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의 홈구장 ‘에스콘필드 HOKKAIDO’에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 OB(올드 보이) 6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대호, 오승환, 우에하라 고지, 마쓰이 가즈오 등 한때 국제무대에서 치열한 라이벌전을 벌였던 레전드들이 우정을 나눴다. 경기 티켓은 매진됐고, 관중석은 3만 명이 넘는 양국 관객으로 가득 찼다.
오프닝 세리머니에서는 거대한 태극기와 일장기가 그라운드에 펼쳐졌다. 양국 선수들은 두 국기 사이에서 악수를 한 뒤, 모두가 어깨를 맞대고 ‘우정의 고리’를 만들었다. ‘애국가’가 흐르고, ‘기미가요’가 이어졌다. 곡이 끝날 때마다 큰 박수가 쏟아졌다.
중국 급부상이 바꾼 동북아 외교지형
‘한·일 드림 플레이어스 게임’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렸다. 국교 정상화 60주년인 올해 일본 외무성이 인정한 기념사업 중 하나였다. ‘경제·사회·예술·학술·스포츠·관광 등 폭넓은 분야에서 교류를 촉진하고, 상호 이해를 증진하며, 한·일 협력 강화를 꾀한다’는 기준을 충족한 것이다.
이 경기에서 이대호 선수가 홈런을 포함해 3안타를 기록하며 맹활약했고, 한국이 7대 1로 대승을 거뒀다. MVP를 수상한 그는 “앞으로도 교류하면서 더 좋은 관계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본 팀에서 유일한 타점(홈런)의 나카타 쇼 선수도 “야구를 통해 교류를 깊게 하며 분위기를 띄워갈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일본 외무성에 따르면, 양국 정부가 인정한 60주년 기념사업은 9일 현재 500건을 넘어섰다. 50주년 당시에는 440건이었으니, 이미 10년 전을 웃돈 셈이다. 오랫동안 한·일 관계를 다뤄온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양국 교류는 세대도, 폭도 훨씬 넓어졌다”고 했다. 지난해 일본과 한국 간 상호 방문자 수도 사상 최고인 1200만 명에 달했다. 올해는 이보다 많아질 것이 확실시된다. 이는 여론의 호전과 맞물려 있다. 일본 내각부가 매년 실시하는 ‘외교에 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작년에 ‘한국에 친근감을 느낀다’고 답한 비율은 18~29세에서 72.6%를 기록했다. 전체 연령으로 봐도 56.3%다. 조사 대상 주요 4개국 가운데 미국(84.9%)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이며 중국(14.7%), 러시아(5.0%)와는 큰 격차다.
한국에서도 일본에 대한 여론이 호전되고 있다. 동아시아연구원이 올해 6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일본에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63.3%로, “좋지 않은 인상을 가지고 있다”(30.6%)의 두 배에 달했다. “좋은 인상”이 “좋지 않은 인상”을 앞선 것은 2013년 조사 시작 이후 처음이다.
불과 3년 전만 해도 양국은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릴 만큼 긴장 관계가 이어졌다. 한국 측에서는 이명박 정부 말기부터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 시기까지를, 일본 측에서는 주로 아베 신조 전 총리 시기를 가리킨다. 직접적인 요인은 양국 간 역사 문제와 영토 문제의 첨예화였다. 대북 정책을 둘러싼 접근 방식의 차이도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한 가지 요인이 더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의 부상이다. 가장 중요한 변곡점은 2010년으로 일본과 중국의 경제 규모가 역전되고, 중국이 세계 2위 경제 대국의 자리에 올랐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일본의 상대적 추락과 중국의 급부상 사이에 한반도가 놓여 있기 때문에 한국의 대중, 대일 관계는 일종의 상관관계가 있다. 한국의 선조들이 고민했던 주제를 다시 당면하게 된 것”이라며 “한국은 중국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한편으론 일본은 힘이 빠져있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에서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본다”고 했다. 3국의 역학 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더 중요한 변화는 청일 전쟁 이후 아시아는 일본이 중심이 되는 질서가 유지됐는데, 2010년 전후 중국 중심의 질서로 패러다임 시프트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이것이 한·일 관계나 한국의 외교에 준 충격은 굉장히 컸다. 130년 만에 온 터닝 포인트”라고 했다.
