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쏘렌토 하이브리드와 혼다 CR-V 하이브리드를 맞붙였다. 가장 인기 있는 하이브리드 SUV 한일전이다. 이번 비교 시승의 기준은 ‘가격’이다. 앞바퀴 굴림 기준으로, 쏘렌토는 시그니처 트림에 모든 옵션을 더해 5181만원, CR-V는 5280만원이다. 하이브리드의 핵심인 연비는 겨우 0.3㎞/L 차이. 과연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하이브리드 SUV의 장단점은 무엇일지 직접 알아봤다.
서동현 로드테스트 기자([email protected]),
김창우 중앙일보 경제선임기자
쏘렌토는 현재 모든 국산차를 통틀어 가장 인기가 높은 모델이다. 2024년 판매량 9만4538대로, 국산차 성적 1위에 올랐다. 올해 1~11월 누적 판매량도 9만526대다. 이 가운데 약 70%인 6만3769대가 하이브리드다. 지금의 쏘렌토는 2020년 출시한 5세대의 부분변경 버전. 올해 7월에 2026년형으로 진화하며 일부 디자인과 편의사양을 보강했다.
CR-V는 일본 태생이지만 북미에서 강하다. 지난해 미국에서만 40만2791대 판매로, 종합 5위에 올랐다. 국내에선 어코드(814대)와 더불어 혼다코리아의 실적을 책임지고 있다. 올해 국내 누적 판매량은 654대. 이 중 하이브리드는 523대로 압도적인 비중을 자랑한다. 시승차는 6세대의 부분변경 모델로, 각종 안전·편의 장비를 보강해 지난 11월 출시했다.
차체 크기 및 디자인
쏘렌토
CR-V
길이(㎜)
4815
4705
너비(㎜)
1900
1865
높이(㎜)
1695
1680
휠베이스(㎜)
2815
2700
트렁크 용량(L, SAE 기준)
1090~1274/2138
1113/2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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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인기 최고 쏘렌토, 북미의 강자 CR-V
가격과 장르가 비슷한 국산·수입차를 비교하면, 대체로 국산차의 체격이 한 사이즈 크다. 쏘렌토와 CR-V의 관계도 마찬가지. 길이(+110㎜)와 너비(+35㎜), 높이(+15㎜), 휠베이스(+115㎜)까지 쏘렌토가 더 넉넉하다. 특히 길이와 휠베이스의 격차가 확실하다. 각 모델의 디자인이나 상품성을 떠나 차체 크기만으로도 소비자의 선택을 좌우할 수 있다. 반면 트렁크 용량은 몸집과 정비례하지 않았다. 혼다코리아가 밝힌 CR-V의 적재 용량은 미국 자동차기술자협회(SAE) 기준 1113L. 2열 시트를 접으면 2166L로 늘어난다. 쏘렌토의 트렁크는 기본 1090~1274L(2열 슬라이딩에 따른 차이로 추측), 2열 폴딩 시 2138L다. 대신 쏘렌토는 3열 시트로 6인승과 7인승이라는 선택지까지 준비했다.
쏘렌토의 얼굴은 무척 낯익다. 2023년 부분변경 치른 이후에도 꾸준히 팔려 국내 도로 풍경에서 너무 익숙한 존재다. 이번 페이스리프트의 중점은 ‘패밀리룩’.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을 앞뒤 램프에 적용해 기아의 다른 형제들과 분위기를 맞췄다. 이전보다 수직·수평선을 강조한 덕분에 더욱 듬직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패밀리 SUV의 교과서적 외모다. 시승차는 시그니처 트림. 최상위 모델인 만큼 모든 등화류에 LED 조명이 기본이다. 연식 변경을 통해 19인치 바람개비 패턴 휠도 더했다. 하이브리드+시그니처 조합에서만 만날 수 있는 소위 ‘신상’이다. 외장 컬러는 총 다섯 가지. 흰색인 ‘스노우 화이트 펄’은 8만원짜리 옵션이다. 눈에 익어서 익숙할 뿐, 전체적인 디자인은 흠잡을 데 없다.
