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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도 3일 못 버텨"…심장 몸 밖에 있던 서린이 기적의 생존

중앙일보

2025.12.16 19:00 2025.12.16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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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소증을 안고 태어났지만, 치료 끝에 건강하게 성장한 아기 서린이. 서울아산병원
가슴 뼈와 피부 없이, 심장은 몸 밖에 나온 채 태어난 아기가 여러 분야 전문의들의 집중 치료를 받은 끝에 기적적으로 병원 문을 나섰다.

17일 서울아산병원은 국내 최초로 심장이소증을 앓는 신생아의 심장을 흉강(가슴) 안에 넣고 가슴 부위를 배양 피부로 덮는 고난도 재건 수술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기적의 주인공은 생후 8개월 박서린(사진). 심장이 흉곽 안에 위치하지 않고 몸 바깥으로 나와 있는 원인 불명의 선천성 초희귀 질환 ‘심장이소증’을 안고 태어났다. 100만 명당 5~8명에게 발생하며, 환자의 90% 이상은 출생 전 사망하거나 태어나더라도 72시간을 넘기지 못할 만큼 치명적인 병이다.

서린이는 첫째 출산 뒤 둘째를 간절히 원했던 부모가 어렵게 가진 아이였다. 3년간 14차례의 시험관 시술 끝에 기다리던 아기가 찾아왔다. 기쁨도 잠시, 임신 12주 째인 지난해 11월 태아 정밀 초음파 검사에서 심장이소증이 발견됐다.

당시 첫 진료 병원에서는 ”살아서 태어나기 어렵고, 태어나더라도 3일을 넘기기 힘드니 마음의 정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린이 부모는 마지막 희망을 안고 서울아산병원을 찾았다. 부부는 “14번을 기다린 아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가장 먼저 만난 서울아산병원 태아치료센터 이미영 교수(산부인과)는 진료 때마다 정밀 초음파 검사를 진행하며 심장의 구조와 태아의 건강 상태를 살폈다. 주치의인 소아청소년심장과 백재숙 교수와 소아심장외과 최은석 교수는 치료에 참고할 수 있는 모든 연구 문헌을 찾았고 “태아의 심장 구조는 정상”이라며 “끝까지 함께 할 테니 포기하지 말라”며 부모에게 용기를 줬다.

의료진의 노력과 부모의 간절한 마음이 더해져 서린이는 엄마 뱃속에서 38주를 버텨냈다. 지난 4월 10일 드디어 세상과 만난 서린이의 심장은 몸 밖에 완전히 노출된 채 뛰고 있었다. 심장을 보호해야 할 가슴뼈·갈비뼈가 없었고, 가슴과 복부의 피부조직도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흉부가 열려 있는 상태였다. 울면서 힘을 줄 때마다 폐 일부마저 몸 밖으로 밀려 나왔다. 자가 호흡으로는 생명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태였다. 인공호흡기를 연결하고 심장은 멸균 드레싱으로 우선 감쌌다.

소아청소년심장과, 심장혈관흉부외과, 성형외과, 소아심장외과, 산부인과, 융합의학과의 전문가가 모여 치료 방향을 의논했다. 의료진은 흉강 내 공간을 확보해 심장을 넣은 뒤, 그 위를 배양시킨 피부로 덮어 흉부를 재건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심장이소증을 안고 태어났지만, 치료 끝에 건강하게 성장한 아기 서린이의 출생 당시 가슴 모습 서울아산병원
심장이소증을 안고 태어났지만, 치료 끝에 건강하게 성장한 아기 서린이. 서울아산병원
심장이소증을 안고 태어났지만, 치료 끝에 건강하게 성장한 아기 서린이와 의료진의 모습. 서울아산병원
심장이소증을 안고 태어났지만, 치료 끝에 건강하게 성장한 아기 서린이와 가족들. 서울아산병원

가장 시급한 건 몸 밖에 있는 심장을 보호하고 호흡과 체온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출생 다음날 성형외과 김은기 교수는 개방된 흉부와 노출된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임시로 인공피부를 덮는 수술을 했다.

이어 심장혈관흉부외과 최세훈 교수는 5월 7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심장을 흉강 내에 넣는 수술을 맡았다. 혈압을 유지하면서 주변 장기를 손상시키지 않고 심장이 들어갈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고난도 수술이었다. 최 교수는 간을 아래로 내리며 조금씩 심장을 밀어 넣었고 3번째 수술 만에 심장 전체가 흉강 안쪽에 자리 잡았다.

이어 6월 10일에는 김은기 교수가 서린이의 피부를 소량 떼어 배양한 자기유래 배양피부를 흉부에 이식하는 데 성공했다. 생후 두 달 만에 서린이의 심장은 제자리를 찾았다.

하지만 여전히 흉부는 피부로만 덮여 있어 외부의 충격에 취약한 상태였다.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가 3D 프린팅을 이용해 흉벽이 벌어지지 않도록 모아주는 맞춤형 흉부 보호대를 제작했다. 이 시기부터 재활의학과 의료진은 서린이의 재활 치료를 진행했다.

서린이는 건강을 점차 회복해 일반병동으로 이동했다. 생후 100일쯤에는 엄마 아빠에게 처음으로 미소를 보여줬다. 서린이는 최근 퇴원해 외래 진료를 다니면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

완전히 치료가 끝난 건 아니다. 3세를 넘어설 때까지 기다렸다가 가슴에 단단한 인공 구조물을 세우고 그 주변을 서린이의 근피부조직으로 덮는 수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몸 밖에서 뛰던 작은 심장이 이제는 몸 안에서, 제자리에서 힘차게 뛰고 있다.

서린이 엄마는 “병에 대한 치료 사례와 정보가 부족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서울아산병원 모든 의료진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치료 방법을 찾아내며 희망을 줬다”라며 “서린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준 의료진께 감사드린다”라고 마음을 전했다.
 심장이소증을 안고 태어났지만, 치료 끝에 건강하게 성장한 아기 서린이와 언니가 마주보며 웃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백재숙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심장과 교수는 “진료의 매 순간마다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서린이가 보여주는 작은 변화들이 의료진에게 분명한 희망이 되었고, 그 희망이 다음 치료 단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바탕이 됐다”라며 “한 걸음이라도 계속 내딛으려는 마음이 새로운 가능성을 만든다는 응원의 메시지를 희귀 질환을 가진 아이들과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세훈 서울아산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서린이를 살려내는건 의사 한 명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각자의 관점에서 본 평가와 치료 방향을 공유하고, 긴밀하게 협진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밝혔다.

이에스더([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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