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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청년착취' 말한 포괄임금제…폐지가 과연 답일까

중앙일보

2025.12.14 00:08 2025.12.14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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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임금제가 잘 모르는 청년들에 대한 노동착취수단이 되고 있다고 하더라."
"제도 자체의 남용 여지가 너무 크게 되어 있는거 아닙니까"
"포괄임금제는 대체적으로 노동자에게 불이익하지 않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세종시 세종컨벤션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6년 부처 업무보고 농림축산식품부(농촌진흥청·산림청), 고용노동부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지난 11일 이재명 대통령은 고용노동부 업무보고에서 포괄임금제를 놓고 날선 질문을 잇따라 던졌다. 그럼에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포괄임금제를 근본적으로 전면 금지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폐지에는 선을 그었다.

포괄임금제는 근로 형태나 업무 성질상 추가 근무수당을 정확히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 노사 합의로 연장·야간·휴일수당을 미리 포함해 지급하는 임금체계다. 근로시간 산정이 곤란하고 근로자에게 경제적으로 불리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법률상 제도는 아니지만 1992년 대법원 판례 이후 제한적으로 허용돼 왔다.

포괄임금제는 역대 정부마다 문제로 지적돼 왔지만, 현장에서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왜 반복되는지, 그 문제와 원인을 짚어봤다.

① 청년 착취 수단인가?
이 대통령이 포괄임금제를 ‘청년 착취 수단’이라고 재소환한 배경에는 최근 발생한 ‘런던베이글뮤지엄 사태’가 있다. 해당 사업장에서 사망한 20대 근로자는 주 52시간을 훨씬 초과한 주 80시간가량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는데, 임금 계약 방식이 포괄임금제였다.

포괄임금제는 약정한 근로시간보다 적게 일해도 정해진 임금을 지급하지만, 이를 초과해 근무하면 추가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제도가 악용되는 게 문제다. 약정 근무시간을 초과해도 추가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포괄임금제는 근무시간과 임금이 직접 연동되지 않는 구조여서 근로자와 사업주 모두 근로시간을 정확히 관리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약정한 시간보다 더 일을 시키고도 추가 보상을 하지 않는 ‘공짜 야근’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라고 지적했다.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해 임금을 지급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는 점도 악용 요인으로 지적된다. 60~70시간을 일해도 52시간분만 지급되는 경우다. 런던베이글뮤지엄 사례 역시 이런 악용의 연장선으로 추정된다.

②근로자에게 불리하기만 한가.
고용부가 포괄임금제의 전면 폐지가 어렵다고 보는 이유는 제도 자체의 필요성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권혁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업무량이 수시로 변하고 대외 활동이 많은 금융·정보기술(IT)·방송 분야에서는 근로시간을 일일이 산정하는 것 자체가 근로자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다”며 “이런 업종에서는 포괄임금제가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산업의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 노동 확산으로 근로시간을 명확히 확정하기 어려운 업무가 늘고 있는 점도 이러한 필요성을 뒷받침한다. 설령 근로시간 측정이 가능하더라도, 출퇴근 시각만으로는 업무의 밀도나 강도 같은 질적 요소를 반영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예컨대 야간에 15분간 시스템 오류에 대응하거나 시차가 있는 해외와 잠깐 이메일을 주고받는 업무는 근로시간으로 청구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포괄임금제가 일정 부분 합리적인 보상 수단이 될 수 있다. 또, 경직적인 국내 근로시간 관리 방식 속에서 일종의 ‘숨통’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③'전면폐지'가 답인가?
이 때문에 노동부와 전문가들 모두 포괄임금제의 전면 폐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고 있다. 대신 ‘일한 만큼 지급하지 않는 임금 체불’은 엄격히 단속하고, 제도의 불필요한 남용을 막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대안으로 김영훈 장관은 출퇴근 시간 의무기록제 도입을 언급했다. 근로시간을 기록해 약정한 시간보다 더 일하고도 임금을 덜 받는 남용을 막겠다는 취지다. 다만 이 경우에도 권혁 교수는 “관행적으로 허용돼 온 담배 시간이나 자율적 휴식, 커피 타임, 외근 중 미팅까지 관리·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며 “이 경우 오히려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만큼, 경직적이고 일률적인 제도 적용은 지양해야 한다”고 짚었다.

이 대통령이 “법으로 포괄임금제를 명확히 규정하거나 노동부 지침을 검토해라”고 주문한 만큼 법 제도 정비도 이뤄질 전망이다. 권순원 교수는 “불필요한데 단순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곳도 적지 않다. 제도의 유효 요건과 적용 대상을 법적으로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연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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