CR-V 하이브리드의 매력은 ‘정갈함’이다. 쭉 뻗은 캐릭터라인을 중심으로 앞뒤에 큼직한 요소들을 배치했다. 짙은 헤드램프와 새까만 라디에이터 그릴, L자형 리어램프를 툭 얹어 이상적인 SUV의 형태를 완성했다. 19인치 블랙 휠은 기본 사양. 장식은 최대한 배제했다. 2WD와 4WD 모두 단일 트림으로 나오는데, 구동 방식을 구분하는 배지조차 달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6세대 CR-V가 처음 들어왔을 때 외모에서 큰 호감을 느끼진 못했다. 시선을 잡아끌 기교가 많지 않아서다. 그런데 최근 생각이 달라졌다. 개성 뽐내기 위해 온갖 모양으로 탈바꿈하는 신차들 사이에서 오히려 혼다만의 간결함이 돋보인다. 어코드도 마찬가지.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의 표본이다. 서른살 맞은 CR-V의 장수 비결이기도 하다.
쏘렌토의 인테리어는 거의 완성형이다. 부분·연식변경을 여러 차례 거쳤기 때문. 가령 첫 부분변경 때 일체형 커브드 디스플레이와 공조·미디어 전환형 터치패널을 더했다. 모니터 시인성을 개선했고, 대시보드도 깔끔해졌다. 최신 연식부터는 위아래 평평하게 다진 새 스티어링 휠도 적용했다. 운전대 위 ‘KIA’ 로고를 오른쪽으로 슬쩍 밀어낸 센스도 돋보인다. 실내의 가장 큰 장점은 공간. 2.8m대 휠베이스에 4인 가족 너끈히 품을 공간을 마련했다. 2열은 폭넓은 슬라이딩도 지원한다. 유일한 아쉬움은 생각보다 여유롭지 않은 헤드룸. 6인승 또는 7인승 옵션을 고르면 트렁크에서 3열 시트가 솟아오른다. 어린아이들 태우거나 성인이 짧은 거리를 잠시 이동하기에 괜찮다. 6인승은 2열 중앙 통로로 들어가기도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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쏘렌토, 가족을 위한 넓은 공간과 다양한 편의장비
탑승객을 위한 편의 장비도 CR-V보다 많다. 순정 내비게이션과 헤드업 디스플레이는 풍성한 도로 정보를 전달한다. 디지털 룸미러는 밤에도 후방 시야를 선명하게 띄운다. 1열 통풍 시트와 정전식 그립 운전대는 기본 트림부터 들어가는 옵션. 창문 블라인드와 파노라마 선루프, 윙 아웃 타입 헤드레스트, 3열 에어컨 등 뒷좌석을 배려한 장비도 가득 담았다.
CR-V의 실내 디자인은 호불호의 여지가 있다. 과거의 흔적이 꽤 많이 남아 있어서다. 다섯 계단을 오르내리는 말뚝 기어봉부터 다소 작은 9인치 디스플레이, 실제 바늘이 남아있는 계기판이 대표적이다. 장점은 직관성. 수평으로 반듯한 대시보드 위 모든 버튼의 배치가 자연스럽다. 모니터에도 물리 버튼과 볼륨 다이얼을 달아 각 화면을 드나들기 수월하다.
뒷좌석을 살폈다. 의외로 무릎 공간 차이는 크지 않다. 시트 포지션이 1열보다 높아 시야가 넓고, 헤드룸은 쏘렌토를 월등히 앞선다. 파노라마 선루프를 포기할 만한 가치가 있다. 90도 가까이 열리는 뒷문 덕에 유아용 카시트를 설치하기도 용이하다. 인테리어 컬러는 블랙과 블랙/그레이 투톤 두 가지. 까만 가죽 씌운 부분은 오렌지 바느질로 산뜻함을 더했다.
