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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포켓북·이탤릭체 유행 선도한 출판문화 개척자를 아시나요

중앙일보

2025.12.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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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정한 목적·내용·체재에 맞춰 사상·감정·지식 등을 글·그림으로 표현하거나 인쇄하여 묶은 것을 책이라 하죠. 책은 인류가 대대로 쌓아온 지식을 후대에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요. 인류가 언제 어디서나 책을 휴대하고 읽을 수 있게 된 지는 5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어요. 이러한 '개인 독서' 문화 정착에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바로 이탈리아의 출판인 알도 마누치오입니다. 이름부터 생소한 알도 마누치오의 생애와 그의 업적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고가람 학생모델과 박건우 학생기자가 인천 연수구에 있는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을 찾아갔습니다.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이 이탈리아 로마 국립중앙도서관 및 베네치아 국립마르차나도서관과 협력해 기획한 전시 '천천히 서둘러라: 알도 마누치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출판인'(이하 '알도 마누치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출판인')을 이정연 학예사와 함께 살펴보기로 했죠.
『지리학』 속 15세기 이탈리아 지도.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알도 마누치오는 이탈리아 라치오주 바시아노에서 1449~1452년 사이에 태어난 인문학자이자 교육자예요. 학생들을 위한 일정 수준 이상의 교재가 부족하다고 느낀 그가 집필하고 이탈리아 국립마르차나도서관이 소장한 세계 유일본 『라틴어 문법』(1493) 초판본을 먼저 살폈죠. "그가 살던 당시 이탈리아는 중세를 지배한 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인간을 새롭게 바라본 시기인 르네상스였어요. 중세의 신 중심적 사고를 배격하고, 인간 중심적 사고를 고양하던 인문주의자들은 '원천으로 돌아가라(ad fontes)'를 외치며 고대 그리스·로마 문헌을 연구했죠. 즉, 그리스·로마 시대의 지혜가 인문주의의 시각에서 재해석되고, 인쇄술을 통해 전 유럽으로 퍼지던 시대였습니다."

15세기 중반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 인쇄술은 유럽에서 혁명에 가까운 변화를 일으켰죠. 구텐베르크의 인쇄 방식으로 출판된 책은 지식 전달의 속도와 양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으며, 사람들의 가치관도 바꿨어요. 가람 학생모델이 "흔히 유럽 사회의 지식 정보 보급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구텐베르크를 꼽는데, 알도 마누치오와 구텐베르크가 남긴 업적은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라고 질문했어요.
 이정연(맨 오른쪽) 학예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르네상스 시기 출판된 희귀본들을 소개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책의 인쇄 속도는 빨라졌지만, 당시 책은 휴대하기에는 어려운 크기였어요. 구텐베르크의 『성서』를 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죠. 반면 알도 마누치오는 책을 휴대 가능한 크기로 만들어 지식·정보를 대중화했다는 차이점이 있어요."

정확한 내용으로 인쇄된 책에 대한 갈망을 갖고, 고전 문헌에도 관심이 많았던 알도 마누치오는 출판인이 되기 위해 당시 인쇄업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로 향했어요. 당시 베네치아는 지중해 해상무역의 중심지로 국제 상업 네트워크의 자본이 결집된 도시였죠. 또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보다 검열이 느슨한 편이라 인쇄업이 발전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췄어요. 15세기 말부터 16세기 말까지 베네치아에서는 153명의 인쇄업자가 4500여 종의 서적을 인쇄했는데, 이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같은 시기 유럽에서 인쇄된 서적의 약 15% 정도를 차지하는 양이라고 해요.
이탈리아의 출판인 알도 마누치오는 이탤릭체 개발, 옥타보 판형 보급 등을 통해 '개인 독서 문화' 형성에 기여했다.
알도 마누치오가 집필한 『라틴어 문법』. ⓒ국립세계문자박물관

1489~1490년 사이, 즉 마흔이 넘은 나이에 출판업이라는 새로운 꿈을 이루기 위해 베네치아에 온 알도 마누치오는 알디네(Aldine) 인쇄소를 세우고, 그와 교류하던 많은 인문학자의 편집·번역 등의 도움으로 필사본에서 전해진 오류를 교정하는 등 자신이 출판한 고전 문헌과 당대 저작의 수준을 높였어요. 그리스·라틴어 고전을 꼼꼼히 대조하고 원문으로 인쇄한 덕분에 오류 가득한 판본으로 남거나, 아예 세상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던 문헌들이 후대에 전해질 수 있었죠.

