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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방서 죽은 병역거부 아들…"시신인수 거부" 그 부모 꿍꿍이

중앙일보

2025.12.17 12:00 2025.12.17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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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범죄자와 가장 많이 만나는 직업, 교도관. 살인, 강간, 사기 등의 범죄자와 매일 대면하며, 그들의 악한 마음을 교정해야 하는 사람들. 교도관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고, 매일 무엇을 느낄까요? 높은 담장 너머 속 진짜 교도소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나는 교도관입니다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46

아들의 시신, 인수하지 않겠습니다



청년은 웃고 있었다.

" 일부러 안 갔어요. 군대 가느니 교도소 가는 게 낫죠. "

병역법 위반.
징집을 거부해 붙잡혀 온 청년이
자신의 죄명을 말하며 활짝 웃었다.
새하얀 피부,
이제 갓 스무 살쯤 돼 보이는 얼굴이었다.

" 제 친구들도 군대 안 가기로 다 말 맞췄어요. 교도소에서 만나기로. "
청년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을 이어갔다.
" 인터넷에 보니까 군대 밥보다 여기가 낫다던데, 맞죠?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청년의 눈빛에는 두려움이나
후회 같은 감정은 보이지 않았다.

" 여기서 몸도 좀 만들고, 검정고시도 보고 나가려고요. 잠도 좀 푹 자고. "
교도소가 누군가에겐
쉬었다 가는 곳이라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섞여 나왔다.
도대체 무엇이 이 청년에게
교도소를 요양시설로 보이게 만든 걸까.

이미지 사진 pixabay

며칠 뒤,
교도소 민원실에 한 부부가 찾아왔다.
잔뜩 상기된 중년 남성이
손에 쥔 서류를 책상 위에 내던졌다.

" 우리 아들이 지금 방에서 제대로 누울 자리도 없다면서요. 한 방에 열 명이 뭡니까, 열 명이! 이게 나라입니까? 교도소가 사람을 짐승처럼 다루는 곳입니까? "

옆에 있던 여성의 눈가도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 우리 애가 얼마나 예민한 줄 아세요? 그렇게 좁은 방에 가두는 건 학대라고요. 학대! "

그들이 말하는 ‘우리 아들’은
며칠 전 나를 보며 웃던 그 청년이었다.
교도소 밥이 군대 밥보다 낫다던,
군대 대신 교도소에서
친구들과 만나기로 했다던 바로 그 청년.

" 인권 침해로 고소할 테니까 그렇게 아세요. 변호사도 벌써 선임했어요. "
청년의 부모는 자신들이 할 말만 하고
차갑게 뒤돌아서 나갔다.

실제로 법원은
과밀 수용 피해를 본 수감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언젠가 교도소가 풍선 터지듯
펑 하고 터져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걷고 있을 그때,
이번엔 교도소 비상벨이 사정없이 돌아갔다.

" 자살 시도, 5동 3실! 당장 출동하세요! "

자살이라니. 쉼 틈이 없었다.
난 숨이 턱에 올라올 때까지 뛰어갔다.
무전에서 전해온 자살 기도의 현장은
바로 그 청년이 수용된 방이었다.

방문을 열자
청년이 축 늘어져 있었다.
심장이 조여 왔다.
교도소가 좋다며 미소 짓던
청년은 왜 갑자기 목을 맸을까.

" 칼 가져와! "
목을 감은 수건을 끊어내자
청년의 몸이 힘없이 쏟아졌다.

" 숨 쉬어, 숨 쉬라고! "
우린 청년을 업고 내달렸다.

계단을 내려가며 청년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응급차에 탄 선배와 나는 교대로
청년의 몸에 올라타 심폐소생술을 진행했고,
응급차는 사이렌 소리를 내며
브레이크 없이 새벽을 갈랐다.

너무 급하게 뛰었던 탓일까.
응급실에 도착하자 속이 울렁거렸다.
헛구역질을 연신 해대는 내 뒤로
서너 명의 의료진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환자는 이제 우리가 인계하겠습니다.
우린 그제야 의자에 앉아 숨을 골랐다.
근무복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그때였다.

" 교도관 어디 있어! "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열렸다.
청년의 부모였다. 중년 남성이 고함을 치며
성큼성큼 우리 앞으로 걸어왔다.

" 도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
" 저희가 발견 즉시 응급조치를 취했고…. "
이번엔 여성이 내 말을 잘라 들어갔다.
" 당신들 전부 직무유기로 옷 벗을 각오해! "

그로부터 사흘 뒤,
나는 중환자실 복도에 서 있었다.
의사가 나오기를 기다리며 시계를 봤다.
새벽 3시. 복도 끝 자판기 불빛만이
희미하게 깜빡였다.

그때 중환자실 문이 열렸고
의사의 표정을 보는 순간 알 수 있었다.

" 최선을 다했습니다만, 유감입니다. "

안타깝게도 청년은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둔 것이다.
청년의 나이 스무 살, 너무 짧은 생이었다.

# 아들 시신 안 받겠다는 부모, 180도 달라진 태도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나는 청년의 장례를 위해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뚜- 뚜- "
몇 번이고 다시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교도소로
전화를 걸어 오던 그들이었는데,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렇게 며칠이나 흘렀을까.
겨우 전화가 연결됐다.

" 시신 인수를 거부합니다. 전화 그만 하세요. "

(계속)

매일 교도소로 전화를 걸던 부모의 돌변 , 청년의 시신은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됐다.
꽃 한송이도, 조문객 한 명 없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면회 기록으로 알게된 그 부모의 충격적인 진실,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88295


김도영.선희연.김현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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