쏘렌토의 디스플레이는 12.3인치 모니터 두 개를 나란히 이은 구성. 기능도 충실하다. 무선 애플 카플레이·안드로이드 오토와 인카페이먼트 시스템, 날씨, 캘린더, 카투홈 등 운전자 일상과 밀접한 옵션을 넣었다. 무선 업데이트(OTA)로 꾸준히 최신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월 구독 또는 평생 이용권으로 ‘스트리밍 플러스’와 ‘아케이드 게임’, ‘디스플레이 테마’도 즐길 수 있다.
CR-V의 중앙 디스플레이는 단출하다. 영상 스트리밍 같은 온라인 콘텐트는 기대하기 어렵다. 내비게이션도 스마트폰을 연결해 써야 하는데, 안드로이드 오토는 유선만 가능하다. 독특한 기능은 ‘레인 워치(Lane Watch)’. 우측 방향지시등을 켜면 사이드미러 하단 카메라로 오른쪽 후방을 비춘다. 그런데 화질이 낮고 내비게이션을 가려 실용성은 의문이다.
파워트레인
쏘렌토
CR-V
가격
시그니처 4467만원, 풀옵션 5189만원
5280만원
파워트레인
I4 1.6L 가솔린 터보+ 전기모터
I4 2.0L 가솔린+ 전기모터(2)
배기량(㏄)
1598
1993
최고출력(마력)
엔진 180, 모터 65, 합산 235
엔진 147, 모터 184, 합산 204
최대토크(㎏·m)
엔진 27.0, 모터 26.9, 합산 37.4
엔진 18.6, 모터 34.0
연비(㎞/L) (복합/도심/고속도로)
14.8/15.2/14.3
15.1/15.8/14.4
배터리 용량(㎾h)
1.49
1.06
타이어
235/55 R 19
235/55 R 19
공차중량(㎏)
1880
1740
변속기
자동 6단
e-CV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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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V, 전기차 같은 주행감에 정확한 핸들링
두 SUV 심장의 공통분모는 ‘앞바퀴 굴림 하이브리드’. 그러나 구성과 원리는 천차만별이다. 쏘렌토는 현대차그룹이 즐겨 쓰는 병렬식 하이브리드다. 직렬 4기통 1.6L 가솔린 터보 엔진과 전기 모터 1개를 맞물렸다. 중심은 엔진이다. 최고출력 180마력으로, 전기 모터 출력은 65마력에 그친다. 시스템 총 출력은 235마력. 복합 연비는 14.8㎞/L다.
CR-V는 4세대로 진화한 2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쓴다. 147마력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엔진과 전기 모터 2개를 결합했다. 구동용 모터 최고출력은 184마력이다. 전기 모터 중심으로 주행하고, 엔진은 주로 배터리를 채운다. 부하가 적을 때만 고속·저속 락업 클러치로 동력을 직접 전달한다. 시스템 총 출력과 복합 연비는 각각 204마력과 15.1㎞/L다.
정반대의 파워트레인은 뚜렷이 다른 운전 감각의 원천이다. 더 경쾌한 쪽은 CR-V다. 최대토크 34.0㎏·m의 강력한 전기 모터 덕분에 마치 전기차처럼 출발한다. 속도를 높이다 보면 충전을 위해 엔진이 개입하는데, 아주 매끈하고 조용하게 회전을 시작한다. 이전 세대 하이브리드 시스템과의 가장 큰 차이다. 무단 변속기지만 각 단 넘나드는 흉내도 낸다. 결과적으로 구형 CR-V 하이브리드의 이질감을 완전히 지워냈다. 쏘렌토 역시 엔진과 모터가 동력을 주고받는 과정은 자연스럽다. 가속력은 CR-V와 비슷하고, 엔진이 깨어나는 시점이 빠르다. 그래서 급가속 시 엔진음은 조금 도드라진다. 단 어디까지나 ‘상대적’일 뿐, 쏘렌토도 정숙성은 훌륭하다. 6단 자동변속기의 존재감도 웬만해선 느낄 수 없다.