"알도 마누치오는 텍스트를 단순히 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대한 가독성 있게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했어요. 그는 최고의 필경사들이 쓴 글씨체를 연구해 아름답고 가독성도 좋은 서체들을 개발했어요. 대표적인 예가 필경사 바르톨로메오 산비토의 고전적인 분위기의 필체를 본딴 이탤릭체(Italic)입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은 이탤릭체가 최초로 사용된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의 가장 경건한 편지』(1500)를 살펴봤어요.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1347~1380)가 남긴 368통의 편지를 모은 서간집으로, 성녀가 양손에 들고 있는 책 속의 'iesu dolce iesu amore(온화한 예수 사랑의 예수)', 심장 모양 안의 'iesu(예수)'라는 단어가 이탤릭체로 새겨졌죠.
최초로 이탤릭체가 쓰인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의 가장 경건한 편지』.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건우 학생기자가 "알도 마누치오가 남긴 가장 큰 업적은 이전까지 일부 종교 필사본에서 사용되던 작은 판형을 문학 작품에도 적용한 거라고 들었어요"라고 했죠. "맞아요. 당시 책은 크고, 무겁고, 장식이 많아 독서대에 올려놔야 볼 수 있는 크기인 경우가 많았어요. 알도 마누치오는 어디서든 들고 다니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전통적인 대형 판형(in folio·2절판)을 접어 옥타보(Octavo·8절판) 판형을 만들어내는 새로운 방식을 고안했어요. 가로 15cm x 세로 23cm 정도 크기의 이 판형을 그리스어로 '한 손에 쥘 수 있는'을 뜻하는 '엔키리디온(enchiridion)'이라 불렀죠."

이 학예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옥타보 판형으로 인쇄된 전시 도록을 보여줬는데, 확실히 휴대하기 편한 크기였죠. 오늘날 우리가 쉽게 접하는 한 손에 들고 읽는 책, 즉 포켓북의 원형이 이때 처음 대중화된 겁니다. 알도 마누치오의 옥타보 판형 도입 첫 사례는 1501년 출판된 고대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전집인데요. 책이 '휴대 가능한 지식'으로 전환된 순간이었습니다.
이탤릭체와 옥타보 판형이 전면 도입된 『베르길리우스 전집』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알도 마누치오의 혁신적인 시도로 그가 출판한 책은 큰 인기를 얻었어요. 베네치아 원로원으로부터 자신의 출판물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받았음에도 알도 마누치오의 이름과 이탤릭체를 도용한 위조판들이 유럽 곳곳에서 무단 복제됐죠. 알도 마누치오가 1503년 '모니툼(monitum, 경고·주의를 뜻하는 라틴어)'이란 글을 발표해 독자들에게 종이의 품질이나 헌정 서문의 유무를 확인해 진본을 구별할 수 있도록 안내할 정도로 큰 인기였어요. 1501년 알디네 판본을 모방한 고대 로마의 시인 마르티알리스의 작품을 수록한 『마르티알리스 시집』 프랑스 리옹 지역 위조판도 전시됐는데요. 알디네 판본을 한 줄 한 줄 모방하려 한 흔적은 당시 유럽 출판계에서 알디네의 위상을 보여줍니다.

전시실에서는 닻을 감고 있는 돌고래의 문양을 만날 수 있어요. 이는 알도 마누치오의 인쇄소 알디네를 상징하는 표식입니다. 점점 늘어나는 위조판에 대한 대응책이었죠. 돌고래와 닻 문양의 기원은 로마 제국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재위 69~79) 시대의 은화로 알려져 있어요.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인문학자이자 골동품 수집가였던 피에트로 벰보가 준 이 동전에서 영감을 받은 알도 마누치오가 1501년경부터 인쇄소의 표식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소중 학생기자단이 알도 마누치오가 출판인으로 활동하던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분위기를 살폈다.
전시 제목의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문장도 닻과 돌고래의 문양과 관련 있어요.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는 알디네의 사훈이자, 1508년 알도 마누치오가 출간한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의 『격언집』에 등장하는 격언이죠. 닻은 신중함을, 돌고래는 신속함을 상징해요. 즉, 닻과 돌고래는 지식의 신중한 검증과 신속한 확산이라는 상반된 가치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한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의 정신이 담긴 문양이자 '천천히 서둘러라'라는 표현의 의미를 형상화한 것이죠.

