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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운드엔 ‘유니콘’ 하나 남았다

중앙일보

2025.12.16 07:01 2025.12.1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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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가 지나가는 느낌이네요. 그래도 한때는 프로야구의 신형 엔진 역할을 했는데….” 현대 유니콘스 창단 멤버 박재홍은 16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아쉬움을 토로했다. 하루 전(15일) 은퇴한 후배 정훈을 떠올리면서다. 현대그룹을 모태로 둔 현대는 사실 1982년 KBO리그 출범과 함께 초창기 멤버로 참여할 뻔했다. 하지만 당시 대한체육회장을 겸하던 그룹 창업자 고(故) 정주영 회장이 1988 서울올림픽 준비에 집중하면서 창단 작업을 멈췄다.

프로야구와 다시 인연을 맺은 건 1994년 현대 피닉스란 이름으로 실업야구팀을 만들면서부터다. 과감한 투자로 문동환과 조경환·문희성·강혁 등 아마추어 야구의 최고 선수들을 줄줄이 영입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이어 이듬해 말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며 KBO리그 진입에 성공했다. 전설 속 동물 유니콘을 마스코트이자 팀 명칭으로 정한 현대는 탄탄한 전력을 바탕으로 가파르게 질주했다. 1996년 곧바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이후 4차례(1998·2000·03·04)나 우승하며 해태를 위협하는 새로운 왕조를 세웠다. 20승 투수 3총사(임선동·정민태·김수경)를 보유한 2000년 선발진은 KBO리그 역대 최강 조합 중 하나로 회자된다. 박진만, 박재홍, 이숭용 등 당대 최고 스타들이 함께 한 야수진도 빛났다.

하지만 현대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지난 2001년 정주영 명예회장이 세상을 떠난 이후 암흑기가 도래했다. 모기업인 현대그룹이 경영권 분쟁에 재정난까지 겪으면서 구단에 대한 재정 지원 규모가 급격히 줄었다. 서울 입성을 염두에 두고 지난 2000년 인천을 떠나 수원으로 연고를 옮긴 상태였지만, 자금줄이 말라 인천 복귀와 서울 진출이 모두 무산됐다. 결국 2007년을 끝으로 공중분해 됐다.

야구인들은 “현대의 해체는 프로야구의 최대 위기였다”고 입을 모은다. 박재홍은 “10개 구단 체제로 1200만 관중 시대를 활짝 연 현재와 달리 당시 KBO리그는 8개 구단 유지에도 어려움을 겪었다”면서 “현대가 흔들리면서 프로야구 전체가 휘청였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현대 선수단은 우여곡절 끝에 새 주인을 찾았다. ‘해체 후 재창단’이라는 형식을 거쳐 투자사인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에 인수됐고, 히어로즈 야구단으로 간판을 바꾼 뒤 우리와 넥센을 거쳐 현재의 키움으로 이어지며 명맥을 유지 중이다.

그러나 프로야구에 남은 ‘유니콘’의 자취가 조만간 완전히 사라질 전망이다. 현대 출신 최후의 멤버들이 그라운드를 떠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 현대 유니폼을 입어 본 현역 선수는 정훈과 오재일·장시환·황재균까지 모두 4명이었다. 이들 중 오재일이 먼저 현역 마침표를 찍었다. 정훈이 지난 15일 은퇴를 선언해 장시환과 황재균만 남았다. 최근 한화 이글스에서 방출된 장시환은 현역 연장을 꾀하고 있다. 황재균은 KT 위즈와 FA 협상 중이다.

프로야구에서 현대의 흔적이 차츰 지워지고 있지만, 유산 만큼은 여전히 살아 숨쉰다. 현재 KBO리그 사령탑 중 현대 출신의 비중이 적지 않다. 올 시즌 통합 우승을 이룬 염경엽 LG 트윈스 감독을 비롯해 이숭용 SSG 랜더스 감독, 설종진 키움 히어로즈 감독, 박진만 삼성 감독 등이 현대 출신이다. 뿐만 아니라 단장과 해설위원 등 여러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1996년 현대 창단 멤버로 참여한 박재홍은 “현대는 그 시절 프로야구에 새로운 활력을 줬다. 공격적인 투자로 리그의 저변을 넓혔고, 선진적인 운영 시스템으로 주목 받았다”면서 “비록 역사는 짧았지만 현대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앞으로도 현대 출신 야구인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유지하리라 본다. 현대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진 구단을 추억할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고봉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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