회생 제동을 제어하는 방법도 달랐다. CR-V는 수동적이다. 변속기 B 모드에서 시프트 패들을 누르면 4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이코노, 노말, 스포츠, 스노 등 나머지 모드에서도 레벨 조절이 가능하다. 배터리 용량이 1.06㎾h로 작은 편이어서 회생 제동 재충전 속도가 상당히 빨랐다. 고속에서는 엔진 직결 모드 비중을 높여 배터리를 효율적으로 운영한다. 쏘렌토의 회생 제동은 선택 폭이 넓다. 시프트 패들로 0~3단계를 직접 설정하거나, 자동 모드로 둘 수도 있다. 앞차와의 거리를 감지해 회생 제동 레벨을 알아서 조절한다. 총 3단계로 나눌 수 있어 주행 습관이나 취향에 맞춰 골라 쓸 수 있다. 사소한 불만은 브레이크. 제동력이 페달 밟는 초반에 몰려있다. 그래서 정차 시 섬세한 조절이 어려울 때가 있었다.
둘 다 서스펜션은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링크 방식. 차체와 바퀴를 연결한 방식은 같은데, 디테일이 차이 났다. 결론은 CR-V의 승리. 우선 고속 안정성만큼은 둘 다 양호했다. 노면이 급격하게 변해도 예상 범위 내에서만 흔들릴 뿐, 운전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일은 없었다. 운전대를 타고 올라오는 피드백도 부드러워서 전반적인 주행 피로도가 적다. 다만 거친 노면에서 잔진동 처리 능력은 CR-V가 우세했다. 과속방지턱부터 갈라진 아스팔트까지, 충격 머금은 뒤 자세를 바로잡는 속도가 빠르다. 승패를 좌우할 마지막 필살기는 핸들링. 끈끈하고 정확한 조향 시스템에서 혼다의 정체성이 드러난다. 쏘렌토의 핸들링은 다분히 일상적이다. 민첩함보다 여유로움에 초점을 뒀다. 국내 베스트셀러다운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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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가격 쏘렌토, 운전의 맛 CR-V
두 차의 가격은 저마다 설득력이 있다. 쏘렌토 하이브리드 2WD는 3896만원부터 시작한다. 최상위 트림 시그니처는 4467만원이다(디자인 특화 트림인 X-Line 제외). 즉 필요한 옵션에 따라 합리적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CR-V 하이브리드 2WD는 5280만원. 2년 전 첫 출시 때보다 40만원만 올랐다. 심지어 사륜구동 버전은 10만원 인하했다. 보증 기간과 항목은 어떨까. 기아는 차체 및 일반 부품 3년/6만㎞, 엔진 및 동력전달부품 5년/10만㎞, 하이브리드 전용 부품 및 고전압 배터리 10년/20만㎞까지 보증한다. 혼다는 일반보증 3년/10만㎞, 부품보증 1년/2만㎞, 하이브리드 배터리 10년/무제한㎞, 배출가스 관련 부품 5년/8만㎞, 촉매 및 전자제어장치 7년/12만㎞로 더 상세히 나눴다.
마지막으로 모델별 추천 소비자를 정리해봤다. 쏘렌토는 각종 편의 장비를 포기할 수 없고, 유지·관리가 편한 차를 원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디스플레이에 담은 각양각색 콘텐트는 운전자는 물론 가족과 함께 즐기기도 좋다. 데뷔 7년차 앞둔 5세대인 만큼, 옵션 하나하나의 만듦새도 무르익었다. 절대다수가 왜 쏘렌토를 고르는지 궁금하다면 구매해도 좋다. CR-V는 가족과 함께할 친환경차가 필요하면서도, 순수한 ‘운전의 맛’을 선호하는 소비자에게 어울린다. 동급 차종 중 CR-V만큼 승차감과 핸들링 성능, 실내 공간, 연료 효율을 모두 챙긴 모델은 드물다. 비록 디자인은 투박하지만, 동시에 유행도 타지 않는다. 북미를 휩쓴 혼다 대표 SUV의 담백한 저력을 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