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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비상에 '배추국장' 돌아온다…차관급 물가안정 책임관 지정

중앙일보

2025.12.16 00:57 2025.12.16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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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이어지는 원화 가치 하락(환율 상승)으로 수입 물가가 들썩이자 정부가 품목별로 담당 공무원을 정해 물가를 관리하는 '물가 책임제'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과거 이명박(MB) 정부 시절 ‘배추 국장’ ‘쌀 실장’을 등장시켰던 ‘물가 관리 책임실명제’처럼 단기 미봉책에 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각 부처에 차관급 물가안정책임관을 두기 위해 대상 품목 등을 검토하고 있다. 사진은 12일 서울 시내의 한 마트에 버터가 진열된 모습. 뉴스1
16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각 부처에 차관급 물가안정책임관을 두기 위해 대상 품목 등을 검토하고 있다. 기재부는 지난 11일 신년 업무보고 때 이재명 대통령에게 이런 내용의 물가 관리 대책을 보고했다.

물가안정 책임관은 각 부처 차관이 소관 품목의 수급과 가격 변동을 점검해 이를 직접 책임지고 관리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농림축산식품부가 농ㆍ축산물, 가공식품을 해양수산부가 수산물, 산업통상부가 석유류 등의 품목을 담당하게 된다. 기재부 관계자는 “가공식품 등 국민이 물가 상승을 크게 체감하는 품목을 집중해 관리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정부가 물가안정책임관을 꺼낸 건 최근 물가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다.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2.4% 오르며 10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올해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특히 최근 원화가치 하락으로 수입 물가 오르는 게 부담이다. 지난 11월 수입물가지수는 전달보다 2.6% 오르며 지난해 4월(3.8%) 이후 1년 7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통상 수입물가는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에 반영된다. 실제 지난달 국제유가는 하락했지만, 환율 영향으로 국내 석유류 가격은 전년보다 5.9% 올랐다.


소비자물가 지수 추이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국가데이터처]
이 대통령도 최근 물가 관리에 대한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4일 “최근 체감 물가가 높아지며 민생에 부담이 되고 있다”며 “관계부처들은 주요 민생 품목을 중심으로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정책 수단을 선제적으로 동원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식품업체 등의 담합 등이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품목별 책임제를 도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11월 때도 각 부처 차관을 물가안정책임관으로 지정했고,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에는 담당 공무원의 이름을 걸고 관리하는 ‘물가 관리 책임실명제’까지 도입해 '배추 국장' 등의 별칭을 낳기도 했다.

다만 물가 관리 책임제가 제 효과를 낼지는 미지수다. 물가 상승이 원화가치 하락 등 대외 복합 요인에 기인한 데다,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가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인위적인 가격 억제가 오히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정부의 물가 관리 책임제는 득보다 실이 더 컸다”며 “기업 이익 감소로 경제 성장 동력이 약화되는 데다, 기업들이 눈치를 보다가 한 번에 가격을 많이 올리는 경우도 빈번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인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도 “외환시장 안정 등 근본적 처방이 없는 품목별 관리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는 품목별 관리 외에도 물가 안정을 위해 할인 지원 등 각종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 등이 설탕, 밀가루 등 가공식품 원재료에 대한 식품회사들의 담합 여부를 살펴보고 있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국민연금과 수출기업 등 달러 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각 주체에 대한 관리도 강화한다. 기재부는 16일 이형일 기재부 1차관 주재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HD한국조선해양 등 주요 수출기업과 간담회를 열고 환헤지 확대 등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기업의 적극적인 협력을 당부했다.



안효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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