알디네는 문학뿐 아니라 의학·문법·철학·역사·농업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선보였는데, 이는 지식을 세상에 보편적으로 전파한다는 르네상스 시기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죠. 알도 마누치오가 약 20년 동안 출판한 책은 약 120~130여 종에 달합니다. 그의 책을 통해 철학자·과학자·역사가·의사들이 더 정확한 텍스트를 접할 수 있었고, 이는 르네상스는 물론 유럽 근대 학문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어요. "알도 마누치오가 책의 크기를 작게 만들고, 고전이나 여러 분야의 문헌들을 정확히 검증해 출판하지 않았다면 오류가 많은 판본이 계속 전해졌을 겁니다. 그러면 후대로 갈수록 오류가 더 많아지고, 잘못된 지식이 전달될 수 있죠."

1515년 알도 마누치오는 세상을 떠납니다. 이후 알도의 장인 안드레아 토레사노, 아들 파올로, 손자 알도 2세가 가업을 이어갔지만, 1597년 손자 알도 2세를 끝으로 100년 넘게 이어진 마누치오 가문의 출판 사업은 막을 내렸어요. 마누치오 가문이 인쇄한 대표 판본들을 만난 소중 학생기자단은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인쇄 기술 발명을 통해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는 데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시켰다면, 알도 마누치오는 이탤릭체 등 가독성이 높은 서체와 옥타보 판형의 개발을 통해 책의 대중화를 이끈 인물임을 알 수 있었죠. 그가 오랫동안 소수만의 것이었던 책의 경계를 허물며 지식의 대중화를 이끈 인쇄출판 문화의 개척자로 기억되는 이유예요.
박건우(왼쪽) 학생기자와 고가람 학생모델이 알디네 인쇄소의 상징인 닻과 돌고래 문양을 살폈다.

동행취재= 고가람(서울 송화초 4) 학생모델· 박건우(경기도 판교초 5) 학생기자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이번 취재를 통해 저는 알도 마누치오라는 사람을 알게 됐어요. '알도 마누치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출판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바로 옥타보 판형의 탄생이에요. 그전에는 비싸고 무겁던 책을 알도 마누치오는 손안에 쏙 들어오는 크기로 만들었어요. 알도 마누치오가 운영하던 인쇄소의 로고 문양도 봤죠. 닻을 감싸고 있는 돌고래의 모습으로 '신중하지만 서둘러서'라는 뜻이 담겨있어 정말 흥미로웠어요. 그런 알도 마누치오의 마음은 제게 교훈이 되었죠. 저는 우리가 개인 독서 문화를 확산시킨 알도 마누치오에게 감사하고, 많은 사람이 그를 기억하면 좋겠어요.

고가람(서울 송화초 4) 학생모델

'알도 마누치오, 세상을 바꾼 위대한 출판인' 전시를 살펴보며 제가 처음 들어본 인물인 알도 마누치오가 세상을 바꾼 위대한 출판인이란 사실을 배웠습니다. 알도 마누치오는 이탤릭체를 개발하는 등 출판의 문법을 만들었다고 평가되는 사람이에요. 그리스·로마 고전 문학 등 매우 다양한 책을 출판해 120~130종 정도 출판했다 하니 그 규모와 인기도 짐작되죠. 또한 알도 마누치오는 인쇄소를 열고, 책의 크기도 줄여 민중들도 책을 쉽게 읽으며 가지고 다닐 수 있도록 했어요. 소수의 특권을 민중화시켜 모두의 것으로 만든 알도 마누치오의 업적을 알아보고 여러 르네상스 시대의 책들도 관람하며 알도 마누치오 인쇄소의 상징인 돌고래와 닻, ‘천천히 서둘러라’의 의미를 더 자세히 새길 수 있었어요. 특히 『라틴어 문법』, 『시에나의 성녀 카타리나의 가장 경건한 편지』 등 세계에서 유일하고 유명한 책들도 볼 수 있어서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었어요.

박건우(경기도 판교초 5) 학생기자






성선해([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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