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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캐나다·멕시코까지 확산…뉴노멀 된 트럼프식 ‘압박→관세→협상’

중앙일보

2025.12.15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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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세를 협상의 ‘무기’로 활용한 이후 이 같은 방식은 다른 국가들로 빠르게 퍼지고 있다. 무역적자와 자국 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상대국을 압박한 뒤 관세를 부과하고, 이후 협상을 통해 수위를 조정하는 이른바 ‘압박→관세→협상’ 전략이 하나의 통상 공식처럼 자리 잡는 모습이다.

최근 비(非)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에 대해 관세 부과를 예고한 멕시코의 조치가 대표적이다. 15일 멕시코 현지매체 등에 따르면 멕시코 상원은 자동차부품·철강·알루미늄·가전·섬유 등 17개 전략 분야 1463개 품목에 대해 5~50%의 관세를 부과하는 일반수출입세 개정안을 승인해 행정부에 송부했다. 이 법안은 내년 1월부터 FTA 미체결국을 대상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중국과 한국은 멕시코와 FTA를 체결하지 않았으면서도 교역 규모가 커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큰 국가로 꼽힌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한국과 중국과도 협력 의지가 있으며, 실제 협의를 통해 일부 관세율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관세를 먼저 부과한 뒤 협상을 통해 조정하겠다는 접근은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 전략과 닮았다는 평가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과거에는 무역적자를 소비자 후생의 관점에서 봤다면, 이제는 국내 생산자와 일자리의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며 “글로벌 효율성보다 자국 산업 경쟁력을 우선하는 이른바 ‘홈랜드 이코노미(Homeland Economy·자국우선주의)’ 기조로 각국의 시각이 전환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무역기구(WTO)는 최근 공동 연구 보고서에서 “관세와 각종 무역 규제가 더는 일회성 대응책이 아니라 주요국의 상시적인 협상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자유무역 질서에서 예외로 여겨졌던 관세가 뉴노멀로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포함한 각국의 무역정책 활용 정도를 보여주는 ‘무역정책활동지수(TPA)’를 제시했다. 이 지수는 트럼프 1기 미·중 분쟁이 본격화한 2019년 이후 급격히 상승해, 2011년 100에서 올해 300을 넘어섰다. IMF는 “관세가 협상의 종착점이 아니라 출발점이 되는 구조로 통상 환경이 바뀌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흐름은 주요 20개국(G20)을 중심으로 두드러진다. 캐나다는 철강 저율관세할당(TRQ) 기준을 100%에서 75%로 낮추고 철강 파생상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하고 철강 무관세 수입 쿼터를 축소하며 규제 강도를 높이고 있다. 공급과잉이나 탄소 감축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자국 산업 보호와 함께 협상 조건 재조정을 염두에 둔 조치로 해석된다.

WTO에 따르면 최근 1년간 G20 국가 수입의 약 22%가 관세·쿼터 등 수입 제한 조치의 영향을 받았고, 규제 대상 상품 가치는 4조 달러(약 5890조원)를 넘었다.

이 같은 통상 환경 변화는 한국 기업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관세와 비관세 장벽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철강·자동차·배터리 등 주력 수출 품목을 중심으로 겹규제가 강화되고 있어서다. 허윤 교수는 “관세 대응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공급망 안정이나 핵심 원자재 관리, 기술 유출 방지, 산업 공동화 대응 등과 같은 요소들을 함께 봐야 한다”며 “각국이 자국 산업과 일자리를 중심에 두고 정책을 설계하는 흐름이 뚜렷해진 만큼, 한국도 이런 변화에 맞는 통상 전략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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