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연구용 지하연구시설(URL) 건설 사업이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를 확정받으며 본궤도에 올랐다.
16일 원자력업계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재정사업평가위원회를 열고 강원 태백에 총사업비 6475억원 규모의 URL을 구축하는 사업의 예타면제를 결정했다. 이에 따라 수년 이상 소요될 수 있는 경제성·정책성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기본계획 수립과 실시설계 단계로 곧바로 넘어갈 수 있게 됐다.
이번 예타면제 결정은 올해 3월 제정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고준위법)’과 맞물려 정책적 의미를 더한다. 이 법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책임 주체와 부지 선정 절차, 주민 의견 수렴 방식 등을 처음으로 체계화했으며, 2050년까지 중간저장시설을 확보하고, 2060년까지 최종처분시설을 운영한다는 국가 목표를 제시했다.
태백 URL은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실제로 반입하거나 처분하는 시설은 아니다. 지하 약 500m 환경에서 암반 특성, 지하수 흐름, 열 이동, 장기 안전성 등을 연구·실증하는 연구 전용 시설로, 향후 건설될 처분시설의 설계 기준과 안전성 입증에 필요한 핵심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때문에 태백 URL은 고준위 방폐장 확보의 첫 단추로 여겨진다.
핀란드·스웨덴 등 해외에서도 처분시설 구축에 앞서 연구용 URL을 운영했다. 핀란드는 특히 최종 처분시설인 온칼로(Onkalo) 건설에 앞서 2004년부터 15년 이상 URL을 운영하며 처분 기술을 검증해 왔다. 온칼로는 지하 처분시설 건설을 마치고 2021년 운영 허가를 받았으며 현재는 처분 개시를 위한 최종 준비 단계에 있다.
태백시는 지난해 12월 단독 신청을 통해 국내 최초 연구용 URL 부지로 최종 확정됐다. 원자력·지질·행정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부지선정평가위원회가 시추조사 결과와 평가 기준을 토대로 검증을 진행했고,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다만 일부 원자력·지질 전문가들은 연구용 URL이 단순한 지질조사 시설이 아니라 처분시스템의 성능을 실증하는 공간인 만큼, 장차 조성될 처분시설과 최대한 유사한 지질 환경에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태백 부지가 공모 당시 제시된 요건을 충족했다는 입장이다. 공단은 시추조사를 통해 지하 약 500m 심부에 단일 결정질암반이 충분한 두께와 면적으로 분포한 것을 확인했고, 처분시설과 동일한 기준을 그대로 적용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한다. 장기 안전성 검증과 처분기술 개발에는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
원자력환경공단은 지난 4월 ‘고준위 방폐물 관리사업 비전 선포식’을 열고 중장기 로드맵을 발표했다. 공단은 “단순한 계획 발표가 아니라 고준위 방폐물을 ‘적당히 저장하고 미루는 문제’에서 ‘책임 있게 관리하는 미래 과제’로 전환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URL 연구 성과의 국제 검증과 공개 ▶지역사회와의 이익 공유 ▶안전 모니터링에 대한 주민 참여 확대 등이 병행되지 않으면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정재학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연구용 URL은 단순한 R&D 시설을 넘어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심층 처분의 안전성에 대해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소통하는 창구 역할도 하게 될 것”이라며 “과거 안면도나 부안 사례처럼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 생길 수 있는데, 사회적 수용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오히려 실제 방폐장 건설이 더 늦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