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수출금융의 틀을 새로 짜기로 했다. 세계 수출·수주 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전략산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대신 이익을 공유하는 형태로 바꾼다. 기업의 ‘무임승차’에 가까운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다.
14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기재부는 조만간 부처 협의와 업계 조율 등을 거쳐 전략수출금융기금(가칭)의 구체적인 설립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기재부는 지난 11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전략산업의 대규모 수주를 지원하고, 이익 공유를 통한 산업 생태계 육성 차원에서 전략수출금융기금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기존 정책금융으로 전략산업 수출·수주를 뒷받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 조치다. 예컨대 지난 8월 1일 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는 폴란드개발은행과 총 52억 달러(약 7조7000억원) 규모의 수출금융 지원 업무협약(MOU)을 했다. 현대로템이 폴란드와 체결한 K2 전차 수출 계약에 따른 구매자금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지원 규모는 총수출 계약금 65억 달러(약 9조원)의 80%에 해당한다.
2023년과 올해 두 차례에 걸쳐 대규모 수출 계약에 성공하며 축포를 쏘아 올렸지만, 폴란드 측 자금 조달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혼선을 빚었다. 정부 관계자는 “국가별 한도, 계약 기간, 상대국 신용등급 등을 고려해야 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충분한 지원이 어렵다”며 “이를 보완하려는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최근 방산∙원전∙플랜트 등의 전략 산업에서 초대형 장기 계약이 빈번해지고 있는 만큼 이를 탄탄하게 지원할 별도의 정책금융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익 공유 개념을 반영해 운영 철학도 바꾼다. 현행 정책금융에서는 수출기업이 부담하는 위험(리스크)이 사실상 ‘제로’다. 수출시장을 넓히는 차원에서 정부 지원의 당위성은 있지만, 특정 기업이 과도한 수혜를 입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가령 방산 계약의 경우 통상 수입국에 구매 대금을 장기·저금리로 빌려주는 구조다. 업체가 정부 지원을 통해 구매처를 확보하고, 매출을 늘린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유럽의 방산 회사도 정책금융 지원을 받지만 대부분 국영이거나 정부 지분이 많은 업체라는 점에서 사기업 중심인 한국과 구조가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를 반영해 전략산업 중심으로 정책금융을 늘리는 동시에 이익 공유 개념을 추가해 무임승차 논란을 줄이겠다는 게 정부 구상이다. 최지영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은 지난 11일 업무보고 관련 브리핑에서 “위험은 정책금융기관이 지고 이익은 수출하는 기업들이 가져간다면 균형에 맞지 않는다”며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입법 사항이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공청회 등을 거쳐 조만간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