일본 외무성의 고위 관계자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한국의 냉전 시기 주요 외교 파트너는 미국과 일본이었다. 그러나 1992년 한·중 수교를 계기로, 한국은 중국이라는 매우 큰 외교 카드 하나를 손에 넣게 됐다”고 했다.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함으로써, 대미·대일 외교에서 전보다 유리한 입장을 취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일본도 이 무렵부터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 역량을 집중했다. 대중·대한 관계 모두 2012년경 악화했는데,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먼저 착수했다. 2014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을 계기로 방중, 시진핑 국가주석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아베 전 총리는 회담 후 “정상 간의 대화가 시작되도록 조용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고 밝혔다.
사실 그해 여름,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가 비밀리에 베이징을 찾아 시 주석과 회담을 했다. 후쿠다 전 총리는 중·일평화우호조약(1978년)을 체결한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의 장남으로 중국과 두터운 인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아베 전 총리와는 정치적으로 거리가 있었는데도, 사실상의 특사로서 방문해 관계 개선을 바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자리에는 아베 전 총리의 측근이던 야치 쇼타로 전 국가안전보장국장이 동석했다.
이를 계기로 정상회담을 향한 협의가 본격화됐고, 야치 전 국장과 양제츠 국무위원이 극비리에 여러 차례 회담을 거듭했다. 그리고 정상회담 사흘 전, 양국은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문제와 관련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밝히며 사실상 문제를 봉합하는 등, 관계 개선을 위한 4개 항의 합의 문서를 발표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2020년 봄에는 시 주석의 국빈 방일도 계획되어 있었다.
일본이 한국과 정상회담을 한 건 중국보다 1년 늦은 2015년 11월이었다. 이듬달 위안부 합의를 발표했지만, 징용공(강제동원 노동자) 문제 등으로 관계가 다시 나빠졌다. 한국 대통령이 양자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을 공식 방문하는 일은 이후 12년 동안 성사되지 않았다.
‘잃어버린 10년’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었다. 징용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 점은 지금도 일본 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23년 3월 윤 전 대통령의 방일 이후부터 양국 정상의 얼굴이 바뀌어도 관계 개선의 흐름은 이어지고 있다.
고하리 스스무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재까지의 한·일 관계를 시기별로 나누면서 2023년 이후를 ‘전략의 공유와 공통 과제에 대한 대응’ 시기로 정의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경쟁, 북한과 러시아의 접근 등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한·일 양국이 전략을 공유할 수 있는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저출산·고령화와 지방 소멸 등 사회 문제에서도 서로 참고할 수 있는 관계가 되었다고 그는 설명한다.
이런 가운데,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으로 중·일 관계는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 사태는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한·일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대통령 1월 방중 변수…외교노선 주목 일본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일본은 다국 간 틀에서도 한국과 더 많이 연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미·일 동맹을 축으로 하는 일본이 미국·일본·호주, 미국·일본·필리핀 등 미국을 포함한 협력 틀을 만들어 왔지만, “여기에 한국을 넣는 발상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는 “한·일 관계는 역사 문제만이 전부가 아니다. AI(인공지능)·사이버·반도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배경에는 이번 중·일 대립 국면에서 드러나듯,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다. 미·일 관계를 담당하는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는 “워싱턴은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한마디에 따라 움직이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명시적으로 입장을 밝힌 사안이 아니면 정권 차원의 명확한 태도를 대외적으로 드러내기를 망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일본으로선 한국과의 연계를 한층 더 강화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떨까. 내년 1월엔 이재명 대통령의 방중이 계획되어 있다고 한다. 중국은 최근 유럽·미국을 향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함께 싸웠다는 역사를 강조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도 ‘대일(對日) 역사 공조’를 호소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이 어떤 외교 노선을 펼칠지, 일본은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