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인환 기자] 피하고 싶던 이름이 결국 같은 조에 들어왔다. ‘세계 1위’ 안세영(23·삼성생명)이 조별리그부터 일본 배드민턴의 상징 야마구치 아카네(28)와 정면으로 맞붙는다. 시작부터 결승급 대진이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은 13일(한국시간) 중국 항저우에서 HSBC BWF 월드투어 파이널 2025 조 추첨식을 진행했다. 대회는 오는 17일부터 21일까지 항저우에서 열리며, 한 시즌 최고의 선수들만 초청되는 ‘왕중왕전’이다. 그만큼 조별리그부터 한 경기 한 경기가 결승전과 다름없다.
여자 단식에는 안세영을 필두로 왕즈이·한웨(중국), 야마구치 아카네·미야자키 도모카(일본), 폰파위 초추웡·랏차녹 인타논(태국), 푸트리 와르다니(인도네시아)까지 총 8명이 출전한다. 이름값만 놓고 보면 메이저 대회 결승 대진을 그대로 옮겨놓은 수준이다.
안세영은 설명이 필요 없는 시즌의 주인공이다. 말레이시아 오픈을 시작으로 인도 오픈, 오를레앙 마스터스, 전영 오픈, 인도네시아 오픈, 일본 오픈, 중국 마스터스, 덴마크 오픈, 프랑스 오픈, 호주 오픈까지 무려 10관왕. 올 시즌 BWF 국제대회에서 가장 많은 트로피를 쓸어 담으며 월드투어 랭킹 1위로 당당히 톱시드를 받았다.
시드 배정에 따라 안세영은 A조, 세계 2위 왕즈이는 B조에 자동 배치됐다. 세계 4위 한웨와 세계 3위 야마구치가 포트2에 들어갔고, 추첨 결과 야마구치가 안세영이 있는 A조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미리 보는 결승’이 성사됐다. 한웨는 왕즈이가 있는 B조로 가며 중국 선수들끼리 집안싸움을 벌이게 됐다.
A조는 말 그대로 ‘죽음의 조’다. 안세영, 야마구치에 이어 와르다니와 미야자키까지 합류했다. 반면 B조에는 왕즈이, 한웨, 초추웡, 인타논이 포진했다. 어느 조든 방심은 금물이다.
관심은 단연 안세영과 야마구치의 맞대결이다. 두 선수는 통산 전적 15승 15패로 팽팽하다. 올 시즌 흐름은 안세영이 앞서지만, 결정적인 한 방은 야마구치가 쥐고 있다. 지난 9월 코리아 오픈 결승에서 야마구치는 안세영을 2-0으로 제압하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안세영이 올 시즌 결승 무대에서 패한 유일한 경기다.
수치로 봐도 야마구치는 가장 위험한 상대다. 안세영은 2025년 치른 72경기에서 단 4패만 기록했다. 이 중 2패는 천위페이, 1패는 야마구치, 나머지 1패는 부상 기권이다. 천위페이가 컷오프로 이번 대회에 나오지 못하면서, 야마구치는 사실상 ‘최대 대항마’로 남았다.
BWF 역시 이를 분명히 했다. “안세영의 11번째 우승은 결코 기정사실이 아니다. 그의 가장 큰 경쟁자는 야마구치다”라며 “야마구치는 천위페이와 함께 안세영과의 상대 전적에서 밀리지 않는 몇 안 되는 선수다. 올 시즌 안세영에게 유일한 결승전 패배를 안긴 인물”이라고 짚었다.
이번 대회는 기록의 무대이기도 하다. 안세영이 우승하면 일본의 모모타 겐토가 2019년에 세운 단일 시즌 최다 우승 기록(11승)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4년 만의 월드투어 파이널 정상 도전이라는 서사도 있다. 2021년 우승 이후 안세영은 이 대회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시작부터 최고 난이도 대진. 그러나 지금의 안세영에게 두려움은 없다. 왕좌로 가는 길목에서, 가장 강한 적이 가장 먼저 기다리고 있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