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관사가 없는 장관이 누굽니까?” (이재명 대통령)
“제가 관사가 없습니다.”(정성호 법무부 장관)
지난 9일 열린 국무회의 도중 이재명 대통령과 정성호 법무부 장관 사이에 오간 대화다. 이 대통령의 질문에 정 장관은 자신의 열악한 주거 실태를 털어놓았다.
정 장관은 “(자택이 있는) 경기 양주에서 출퇴근 시간이 오래 걸려서 법무부에서 작은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줬는데, 보안이나 안전이 너무 취약하다”고 답했다. 법무부 수장이 서울 내 관사 없이 오피스텔에서 생활한다는 사실이 공개되자 회의장 안팎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이어 “저는 지방 출신이라고 관사를 마련해줬다”(차정인 국가교육위원장), “서울에 있는 장관 중엔 안보 부처인 국방·외교 장관에게 관사가 마련돼 있다”(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발언이 잇따랐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기준이 있어야 할 것 같다”며 “싱가포르 같은 경우 공직자들에 대한 처우를 제대로 해주고 일을 열심히 안 하면 책임을 묻는다”며 행정안전부에 관사 지원 실태 파악을 지시했다.
이 대통령이 정 장관을 살피는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도 이 대통령은 정 장관을 콕 집어 “요즘 저 대신에 맞느라고 고생하신다”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정 장관이 “열심히 하고 있다”고 답하자 이 대통령은 “원래 백조가 우아한 태도를 취하는 근저에는 수면 아래 엄청난 발의 작동이 있다. 발 역할을 잘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거듭 정 장관을 추켜세웠다.
이 대통령은 정 장관이 겪은 구체적 고생의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시기적으로 볼 때 검찰이 지난달 7일 대장동 재판 항소를 포기하기로 결정한 이후 정 장관이 야권과 검찰 내부로부터 거친 반발에 맞닥뜨린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됐다.
최근 정 장관은 주변에 무력감을 토로하는 일이 부쩍 잦다고 한다. 참모진에게 툭하면 “너희도 힘 있는 장관 밑에서 일해야 일할 맛이 날 텐데”라는 식으로 한탄을 건넨단 것이다. 실제로 법무부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내년 9월 검찰이 폐지되는 가운데, 검찰의 수사 기능을 대체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의 소관마저 법무부가 아닌 행정안전부로 이관되는 것으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수사 지휘권과 거대 조직을 모두 잃게 되는 상황이 목전인 셈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 장관도 내년 9월 검찰청이 완전히 폐지되기 전까지는 검찰이 유종의 미처럼 성과를 거둬 주길 내심 희망하고 있다”며 “정작 일선 검찰 조직에서는 사보타주(태업)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고 무엇보다 검찰이 서슬 퍼렇게 힘이 있던 시절에는 바깥에서 속속 들어오던 각종 제보가 이제는 끊겨버려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과거 강력한 사정기관으로서 가질 수 있었던 정보력이 조직 축소와 함께 급격히 약화하고 있단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정 장관이 법무부의 성과를 본인이 아닌 김민석 국무총리에게 돌린 일화도 알려졌다. 법무부는 지난달 18일 론스타와의 국제 분쟁(ISDS)에서 승소라는 굵직한 성과를 거뒀다. 통상 주무 부처 장관이 단독 브리핑을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정 장관의 선택은 달랐다.
정 장관은 당일 오후 5시께 승소 소식을 먼저 접하자마자 곧바로 총리실 고위 관계자에게 전화를 걸어 “총리님 지금 어디 계시나”고 물었다. 이어 김 총리가 서울에 있다는 답변에 “국가적인 경사가 있으니 회견에 함께 나서주셔야겠다”며 김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을 자처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저녁 7시 공동 회견을 열고 승소 소식을 알렸다.
여권 관계자는 “정 장관이 론스타 승소는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 생각해 총리가 나서 줄 것을 먼저 요청하며 통 크게 양보를 한 것”이라며 “안으로는 검찰 조직 반발과 바깥으론 야권 공세에 시달리면서도 선공후사를 우선한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