 좋은 친구, 가장 든든한 동반자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다. 이른 시일 내에 마하마 가나 대통령의 한국 국빈 방문, 이재명 대통령의 가나 국빈 방문이 성사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
-- 아프리카 대륙에는 삶의 지혜를 담은 격언이 많다. 가나에서 쓰이는 속담 중 한국인에게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 가나 고유 언어는 아니지만, 아프리카 전체가 공감하며 사용하는 말 '우분투'(Ubuntu)이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이다. 이 말속에는 나보다 남을 먼저 세우는 마음, 비교나 경쟁보다 공동의 성장과 나눔을 선택하는 삶의 철학이 담겨 있다.
-- 아프리카를 비롯한 해외에서 성공을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부탁한다.
▲ 모두가 향하는 곳은 이미 자리 경쟁이 시작된 곳이다. 하지만 아무도 가지 않은 곳에서는 우리가 첫 번째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첫번째에게 기회는 가장 크게 열린다. 아프리카는 지금 바로 그 첫 번째가 될 수 있는 무대이다. 당신이 바로, 기회의 첫 이름이 되기를 바란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엇인가.
▲ 한국은 나를 낳아준 나라이고, 가나는 저를 키워준 나라이다. 그 두 나라 사이에서 다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저에게 큰 영광이며 사명이다. 가나는 한국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 한국도 가나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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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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