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생중계로 진행되고 있는 정부 부처의 2026년 대통령 업무보고를 두고 정치권이 충돌하고 있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윤석열 정부 시절 임명된 고위공직자를 강하게 압박하자 야권은 발끈했다.
도화선은 지난 12일이었다. 이 대통령은 국토교통부 등 업무보고에서 이학재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게 “(출국 검색 때) 1만 달러 이상 못 가져가게 되는데, (수만 달러를) 100달러짜리로 책갈피처럼 끼워서 나가면 안 걸린다는 주장이 실제로 그런가”고 물었다. 이에 이 사장이 구체적 답변을 하지 못하자 이 대통령은 “참 말이 기십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딴 데 가서 노시느냐, (취임하신 지) 3년이나 됐는데 업무 파악을 정확하게 못하고 계신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또 이집트 후르가다 공항 개발 사업 추진과 관련해 이 사장이 “협의 중”이라고 답하자 “쓰여 있는 것 말고는 아는 게 하나도 없다”라고 질책했다. 국민의힘 3선 의원 출신의 이 사장은 윤석열 정부 시절인 2023년 6월 임명됐다.
논란이 커지자 이 사장은 14일 페이스북에 “불법 외화반출은 세관의 업무이고, 인천공항공사의 검색업무는 칼, 총기류 등 위해품목”이라고 해명했다. 자신의 담당 분야가 아닌 걸 이 대통령이 질문했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책갈피 달러 검색 여부'에 대해 “인천공항을 30년 다닌 직원들도 보안 검색 분야 종사자가 아니면 모르는 내용”이라며 “걱정스러운 것은 온 세상에 '책갈피에 달러를 숨기면 검색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라고 했다.
야권은 ‘이 대통령의 태도’를 문제 삼았다. 양향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13일 페이스북에 “(이 사장을 향한 발언은) 질책이 아닌 공개적 인격 파괴”라고 적었다. 이동훈 개혁신당 수석대변인도 “대통령이 이정도 수준의 언어밖에 구사하지 못하니 ‘파란 윤석열’이라고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외화밀반출 발언 내용도 도마 위에 올랐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외화를 책갈피처럼 끼워 밀반출하는 방식은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에서 거론됐던 수법”이라며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사장을 무지성 깎아내리다 자신의 범행 수법만 떠올리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내년 6·3 지방선거 선거 개입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국민의힘 초선 의원은 이 사장이 인천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점을 들어 “권력을 악용해 ‘보수는 무능하다’는 프레임을 만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환단고기’ 발언도 논란거리였다. 환단고기는 단군왕검 신화에 등장하는 환인·환웅 등이 동아시아 및 유라시아 대륙까지 지배했다는 내용으로, 주류 사학계에는 출처가 불분명한 ‘위서’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교육부 등 업무보고에서 박지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에게 “동북아역사재단은 (환단고기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모양”이라며 “고대역사 부분에 대한 연구를 놓고 다툼이 벌어지는데, 연구를 안 하느냐”고 캐물었다. 이에 박 이사장이 “(환단고기는) 소위 재야 사학자들의 이야기이고 저희는 문헌 사료를 중시하고 있다”라고 하자 이 대통령은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박 이사장도 2023년 12월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됐다.
이와 관련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14일 페이스북에 “환단고기 사태는 논란이 아닌 것을 의미 있는 논란이 있는 것처럼 억지로 만들어 혼란을 일으킨 이 대통령의 무지와 경박함이 문제”라고 썼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도 전날 “환단고기가 역사라면 (영화) ‘반지의 제왕’도 역사”라고 적었다.
‘서울대 예산 쏠림’ 지적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교육부 업무 보고에서 서울대에 예산이 집중되는 현상을 거론하며 “큰아들이 더 좋은 대학을 나와서 사업도 잘돼서 부자로 떵떵거리고 잘 사는데 거기다 더 대주고 있는 꼴”이라며 “산업화 시대엔 자원이 없으니 큰아들에게 ‘몰빵’했지만 지금까지 그러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 아니냐”고 지적했다. 이에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국민주권정부에서는 서울대의 70% 수준까지 지역거점 국립대의 예산 지원을 늘리겠다”고 보고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방대를 살리자는 방향을 ‘서울대 때려잡기’ 식으로 가는 건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대통령실은 업무보고와 관련한 야당의 공세를 반박했다. 김남준 대변인은 이날 취재진을 만나 “정상적인 질의응답 과정”이라고 말했다. 특히 환단고기 논란에 대해서는 “환단고기 주장에 동의하거나, 이에 대한 연구나 검토를 지시한 게 아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