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 해변에서 열린 유대인 축제 현장에서 발생한 대규모 총기 난사 사건과 관련해, 용의자 차량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깃발이 발견돼 수사당국이 IS 연계 가능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 16명이 숨졌다.
15일(현지시간) AFP·AP·CNN 등 외신에 따르면 호주 주(州)·연방 합동대테러대응팀(JCTT)은 시드니 동부 본다이 비치 인근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의 용의자들이 사용한 차량에서 IS 깃발 2개와 급조 폭발물(IED) 2개를 발견했다. 다만 뉴사우스웨일스(NSW)주 경찰은 깃발 발견 사실에 대해 “확인해 줄 수 없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사건은 14일 오후 유대교 명절 하누카(Hanukkah)를 기념하는 축제 도중 발생했다. 경찰은 총격 용의자가 사지드아크람(50)과 그의 아들 나비드아크람(24)으로, 부자(父子) 관계라고 밝혔다. 아버지 사지드는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사살됐고, 아들 나비드는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은 현재까지 공범은 없는 단독 범행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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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서 IS 상징물…“충성 맹세 여부도 수사”
호주 공영 ABC방송은 수사에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해, 대테러 수사관들이 두 용의자가 IS에 충성을 맹세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조사 중이라고 전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명백한 반유대주의 테러 행위로 규정하고, 극단주의 이념과의 연관성 규명에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용의자 중 생존자인 나비드는 과거 정보당국의 감시 대상이었던 사실도 파악됐다. 호주안보정보원(ASIO)은 2019년 시드니에서 IS 테러를 모의한 혐의로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은 아이작 엘 마타리와 나비드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정황을 포착하고 약 6개월간 조사한 바 있다.
다만 ASIO는 당시 나비드를 고위험 인물로 분류하지는 않았다.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나비드아크람이 극단주의 인물들과의 연관성 때문에 검토 대상이 된 적은 있지만, 지속적인 위협이나 폭력 가담 가능성은 없다는 평가가 내려졌다”고 말했다. 마이크 버지스ASIO 국장도 “용의자 중 한 명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인물이었으나, 즉각적인 위협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사망한 사지드아크람은 취미 사냥용 총기 면허를 소지하고 있었으며, 합법적으로 총 6정의 총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는 2015년부터 총기 면허를 유지해 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총기 규제 모범 국가’로 평가받아 온 호주 사회에서는 규제의 실효성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다.
크리스 민스 NSW 주총리는 “농업 종사자가 아니라면 왜 이런 종류의 무기가 필요한지 의문”이라며 총기 관련 법률 개정 검토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앨버니지 총리도 총기 소지 허가 기준과 보유 수량 제한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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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 소녀·홀로코스트 생존자 희생
이번 총격으로 10세 소녀와 87세 노인을 포함해 최소 16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부상했다. 희생자 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겪은 생존자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유대교 지도자인 랍비 역시 희생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편 사건 당시 맨몸으로 총격범에게 접근해 몸싸움 끝에 총기를 빼앗아 추가 피해를 막은 시민도 주목받고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시드니에서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아흐메드 알 아흐메드(43)는 이 과정에서 총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으며, 현재 병원에서 회복 중이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번 사건을 강하게 규탄하며 호주 내 반유대주의 확산에 우려를 표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반유대주의는 방치될 때 커진다”고 주장했다. 호주 정부는 이번 총격과 외국 정부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도 배제하지 않고 조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