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영화의 고전'으로 꼽히는 이타미 주조 감독의 영화 '담뽀뽀'가 개봉 40주년을 맞아 17일 국내에서 첫 개봉한다. 그동안 소수 영화 팬이나 영화학도 사이에서 소문난 이 영화를 4K 리마스터링(아날로그 원본을 디지털로 전환해 해상도와 음질을 개선하는 작업) 버전으로 극장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영화는 우연히 허름한 라멘(일본식 라면) 가게를 찾은 트럭 기사 고로(야마자키 츠토무)가 가게 주인 담뽀뽀('민들레'라는 뜻, 미야모토 노부코)의 요청으로 이곳을 맛집으로 만들기 위해 좌충우돌하는 내용이다. 198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음식 이야기를 담았지만, 과거 서부 영화의 뼈대를 차용한 독특한 전개로 1985년 개봉 당시 '라멘 웨스턴(Ramen Western)'이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한 두 줄로 요약된 줄거리만 보고 '장인정신'을 주제로 한 내용으로 단순하게 짐작하면 안 된다. '라멘'과 '서부 영화'의 결합만큼이나 엉뚱하고 기이한 극적인 요소들이 곳곳에서 지뢰처럼 깔려 있다. 가벼운 코미디의 형식을 빌렸지만, 인간의 욕망에 대한 진지한 탐구와 일본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가 함께 녹아 있다.
트럭 운전사 고로가 담뽀뽀를 도우며 완벽한 라멘을 완성해가는 이야기가 주된 흐름이지만, 영화는 중간 중간 뜬금없이 전개되는 여러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괴짜 감독이 쓴 유쾌하고 신랄한 '음식 문화 탐구 보고서'로 확장된다. 음식을 추앙하고, 음식을 통해 (계급을)구별 짓고, 사랑을 나누고, '사는 맛'을 확인하는 다양한 인간의 모습이 거기에 있다.
노인이 젊은 제자에게 라멘 먹는 법을 '다도(茶道)' 처럼 엄숙하게 가르치는 에피소드를 보자. 스승은 "먹기 전에 국물과 면을 지긋이 바라보며 음미해야 하며, 인사하듯 젓가락으로 면을 살짝 흔들고, 이후 국물을 한 모금만 먼저 마셔야 한다"고 가르친다. 규율과 절차를 중시하고 먹는 과정을 '도(道) 닦는' 의식으로 만든 일본 문화의 단면을 풍자한 대목이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 먹는 법을 강의하는 에피소드, 회사원들이 가장 높은 사람의 주문을 그대로 따라하는 에피소드 등에선 수직적인 조직 문화와 권위주의에 주눅 든 사회를 신랄하게 바라본 감독의 시선이 읽힌다.
마냥 웃음만 주는 것은 아니다. 충격적인 동시에 서글픈 에피소드도 있다. 집에서 중병으로 죽어가는 주부를 그린 대목이다. 의사는 "살 가망이 없다"고 선언하고, 아이들은 울고, 남편은 아내에게 "일어나"라고 소리치지만 여자는 일어나지 못한다. 남편이 다시 "어서 일어나 밥을 하라.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소리 치자 여자는 벌떡 일어나 비틀비틀 부엌으로 가더니 밥을 볶아 상을 차리고 다시 누워 눈을 감는다. 의사가 여성의 사망 시간을 기록하자 남편은 아이들에게 말한다. "어서 먹어라. 엄마가 한 밥이니까. 식기 전에 먹어야 해".
영화는 이를 통해 가족을 위해 평생 가장 많은 시간을 부엌에서 보낸 어머니들의 모습을 제대로 돌아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음식=사랑'이라고 생각해온 문화 이면에 여성의 돌봄 노동을 당연한 의무로 여겨온 것은 아닌지 묻는다. 반면 음식이 에로틱한 욕망과 연결돼 있음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도 있다. 감독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지 않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때로는 날카롭게, 코미디와 드라마를 섞으며 사회에 대한 풍자를 박력 있게 끌고 간다.
이타미 주조(1933~1997) 감독은 배우·디자이너·수필가로 활동하다가 1981년 51세에 감독으로 데뷔했다. '담뽀뽀'는 그의 두 번째 영화이며, 이후 그는 일본 관료사회, 위선적인 중산층의 삶, 야쿠자 문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영화를 다수 제작하고 64세에 세상을 떠났다. 주연을 맡은 라멘 가게 주인 담뽀뽀 역할을 맡은 미야모토 노부코는 이타미 감독의 아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