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군가에게 읽히는 순간 태도가 달라진다. 나를 제대로 보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괜히 말이 길어지거나 솔직해지곤 한다. 그리고 이해받고 있다고 판단되는 순간, 인간은 설명 비용을 낮춘다. 신뢰가 작동하는 지점이다.
요즘 현업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지침이 ‘AI 리더블(readable)’이다. 이는 감각적인 표현이 아니라 꽤 정확한 기술 용어다. AI 리더블이란 AI가 데이터를 단순히 수집·처리하는 수준을 넘어 구조를 인식하고 맥락을 추론하며 다른 시스템과 연동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데이터의 정합성, 표준화된 스키마(도식), 명확한 메타데이터, 그리고 기계가 해석 가능한 인과 구조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AI 전환기의 경쟁은 알고리즘 성능보다 먼저, 누가 AI가 읽을 수 있는 세계를 잘 설계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교과서적인 이야기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그렇게 정교하게 설계된 AI 리더블의 세계 안에서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읽히고 있는가. 아니 우리는 과연 읽히기에 적합한 존재인가.
알고리즘의 성능 극대화보다
잘 읽히는 세계 설계가 더 중요
AI가 인간 감정까지 알아채는
섬세한 기술이 앞으로의 화두
이 변화는 단지 IT 부서나 데이터 조직의 과제가 아니다. 금융·제조·유통·헬스케어처럼 인간의 판단이 개입되는 모든 산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구조 변화다. AI는 더이상 도구로 머물지 않고 의사결정의 전 단계에 개입한다. 이때 무엇이 읽히고 무엇이 누락되는지는 곧 조직의 사고방식과 선택의 범위를 규정한다. AI 리더블은 그래서 기술조건이 아니라 사고의 인프라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비정형적이다. 질문은 불완전하고, 진짜 의도는 종종 말 뒤에 숨어 있으며, 감정은 데이터 포인트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기술적으로 보면 인간은 노이즈가 많은 입력값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AI 리더블 전략은 인간을 줄이고, 단순화하고, 정렬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왔다. 사람이 시스템에 맞춰 읽히도록 스스로를 정리하는 방식이다. 이 접근은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중요한 것을 놓친다. ‘읽는다’는 행위가 항상 정확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읽는다는 것은 때로 어긋난 문장을 끝까지 따라가고, 말하지 않은 맥락을 유보한 채 견디는 일에 가깝다.
과거 한국 사회의 문맹률이 높던 시기가 있었다. 그 어렵던 시기에 글을 배우지 못한 할머니들에게 글을 가르치자 할머니들이 가장 먼저 쓴 것은 자신의 이름 석 자였다. 이어 배운 글자들로 써 내려 간 짧은 시는 먹먹함 그 자체였다. ‘아들’이라는 제목의 시에는 “나한테 태어나서 고생이 많았지 돈이 없으니까. 저세상에서는 부자로 만나자 사랑한다”라는 구절이 삐뚤빼뚤 적혀있었다. 내가 세상에서 본 시 중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문장이었다. 그 시는 나 같은 독자뿐 아니라 글을 쓴 할머니 자신에게도 강한 울림을 주었다. 처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어 표현했다’는 경험.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정보를 다루는 능력을 얻는 일임을 넘어 자기 삶을 해석할 수 있는 언어를 갖게 되는 일이다.
이 대목에서 AI 리더블은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히기 시작한다. AI가 인간을 더 정확히 이해하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를 다시 읽을 수 있는 조건을 기술이 제공하고 있느냐는 질문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AI 리더블이 구조화·표준화·태깅·명확성을 추구하는 기능의 언어였다면 이제는 관계의 언어가 필요하다. 더 빠르게 읽는 AI가 아니라, 해석을 유예할 줄 아는 AI, 즉각적인 판단 대신 맥락을 보류하고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읽기다.
이는 예측 정확도의 문제가 아니다. 통제의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AI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된 시대에 핵심은 동행의 방식이다. 모든 감정을 즉시 분류할 필요는 없고, 모든 선택을 최적화할 필요도 없다. 인간에게 위로가 되는 순간은 종종 ‘이해받았다’가 아니라 ‘함께 있어 주었다’에서 발생한다.
AI 리더블이란 아마 이런 장면에 가까울 것이다. 기술이 앞서 해석하지 않고, 조용히 옆에 앉아 인간이 자기 마음을 다시 읽을 수 있도록 시간을 내어주는 순간. 기술이 사람을 설명하는 시대를 지나, 사람을 살게 하는 기술로 이동하는 출발점. AI 리더블이라는 말이 그 문턱에 서 있다. 우리는 무엇을 읽히고 싶은가. 그리고 어디까지 읽혀도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