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월급 300만원→순자산 40억…백수부부 비결 "이때 퇴사하라"

중앙일보

2025.12.17 12:00 2025.12.17 12:33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세후 53만9740원.
1999년, 대학 졸업 후 인천의 한 공기업에 취업한 ‘26세 정영주’가 받아 든 첫 월급 명세서에 찍힌 액수다. 난 지방에서 올라와 부모님께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한 흙수저 출신이라, 이 월급으로 주거비와 식비 등 모든 생활비를 해결해야 했다. 과연 이 박봉으로 어느 세월에 중산층 이상의 삶에 편입할 수 있을까. 눈앞이 캄캄했다.

2023년, 나는 50세에 공기업 24년 차 차장이 됐다. 이 시기 내 급여 실수령액은 367만9360원으로, 여전히 많다고 할 순 없었다. 정년까지 10년이 남았지만 난 과감히 조기퇴직을 결정했다.

흙수저 출신에 박봉으로 근근이 버텨온 나의 퇴직 후 삶은 어떨까. 퇴직금을 생활비로 야금야금 헐어 쓰며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거나, 또다시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 인생 2막을 치열하고 고단하게 살아갈 거라 생각한 이들이 많을 거다.
지난 3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중앙일보에서 본지와 인터뷰하고 있는 정영주 작가. 김경록 기자

반전이 있다. 현재 우리 부부의 순자산은 40억원(부동산 포함)이 훌쩍 넘는다. 순자산은 헐어 쓰지 않고, 여기서 만들어진 현금 흐름만 매월 1000만원씩 나온다. 게다가 이 현금 흐름은 매년 불어나는 추세다. 같은 직장에 다니던 남편도 2024년 퇴직하면서, 명실공히 ‘백수 부부’가 된 우리는 월 1000만원을 생활비로 풍족하게 쓰며 외식하고 해외여행을 다니는 삶을 즐기고 있다.

혹자는 부자 남편이라도 만난 거냐, 복권에 당첨된 거냐고 의구심을 품지만, 남편 역시 나와 비슷한 흙수저 출신이다. 그리고 현재 자산을 이룬 기반은 우리 부부의 근로소득이 전부다. 부모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 빈털터리 부부가 박봉으로 일궈낸 성과치고는 꽤 괜찮은 결과 아닌가. 심지어 이 성과를 내는 과정은 크게 어렵거나 힘들지 않다. 운이 따랐다는 점을 부정하진 않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안정적인 재테크였다고 생각한다.

박봉이지만 매년 오르는 급여와 정년이 보장된 공기업에서 굳이 조기퇴직을 선택한 사연, 회사를 다니며 치열하게 재테크에 매달렸던 이유를 공개한다.

2023년 인천 지역의 한 공기업에서 은퇴한 정영주씨는 투자로 월 1000만원의 소득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사진은 최근 호주로 해외여행을 갔을 때의 모습. 정영주 제공

성희롱 피해자, 도리어 ‘이상한 사람’ 꼬리표
" 네가 그 정영주냐? "

또 그 소리다. 회사에서 팀을 옮길 때마다 새 팀장은 “너, 지켜보겠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때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러시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되돌아올 결과가 뻔하기에 꾹꾹 참았다. 나에 대한 견고한 편견은 업무 성과로 바꿔놓는 수밖에 없었다.

" 1999년, 9급으로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가 됐어요. 가해자는 임원이었고요. 당시엔 사회적으로 성인지 감수성이 지금과 달랐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조차 없었어요. 어지간한 수준이면 저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을 겁니다. 그런데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수준이었어요. 저는 명백한 피해자였고 증거도 분명한데, 이 문제가 공론화된 뒤엔 사내에서 저만 ‘이상한 여자’로 낙인 찍혔어요. "
정영주 작가는 "신입 시절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가 됐고 회사 생활이 어려워졌다"며 "투자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빨리 이뤄야겠다는 목표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김경록 기자

이 사건은 내게 꼬리표가 됐다. 상급자들 가운데 몇몇은 내가 퇴사할 때까지 인사조차 받지 않았다. 회사에 다니는 내내, 나는 팀장과 동료들에게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란 사실을 최선을 다해 입증해야 했다. 남보다 많은 일을 처리하고 성과도 좋았지만, 내게 돌아오는 최고의 칭찬이라곤 “별문제 없네” “들었던 거랑은 다르네” 정도였다.

인사고과에서도 불이익이 이어졌다. 진급에선 항상 누락됐고 자꾸 한직으로 밀려났다. 경력이 쌓일수록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은 길어지는데 점점 자존감이 낮아지고 피해 의식만 커졌다. 회사에선 웃으며 버티다가 집에 돌아가면 눈물을 펑펑 쏟기 일쑤였다.

" 결국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회사에서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거예요. 정신과에 갔더니 공황발작이라 하더라고요. 나중엔 불면증에 영양실조까지 왔어요. 제게 비빌 언덕이 조금이라도 있었거나, 다른 회사로 이직에 성공했다면 당장 그만뒀을 겁니다. 그럴 능력이 없고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그 회사에 다닐 수밖에 없었어요. "

살기 위해선 회사를 벗어나야 했고, 회사에서 벗어나려면 경제적 자유를 빨리 이루는 수밖에 없었다. 자산을 만들려면 투자를 해야 하는데, 내 월급으로 부동산 투자는 불가능했고, 주식을 사 모으는 게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었다.

" 투자를 하려면 일단 안 쓰는 게 기본이잖아요. 매일 아침이면 김밥 한 줄 사서, 점심과 저녁에 반 줄씩 나눠 먹었어요. 못 먹고 못 입어 모은 돈인데, 투자한답시고 잃으면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절대 잃지 말자’는 마음으로 주식을 골랐더니 결국 해답은 '이 주식'이었어요. "

(계속)

대체 뭘 했기에 흙수저 부부가 순자산 40억을 일궈 여유로운 은퇴 후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됐을까.
이들이 자산을 형성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방법들을 속속들이 공개한다.
특히 주식 투자자라면 반드시 고민해야 할 최적의 퇴직 시기를 선택하는 방법, 아래 링크에서 모두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89879


박형수.김현정([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