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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아 살해 땐 최대 사형"…처벌 강화해도 비극 되풀이, 왜

중앙일보

2025.12.16 12:00 2025.12.16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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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주사랑교회에서 운영하는 베이비박스의 모습. 김정민 기자

출산 직후의 신생아가 유기되는 등의 이유로 사망하는 사례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2년 전에도 유사한 사건이 이어져 아기를 숨지게 한 부모를 일반 살인범처럼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반복되자 “처벌 강화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장)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 14일 서울 중부경찰서는 중구 필동의 한 건물에 신생아를 유기한 혐의를 받는 베트남 국적 20대 유학생 A씨를 체포했다. 이날 오후 6시25분 “종이봉투 안에 신생아가 버려져 있다”는 신고가 소방당국에 접수됐고, 6시31분 출동한 소방관에 의해 신생아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중부서는 A씨가 출산 직후 신생아를 봉투에 넣어 유기한 것으로 보고 범행 동기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현장에서 A씨를 돕는 등 범행에 가담한 B씨도 함께 체포됐다. 경찰은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도 신청했다.

지난 13일엔 경기 의정부시 소재의 한 모텔 세면대에서 신생아가 숨진 채 발견됐다. 세면대에는 일부 물이 차 있었다고 한다. 경기북부경찰청은 아동학대 치사 혐의로 친모인 20대 여성 C씨를 입건했다. C씨는 경찰에“혼자 모텔 방에서 출산했고 아이를 씻기려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 관계자는 “살해 의도가 있었는지 등을 수사 하기 위해 부검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11월과 2019년 11월 각각 출산한 아기를 살해한 혐의로 혐의로 구속된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 피의자인 30대 친모는 최근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연합뉴스

수사 과정에서 모친에게 신생아를 살해하려는 고의가 있었다는 점이 입증되면 현행법(아동학대처벌법 제4조)에 따라 최대 사형에 처할 수 있다. 이는 2023년 8월 8일 영아 살해죄(형법 제251조)가 폐지되면서 형량이 강화된 결과다. 영아 살해죄는 ‘양육 불능 예상’ ‘참작할 만한 동기’ 등으로 인해 영아를 살해했을 경우 일반 살인죄보다 감경(10년 이하의 징역)하도록 규정한 조항이었다. 그러나 같은 해 6월 이른바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이 발생하자 “생명권 보호에 미흡한 법 조항”이라는 비판이 이어지며 삭제됐다.



'원치 않는 임신'이 근본 원인

법이 바뀐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유사 사례가 반복되자 처벌 강화만이 해결책이 아니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사망의 근본적 원인인 원치 않는 임신을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7월 19일부터 자신의 신원을 밝히지 않더라도 아이를 안전히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위기임신보호출산제를 시작했고, 올해 10월까지 451명의 출산을 도왔다. 정익중 아동권리보장원 원장은 “그런데도 신생아 사망이 반복되는 이유는 사각지대가 여전히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더 다양한 지원책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짚었다.

지원책 중 하나로 정부 차원의 ‘베이비박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후를 위한 병원은 없다』의 저자인 박한슬 약사는 “현재 민간단체에서 베이비박스를 설치해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양육권 포기 문제 등 아직도 법적인 부분이 미비해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기에 한계가 있다”며 “국가나 공공이 지금이라도 나서 버림받을 아이들을 거둬야 한다”고 짚었다. 영아 유기를 중범죄로 보는 미국에서도 2008년부터 정부가 지정한 장소에 영아를 유기하면 처벌하지 않는 ‘안전한 영아 피난처법’을 시행하고 있다.

오유경 식품의약품안전처장. 사진 식약처


"정부 운영 '베이비박스', 임신중절 기회 넓혀야" 주장도

이외에도 임신중절의 기회를 폭넓게 부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임신중절의 기회를 놓친 엄마들이 아이를 낳고도 차마 기를 자신이 없어 제 손으로 아이 숨을 끊는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며 “초기 임신중지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국내 판매를 허가하지 않고 있는 임신중지약(미프진)의 도입이 대안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미프진은 미국·프랑스·일본 등 90여개 국에서 허가를 받아 사용 중 경구용 임신중지 의약품이다. 우리나라에선 낙태죄는 폐지됐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관련 법 개정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국내 판매를 허가하지 않고 있다.



김정재.오삼권([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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