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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당 원화가치 1480원 돌파…한은 "국가위기 과거와 달라"

중앙일보

2025.12.16 21:27 2025.12.16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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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17일 원·달러 환율 급등과 관련해 “위기라고 말할 수 있고 걱정이 심하다”면서도 “과거처럼 금융기관이 무너지고 국가 부도 위험이 발생하는 전통적인 금융위기는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이날 열린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설명회에서 “환율이 장중 1480원 선을 넘는 등 이례적인 상승세를 보이면서 물가와 분배 측면에서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순대외채권국이기 때문에 원화가 절하되면 이익을 보는 주체도 있다”면서도 “환율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크고, 내부적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극명히 나뉜다는 점에서 사회적 화합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성장 양극화까지 감안하면 현재 환율 수준을 안심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환율이 10% 오를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약 0.3%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은은 환율이 내년까지 1470원 안팎의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기존 전망치(2.1%)를 웃도는 2.3% 안팎까지 높아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총재는 최근 고환율의 배경으로 대외 요인뿐 아니라 국내 수급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 달러화가 안정됐음에도 환율이 한동안 계속 오른 데는 내부적 요인이 컸다”며 “불필요하게 올라간 부분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변동성 관리뿐 아니라 레벨(수준) 측면에서도 점검과 조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국민연금의 역할을 핵심 변수로 지목했다. 이 총재는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와 환 헤지 방식과 관련해 “의사결정 과정과 시점이 시장에 지나치게 투명하게 노출돼 있다”며 “패를 다 까놓고 게임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환 헤지 개시·중단 시점이 모두 알려지면 시장에 특정 방향의 기대가 형성돼 환율이 박스권에 갇히거나 한쪽으로 쏠릴 수 있다”며 “전략적으로 덜 투명하고 보다 유연한 운용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날 국민연금이 전략적 환 헤지 운용을 보다 유연하게 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서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또 “국민연금 수익률이 현재는 원화 기준으로만 평가되는데, 향후 자금을 국내로 회수하면 원화 절상으로 수익률이 떨어질 수 있다”며 “어떤 수익률 기준으로 보상할지에 대해서도 중장기적으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투자 비중이 급격히 커진 국민연금이 ‘큰손’으로서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도 강조했다.

개인 투자자의 해외 투자 확대를 환율 상승 요인으로 언급한 데 대해 ‘서학개미 책임론’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특정 그룹을 탓하려는 의도는 아니다”라며 “한·미 성장률과 금리 격차, 코리아 디스카운트 같은 구조적 요인은 부인할 수 없지만, 이를 고치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정책 당국으로서는 단기 수급 요인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연간 최대 2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계획이 환율 상방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에 대해서는 “외환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지도록 설계돼 있다”며 “외환보유액의 이자·배당 수익을 활용해 장기적으로 관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총재는 “전통적 의미의 금융위기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물가와 양극화 측면에서는 분명 위기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배재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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