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쿠팡을 상대로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에선 김범석 쿠팡Inc 의장을 향한 질타가 쏟아졌다. 이날 쿠팡 측 핵심 증인으로는 김 의장 대신 미국인인 해럴드 로저스 신임 대표, 브렛 매티스 정보보호최고책임자(CISO)가 출석했지만, ‘언어 장벽’으로 질의응답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질의응답 진행에 차질을 빚었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김 의장이 글로벌 최고경영자(CEO)란 이유로 출석하지 못한다는 건 언어도단”이라며 “쿠팡보다 더 큰 회사인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나 아마존의 (제프) 베이조스도 미국 의회의 청문회 증언을 외면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저커버그 메타 CEO는 2018년 페이스북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해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사과했다. 2020년 코로나19 국면에서 화상으로 열린 반독점 청문회엔 베이조스 아마존 의장과 저커버그 CEO, 팀 쿡 애플 CEO,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모두 출석했다.
반면에 김 의장은 물론 함께 증인으로 채택된 박대준 전 대표, 강한승 북미사업개발 총괄도 불출석했다. 이에 청문회에선 “한국 국민을 호구로 보는 것이냐”(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와 국민을 무시하는 처사”(최민희 과방위원장) 등의 비판이 잇따랐다.
로저스 대표는 쿠팡Inc의 최고관리책임자(CAO) 겸 법무총괄 출신으로, 청문회 일주일 전 임시 대표로 선임됐다. ‘김범석의 복심’인 그의 입에서 김 의장의 메시지가 나올 수 있단 관측도 있었지만, 로저스 대표는 “심려와 우려를 끼쳐드려 깊이 사과한다”는 원론적인 입장과 함께 “쿠팡 한국법인의 책임자는 나”란 답변을 반복했다. 또 “김 의장과 (이번 유출 사고와 관련해) 논의한 적은 없다”고 했다.
최형두 의원은 “김 의장은 모국어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음에도 한국어가 통하지 않는 외국인 증인을 앞세워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가 비겁하다”고 비판했다. 질의에 앞서 최민희 위원장은 두 증인의 한국어 구사 능력을 확인했다. 이에 로저스 대표 측 통역사는 “(그는) 한국어를 전혀 못 한다”고 답했고, 매티스 CISO 측 통역사는 “장모님·처제·아내, 그리고 ‘안녕하세요’ 정도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쿠팡의 허술한 보안 체계도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매티스 CISO는 “(이번 정보 탈취에 이용된) 서명키가 (최소) 11개월 동안 탈취된 상태였느냐”는 질문에 “맞다”고 답했다. 문제의 직원이 퇴사한 시점(지난해 12월 말~올 1월 1일)부터 서명키가 폐기된 지난 11월 19일까지 최소 11개월간 보안 공백이 있었음을 시인한 것이다.
매티스 CISO는 “내년 상반기까지 한국에도 ‘패스키(passkey)’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패스키는 비밀번호 대신 얼굴·지문 등 생체 인식이나 핀(PIN) 등을 활용하는 인증 방식으로, 외부 해킹이나 탈취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다. 쿠팡은 대만에서 패스키를 도입해 사용 중이지만, 한국 쿠팡에는 아직 적용하지 않고 있다.
이날 국회 과방위와 정무위원회는 국회 증언·감정 법률 위반(불출석) 혐의로 김 의장과 박대준 대표, 강한승 총괄을 고발하기로 의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