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훈-신유빈 조는 13일 홍콩 콜리세움에서 열린 월드테이블테니스(WTT) 홍콩 파이널스 2025 혼합복식 결승에서 중국의 왕추친-쑨잉사 조를 게임 스코어 3-0으로 완파하고 정상에 올랐다.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WTT 파이널스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혼합복식이 이번 대회에서 처음 도입된 만큼, 초대 챔피언이라는 상징성도 더해졌다.
WTT 파이널스는 그 위상부터 남다르다. 그랜드 스매시, 챔피언스, 컨텐더 시리즈 성적을 기준으로 랭킹 포인트 상위 선수들만 출전할 수 있는 사실상의 ‘왕중왕전’이다. 그 무대에서 임종훈-신유빈 조가 중국 최강 조합을 꺾었다는 사실은 의미가 작지 않다.
상대는 설명이 필요 없는 조합이었다. 왕추친과 쑨잉사는 남녀 단식을 대표하는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다. 임종훈-신유빈 조는 이날 경기 전까지 이들을 상대로 6전 전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번번이 벽에 막혔지만, 결승전에서 그 흐름을 단번에 끊어냈다.
출발부터 달랐다. 첫 게임 9-9 팽팽한 상황에서 임종훈의 과감한 공격이 빛났고, 왕추친은 연속 범실로 흔들렸다. 한국이 기선을 제압했다. 2게임에서도 흐름은 이어졌다. 임종훈-신유빈 조는 9-4까지 점수 차를 벌리며 주도권을 잡았다. 중국 조가 9-8까지 따라붙었지만, 마지막 고비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연속 득점으로 두 번째 게임도 가져왔다.
승부의 끝은 3게임에서 갈렸다. 초반 3-4로 밀렸지만, 곧바로 6-5 역전에 성공하며 분위기를 다시 끌어왔다. 10-6 매치 포인트 상황에서 왕추친의 공격이 테이블을 벗어나면서 그대로 경기는 마무리됐다. 스코어는 3-0.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중국 조의 상황도 변수였다. 왕추친-쑨잉사 조는 4강에서 일본 조를 꺾는 과정에서 쑨잉사가 발목 부상을 입었다. 완전한 몸 상태는 아니었지만, 결승 무대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맞섰다. 그럼에도 이날 경기의 주인공은 분명 임종훈과 신유빈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두 선수의 태도는 인상적이었다. 임종훈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모든 선수들에게 고맙다”며 상대에 대한 존중을 먼저 표현했다. 신유빈 역시 “옆에서 종훈 오빠가 많이 도와줬다”며 파트너에게 공을 돌렸다. 이어 “운동선수에게 몸 관리는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며, 부상을 안고 뛴 쑨잉사를 향해 걱정의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잉샤 언니, 얼른 괜찮아졌으면 좋겠다. Take care”라고 덧붙였다.
이번 우승은 단순한 한 대회 정상 등극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중국이 장악해온 혼합복식 구도에 균열을 냈다는 점에서 한국 탁구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임종훈-신유빈 조가 만들어낸 이 장면은, 한국 탁구가 다시 세계 정상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강렬한 신호였다.
중국 매체의 시선도 경기 결과보다 장면에 더 주목했다. 중국 ‘넷이즈’는 12월 14일 보도를 통해 “2025년 12월 13일 열린 WTT 홍콩 파이널 혼합복식 결승에서 왕추친-쑨잉사 조가 한국의 임종훈-신유빈 조에 0-3으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다”고 전하며, 특히 경기 후 신유빈의 행동을 상세히 조명했다. 매체는 “한국 조는 승리를 자축하지 않았고, 오히려 신유빈이 쑨잉사를 걱정하는 모습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넷이즈에 따르면 쑨잉사는 결승 당일 앞서 열린 여자 단식 준결승에서 왼쪽 발목을 접질리며 기권했다. 3세트 도중 크로스 스텝 세이브를 시도하다 통증이 악화됐고, 혼합복식 결승까지 불과 80분 남짓 휴식을 취한 상태로 경기에 나섰다.
왕추친은 경기 전부터 “다리를 조심하라”고 거듭 당부하며, 쑨잉사의 움직임이 부상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왕추친-쑨잉사 조는 발목 부상을 안은 채 결승을 치렀고, 세트 스코어 9-11, 8-11, 6-11로 한국 조에 무릎을 꿇었다. 넷이즈는 “왕추친이 경기 내내 파트너의 체력 부담을 덜어주려 애썼지만, 부상이라는 변수는 끝내 극복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은 경기 종료 직후였다. 임종훈-신유빈 조는 우승 세리머니를 하지 않았고, 곧바로 상대와 악수를 나눴다. 특히 신유빈은 쑨잉사의 어깨를 토닥이며 직접 상태를 살폈다.
신유빈의 태도는 중국 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됐다. 넷이즈 댓글란에는 “운동선수는 부상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서로 공감할 수밖에 없다”라거나 “신유빈은 정말 친절하고 예의 바르다. 특히 승리 후에도 고함이나 세리머니 없이 상대를 배려했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한 명의 부상으로 승부가 갈렸다는 점이 아쉽다”는 냉정한 평가도 있었지만, 다수는 “존중과 품격을 보여준 장면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언론이 주목한 포인트 역시 결과가 아닌, 신유빈이 보여준 스포츠맨십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