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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A요원 된 '독립영웅 딸'… LA식당 할머니 사장님의 반전 정체

중앙일보

2025.12.1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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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의 세포에서 우주까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해군 장교였던 안창호 선생의 장녀 안수산(오른쪽)이 동료들과 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 PBS 홈페이지 캡처]
고종 15년인 1878년 태어난 도산 안창호는 여러 독립운동가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로 손꼽힌다. 그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인 이혜련 역시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독립운동가로 추앙 받고 있어서, 서울 신사동의 가장 번화한 지역에 안창호의 호를 따서 만든 도산공원이 있고 그 도산공원 안에는 안창호·이혜련 두 사람이 안장되어 있을 정도다.

그렇다면 안창호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유명하기로만 따지자면 할리우드에서 조연·단역 전문으로 오랜기간 활동한 아들 안필립이 유명하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으로 더 놀라운 삶을 산 인물이 안창호의 장녀인 안수산이라고 생각한다.

1918년 안창호 선생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안필선, 안창호 선생, 안수라, 안필립, 안수산, 이혜련 여사. [사진 대한인국민회 기념재단]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한 후 20대 후반의 안수산 선생은 과감하게 미 해군에 입대해 장교가 되었다. 이후 선생은 적 전투기 공격용 포의 사격법을 교육하는 교관이 되어 장병들을 훈련시켰다. 안창호는 결국 가족들을 다시 만나지 못하고 광복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일본과 싸우던 그 당시의 미군을 훈련시키던 안수산 선생은 아버지의 원수들에게 불벼락 내리는 법을 가르친 셈이다.

그런데 안수산 선생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전쟁이 끝날 무렵 선생은 군 부대에서 통신 업무를 하게 되었다. 통신 부서에서 폭넓은 관심과 뛰어난 기량이 눈에 뜨였기 때문인지 곧 맡은 업무는 보안과 암호로 이어진다. 이 일에서도 안수산 선생은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 같다. 선생은 이 무렵 역시 정보 보안 관계의 일을 하던 프랜시스 커디라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기도 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자 안 선생의 삶은 또 다시 크게 바뀐다. 냉전 시대가 시작되면서 미국 정부에서 새로이 큰 사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영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현실판
냉전은 미국과 소련의 대립이 중심이었지만 그 두 나라가 직접 뜨겁게 전쟁을 치르며 싸우지는 않았다. “차가운 전쟁”이라는 그 말 뜻 그대로 두 나라는 세계 곳곳에서 서로의 공격 준비와 방어 준비를 가늠하며 간접적으로 세력을 경쟁하며 대결을 펼쳐 나갔다. 그렇다 보니 냉전의 핵심은 어떻게 우리의 정보가 상대방에게 새어 나가지 않는 지를 감시하고 어떻게 상대방의 정보를 몰래 가져 오는 지를 두고 다투는 정보 전쟁이었다.

안수산 선생은 NSA 창립 초기 남편과 함께 요원으로 선발되었다. 사진은 NSA 근무 시절의 안수산(앞줄 가운데). [사진 LA타임스 유튜브 캡처]
따라서 미국은 기밀 정보와 정보 보안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거대한 조직을 1950년대에 창설했다. 이 기관이 21세기가 되기 전까지는 그런 기관이 있다는 것조차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미국 국가안보국, NSA(National Security Agency)라는 조직이다. 그리고 그 NSA 창립 초기에 안수산 선생과 그 남편인 커디가 동시에 요원으로 선발되었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라든가 ‘7급 공무원’ 같은 영화를 보면 부부가 같이 비밀 요원이라는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는데 안수산 여사는 현실에서 바로 그런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지금도 NSA는 세계 최고의 보안 기술과 해킹 기술을 갖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내부에 세계의 온갖 비밀을 다 저장해 둔 곳이 있다는 등의 온갖 전설 같은 이야기도 무성하다. 안수산 선생은 긴 세월 성실하게 NSA에서 일했다고 하니,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이지만 만약 SF물에 나오는 것처럼 미국 정부가 몰래 외계인과 접촉한 적이 있다면 안수산 선생은 그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것이다.

안수산 선생은 공식적으로는 NSA에서 은퇴한 후에 LA 인근 지역에서 식당을 열어 생활하면서 100세까지 장수했다고 한다. 그리고 2015년 작고할 때까지 LA 지역의 한국인들과도 활발히 교류했고 한국 인사들과도 꾸준히 만남을 이어 갔다. 그러고 보면 정보 보안이 급격히 중요해진 20세기 중반의 초창기 보안 업무 종사자들 중에 안수산 선생 만큼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도 드물다. 그렇기에 나는 한국 정보 보안 업계의 상징이라고 할 만한 인물로 안수산 선생을 꼽는 것도 썩 잘 어울리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논리적으로 닿는 일이기도 하거니와 LA의 어느 식당 사장님이라고 하는 체구가 작은 어느 할머니가 사실은 독립 영웅의 자랑스러운 딸이며 전직 NSA 요원 출신이라고 하는 이야기만으로도 근사하게 정보 보안이라는 주제에 잘 어울리는 느낌 아닌가 ?

