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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없다" 비명 들리는데…지역의사제엔 악플 다는 의사들

중앙일보

2025.12.13 13:00 2025.12.13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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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0일 오후 대전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환자를 이송한 구급차가 놓여 있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김성태 객원기자
강원도 A의료원은 지난 11월부터 자기공명영상(MRI)·컴퓨터단층촬영(CT) 일부 판독을 서울의 한 의료기관에 의뢰하고 있다. 의료원에서 근무하던 영상의학과 전문의 2명이 한꺼번에 퇴직하면서 생긴 공백을 메우기 위한 땜질식 조처다. 영상의학과는 전공의 선호가 높은 '정재영(정형외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계열로 꼽히지만, 이런 인기과조차 지역에서는 의사 구인난이 심각하다. A의료원은 새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 연봉 4억8000만원(세전)을 내걸었다. 의료원 관계자는 "지역에 의사 공급이 안 되다 보니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의사 없는 지방의료원…지역의사제 실효성 높이려면

정근영 디자이너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역의사제법'은 이처럼 붕괴 위기에 놓인 지역·필수 의료를 살리기 위한 사실상 마지막 카드로 평가된다. 지역의사제는 문재인 정부, 윤석열 정부에서도 추진했던 정책이다.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지역의사제는 지역의사 선발 전형으로 뽑힌 의대생이 졸업 후 특정 지역에서 10년간 의무 복무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지방의료원이 겪는 의사 구인난은 의료계의 오래된 난제다. 김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전공의 수련병원으로 지정된 지방의료원 23곳 가운데 19곳(82.6%)은 전공의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젊은 의사의 공급이 끊긴 상태다.

지난 12일 의사 채용 사이트를 분석한 결과 전국 지방의료원 35곳 중 절반이 넘는 19곳 이상이 의사를 모집 중이었다. 대부분 세전 연봉 2억~5억 원대를 제시했다.

의료원 관계자들은 의사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호소했다. 전국 의료원 가운데 처음으로 '4.5일 근무'를 내건 충남 한 의료원 측은 "그래도 사람이 안 구해져 재공고를 수차례 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경북의 한 군의료원 행정과장은 "대도시도 난리인데 중소도시는 오죽하겠나"라고 말했다. 윤창규 충주의료원장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지역의사제를 통해 '지역에 남는 의사'가 배출되려면 앞으로 최소 10년은 걸린다. 정책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부 시행령과 지원책이 촘촘하게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역의료계를 중심으로 나온다. 현재 지역의사 선발 규모 등 핵심 쟁점은 하위법령으로 위임된 상태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을 지낸 조승연 영월의료원 외과 과장(전 인천의료원장)은 "강제성보다는 지역 출신 학생이 나고 자란 곳에서 일할 때 보람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거점 국립대병원을 키우고 교수 인력 많이 확충해 순환 근무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건희 평창군보건의료원장은 "시행령 논의의 핵심은 '2등 의사' 낙인이 찍히지 않게 하는 구조"라며 "상급종합병원과 1·2차 의료기관이 연계된 수련 네트워크를 만들어 지역 의사가 매력적인 선택지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는 최근 지역의사제의 필요성을 지역 주민 인터뷰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사진 보건복지부 유튜브 캡처
지역의사제에 대한 의료계의 전반적인 시각은 부정적이다. 보건복지부가 최근 "지역 의사가 필요하다"는 지역 주민 인터뷰 영상을 SNS에 올리자 일부 의사들은 욕설이 섞인 거친 댓글로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환자가 KTX 타고 서울 가면 그만"이라며 환자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막을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주된 논리다.

이 같은 수도권 원정 진료 문제는 지난 11일 공식 출범한 의료혁신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의사 출신 한 보건대학원 교수는 "환자의 서울 행보다 지역에서는 당장 시급한 의료조차 제때 제공되기 어려운 현실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꼬집었다.



채혜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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