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김경문 감독은 누군가에게 “이제 한화에도 ‘우주의 기운’이 올 때가 됐다”는 덕담을 들었다. 김 감독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 “그럼요. 우리 팀에 진짜 ‘우주’도 왔잖아요.” 한화가 2025년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뽑은 강속구 투수 정우주(19) 얘기였다.
이름부터 남달랐던 이 ‘수퍼 루키’는 1년간 빛처럼 빠른 속도로 진화해 팀에 좋은 기운을 몰고 왔다. 이제 한화를 넘어 한국 야구의 미래를 밝힐 투수로 자리 잡을 참이다. 최근 대전에서 만난 정우주는 “프로 첫 시즌을 준비하면서 걱정도 불안도 많았는데 끝나고 나니 좋은 경험의 연속이었다”며 “설렜고, 재밌었다”고 말했다.
모두가 좋아하는 ‘우주’라는 이름은 할머니가 지어줬다. 하마터면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필립’이라는 이름이 붙을 뻔한 위기(?)도 있었다. 그런데 작명소에서 이름을 받아온 할머니가 “기(氣)가 좋다더라”며 밀어붙여서 우주가 됐다. 정우주는 “아버지는 끝까지 ‘필립’을 원하셨는데 할머니께서 ‘우주로 이름 지으면 양육비를 좀 보태주겠다’고 설득하셔서 ‘오케이’ 하셨다고 들었다”며 웃었다.
그 덕에 그는 어딜 가나 ‘우주의 기운’을 몰고 다니는 행운남으로 자라났다. 일단 가계에 큰 도움이 된다. 정우주의 부모는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달빛식탁’이라는 식당을 운영한다. 요즘엔 야구 팬이 많이 찾아와 손님이 더 늘었다. 그는 “어릴 때는 이름 때문에 ‘정스페이스’ 같은 귀여운 별명도 많이 붙고, 놀림도 많이 받았다”며 “지금은 감독님마저도 ‘우주의 기운’이라고 해주시니까, 이름을 정말 잘 지은 것 같아서 뿌듯하고 감사하다”고 털어놨다.
물론 우주라는 이름 때문에 잘된 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유연성을 기르기 위한 훈련을 꾸준히 했고, 일찌감치 프로 선수 못지않은 훈련 루틴을 정립해 꾸준히 실천했다. 프로에 온 뒤에는 쟁쟁한 팀 선배들을 따라다니면서 “노하우를 하나라도 더 배우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멘털도 강하다. 한화 양상문 투수코치는 “나이에 비해 속이 깊고, 정신력이 강하다”며 “한 번 실패하더라도, 거기서 뭔가 배우고 더 좋아질 수 있는 선수다.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높이 평가했다.
정우주의 데뷔 시즌은 의미 있는 순간으로 가득 찼다. 그는 올해 딱 27일만 빼고 줄곧 1군에 머물면서 무사히 풀타임 시즌을 소화했다. 정규시즌 53과 3분의 2이닝 동안 삼진 82개를 잡아내는 탈삼진 능력도 뽐냈다. 특히 지난 8월 키움전에선 KBO리그 역대 11번째로 한 이닝 최소 투구(9구) 3탈삼진 기록을 세웠다. 이른바 ‘무결점 이닝’이라 불리는 진기록이다. 신인 선수로는 역대 두 번째였다. 그날 그의 공을 받은 20년 차 포수 이재원은 “지금껏 내가 받아본 직구 중 최고”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포스트시즌 마운드도 밟았다. 플레이오프(PO) 4차전에 깜짝 선발 등판해 3과 3분의 1이닝 5탈삼진 무실점으로 역투한 장면이 백미였다. 시즌 종료 후엔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대표 평가전에 출전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일본 대표팀과의 도쿄돔 평가전(3이닝 4탈삼진 무실점)에선 선발투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정우주는 “한일전 선발 등판은 정말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닌데, 그것도 도쿄돔에서 던지게 돼 많이 설렜다”라며 “이제 (목표로 하는) 선발투수 자리에 한 발짝 더 다가간 느낌이다. 최대한 긴 이닝을 막아낼 수 있도록, 체력을 보완하는 데 집중하면서 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우주는 내년 1월 사이판으로 떠나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전지훈련 명단에 포함됐다. 3월 열리는 본선 최종 엔트리에 승선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 야구 대표팀에도 ‘우주의 기운’이 몰려들까. 그는 “지난 한 해의 경험을 통해 마운드에서의 자신감을 조금 찾은 것 같다. 변화구 구사 능력과 관련해서도 많은 걸 배웠다”며 “내년 시즌을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올해보다 더 좋은 투수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가슴 벅찰 만큼 많은 것을 이룬 한 해. 마음에 남은 유일한 아쉬움은 한국시리즈 ‘준우승’이다. 정우주가 내년 목표를 ‘10승’도, ‘탈삼진왕’도 아닌 ‘한국시리즈 MVP’로 잡은 이유다. 그는 “문동주 형이 PO MVP가 되는 모습을 보니, 정말 멋졌다. 나도 내년 한국시리즈에서 MVP가 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건 곧 한화의 우승을 의미하기도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