게다가 나는 그 삶을 돌아 보면서 좀 더 진지하게 정보 보안 문제의 성격과 특징에 대해 이야기할 점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먼저 해 보고 싶은 이야기는 동기 부여의 중요성이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에서는 힘 있는 집안에서 군대에 안 가려고 병역기피를 궁리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이 문제가 되었다. 그런데 안수산 선생은 전쟁이 터졌는데도 도리어 앞장서서 입대하려고 했다. 심지어 병역 의무가 없는 여성이었는데도 자발적으로 나섰다. 안수산 선생은 생전에 “나 같은 집안에서 태어나 자라나면 자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라고 이야기했다는데, 그 만큼 동기부여의 힘은 막강하다.

그러나 현대의 정보 보안 분야에서 그 만한 동기부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정보 보안이 잘 되고 있다면 정보 탈취도 없고 아무런 사고도 생기지 않는다. 다시 말해 보안 업무는 잘 하면 잘 할 수록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람의 감정이 “아무 일도 생기지 않으니 참 고맙다”라는 마음을 품기란 어렵다. 그러니 당장 계약을 따 오는 영업부서나 필요한 돈을 구해 오는 재무·투자 관련 부서에 비해 보안 업무가 큰 도움을 주고 있다고 느끼기란 어렵다. 그 담당자를 승진시켜 주고 성과급을 주겠다고 마음 먹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가끔 무슨 보안 사고가 생기면 여기저기서 누가 잘못 했는지 찾아 내서 혹독하게 처벌하라는 소리가 높아지는 일이 생기곤 한다. 그러다 보면 평소 가장 열심히 일한 보안 기술자가 “담당한 일이 많으니 저것도 네 담당이었네”라며 처벌을 뒤집어 쓰는 일도 가끔 일어난다. 이래서야 똑똑한 사람, 유능한 사람들 사이에 보안 일은 열심히 해도 좋은 평가는 못 받고 잘못 되면 죄만 뒤집어 쓴다는 생각이 돌게 된다. 결국 일 잘하는 사람들일수록 먼저 보안 업계를 떠나고 점점 더 아무도 보안 담당은 맡지 않으려 든다. 이런 문제를 극복하려면 뛰어난 사람들이 보안에 관한 일을 앞장 서서 보람차게 할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든, 제도적으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충분한 동기부여를 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은퇴 후엔 식당 운영하며 100세까지 장수
두 번째로 생각해 볼 점은 현대의 정보 보안 문제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종합적으로 함께 활동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점이다. 해킹이라고만 하면 컴퓨터 소프트웨어 전문가가 담당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요즘 해킹의 범위는 반도체의 특성을 이용해서 컴퓨터 속의 자료를 빼내는 물리학적인 작업에서부터 흔히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이라고 부르는 고전적인 사기 수법에 가까운 방식까지 다양하다. 더군다나 보안 범죄가 일어난 후 그 범죄자를 찾아 내서 범죄를 중단시키고 피해를 최소화 하는 일은 범죄 수사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정보 보안은 여러 방면의 지식이 동시에 필요한 일이다. 특히 정보 보안 범죄가 벌어졌을 때 그 범죄자를 잡는 일은 정부가 앞장서서 나서야만 달성될 수 있다. 대량의 한국인 개인 정보가 밀거래 되고 있다거나 커다란 해킹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가 익명이라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등의 상황을 보고 한탄하는 이야기들이 요즘 많이 들려 오는데, 도둑질과 살인범을 정부에서 그냥 두고 보지 않듯이 정부는 이런 문제의 해결에 더 적극적으로 책임감을 갖고 뛰어 들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투자도 대폭 늘려야 하고 여러 방면의 지식을 두루 지닌 전문가들이 같이 일할 수 있는 조직도 만들어야 한다.

안수산 선생이 해군에 입대하기 전에 하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 고등학교를 마친 후 전공은 사회학 계통이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훨씬 더 활발히 참여했던 일은 야구 선수로 뛰는 일이었다. 소프트볼 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쳤고 2루수로 경기에 나갈 때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정보 보안의 개척자로 손꼽을 만한 위인이 사실은 여자 야구 선수 출신이었다는 이야기다. 짐작해 보건데 끈질긴 체력과 팀웍을 만드는 재능으로 팀을 이끌면서 안수산 선생은 특출난 정보 보안 요원이 될 수 있지 않았겠나 싶다. 나는 이 또한 우리에게 알려 주는 것이 많은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곽재식 작가·숭실사이버대 교수. 공상과학(SF) 소설가이자 과학자. 과학과 사회·역사·문화를 연결짓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 괴물 백과』 『곽재식의 세균 박람회』 등을 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원자력 및 양자공학·화학을 전공, 연세대에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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