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권력이다. 종교도 권력이다. 종교학계 거장이었던 고(故) 길희성(서강대 종교학과) 명예교수는 “가장 권력이 아닌 척 위장하는 게 종교”라고 지적한 바 있다.
최근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을 향한 통일교의 금품 제공과 정치적 후원 의혹이 불거졌다. 수사와 재판도 진행 중이다. 정치권력과 종교 권력의 결탁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통일교는 왜 정치권을 향해 전방위적으로 손을 내밀었을까. 정치인들은 왜 그런 통일교의 손을 잡으려 했을까. 종교와 정치의 결탁, 그 문제점을 짚어본다.
◇문선명 총재 부부는 왜 참부모인가=통일교는 고(故) 문선명 총재와 한학자 총재 부부를 ‘참부모’라고 부른다. 통일교 교리에 의하면 창세기에서 하와가 뱀(사탄)의 유혹에 빠져 성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피가 타락하게 된다. 잠자리를 통해 하와가 다시 아담을 타락하게 만들고,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인류 역시 타락하게 된다.
통일교는 인류 구원을 위해 타락한 피를 깨끗하게 되돌려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예수가 이 땅에 왔다. 동정녀를 통해 순결한 피를 갖고 태어난 예수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아야 구원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래서 통일교는 예수의 사역을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라고 부른다. ‘영적 구원’은 이루었지만, ‘육적 구원’은 실패했다고 본다. 젊은날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예수는 결혼과 가정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이 땅에 온 메시아가 문 총재 부부라고 주장한다.
◇승계 과정에서 ‘왕자의 난’=2012년 문선명 총재가 타계하면서 통일교는 한동안 내분을 겪었다. 문 총재는 유언을 통해 통일교 교회를 7남 문형진에게 승계했다. 대신 “어머니(한학자 총재)와 하나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덧붙였다.
통일교에서는 한학자 총재를 ‘독생녀(獨生女)’라고 부른다. 문 총재가 ‘완전한 아담’이고, 한 총재는 ‘완전한 하와’라고 본다. 문 총재 타계 이후, 한 총재는 빠르게 교단을 장악하며 지도력의 중심에 섰다. 통일교 지도부도 이미 문 총재 부부의 측근으로 조직돼 있던 터였다.
이에 강하게 반발하던 아들 문형진과 문국진(4남)은 결국 미국으로 떠났다. 거기서 따로 ‘생추어리(Sanctuary) 교회’를 세웠다. 통일교 바깥에서는 이를 두고 ‘왕자의 난’이라고 부른다. 문 총재 타계 이후에 한학자 총재는 ‘새로운 리더십’을 계속 보여줘야 할 상황이다. 이런 시기에 일본에서 통일교 문제가 터졌다.
◇통일교, 일본에서 큰 위기=지난 3월, 일본 법원은 통일교에 대해 종교법인 해산 명령을 내렸다. 2022년 7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암살범이 “어머니가 통일교에 거액을 헌금해 가정이 파산했다”고 진술하면서, 통일교 헌금 문제가 일본에서 사회적 이슈가 됐다.
문부과학성의 장기간 조사가 진행됐다. 결국 법원이 일본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여 종교법인 해산 명령을 내렸다. 이에 반발한 통일교가 항소를 제기했고, 현재 고등재판소에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재판은 총 3심제다.
만약 일본에서 종교법인 해산이 최종 결정될 경우, 통일교의 종교 활동 자체가 금지되는 건 아니다. 대신 그동안 종교법인으로서 누리던 법적ㆍ경제적 권리를 박탈당한다. 비과세였던 각종 종교 시설에 대해서도 세금이 매겨진다. 부동산이 많은 통일교로서는 큰 부담이다. 헌금 수입에 대해서도 세금을 내야 한다. 아울러 일본 내 종교법인 자산도 청산해야 한다.
통일교 본부 관계자는 “한국 신자 수는 10만~20만 명, 일본 신자 수는 50만~60만 명이다”고 말했다. 그만큼 일본의 비중이 높고, 헌금 규모도 크다. 통일교에는 크나큰 타격이다. 한학자 총재의 리더십도 큰 상처가 불가피하다.
이에 대해 통일교 측은 “정치권을 향한 금품 제공 의혹 등은 윤영호 전 세계본부장의 단독 행위였다. 한 총재에게 보고도 되지 않았고,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의 결탁=종교가 권력이 되면 정치 권력을 필요로 한다. 정치 역시 종교와 손잡기를 원한다.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종교 단체는 정치권으로부터 세금 감면이나 각종 건축 인허가, 국고 지원금 등을 보장받게 된다. 반면 정치인에게 절실한 건 ‘유권자의 표’다. 정치인이 개별 유권자를 일일이 설득하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 큰 규모의 종교 단체는 대규모 인원 동원이 가능하다. 충성도가 높고 결집력도 강하다. 결국 선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송재룡 경희대(종교사회학) 특임교수는 “정치인은 유한한 권력에 대한 근본적 불안이 있고, 종교는 갈수록 세속화하는 사회에서 영향력이 줄어들 것에 대한 불안이 있다. 이를 잘 아는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이 만나 서로의 결핍과 욕망을 채워주는 것”이라고 결탁의 배경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