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교가 20대 대선 1년여를 앞둔 시점, 여야와 체급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문어발식 정교일치를 시도한 정황이 17일 확인됐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통일교 1~5지구별 특별보고 문건과 녹음파일에서다. 이 문건은 2021년 5월 통일교의 권역별 총괄 간부인 지구장들이 한학자 총재와 간부들에게 성과 및 향후 방향성을 제시한 내용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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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자, 양승조 독대 후 “대선 순회 협조”…“일방 주장” 해명
당시 특별보고에서는 한 총재와 양승조 당시 충남지사의 독대 사진이 공개됐다. 만남은 2021년 5월 9일에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영호 전 본부장은 지난 5일 자신의 재판에서 “충남 양승조 도지사는 굉장히 가깝게 지냈다”고 밝히기도 했다.
통일교가 당시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양 전 지사의 선거 운동을 도운 정황도 포착됐다. 충남권을 맡고 있는 통일교 3지구장 유모씨가 “(양 전 지사가) 그동안 많이 협조해주셨는데, 참어머님(한 총재)께서 5개 지구장들에게 서로 (양 전 지사에게) 협조하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한 것이다.
한 내부 소식통은 “협조란 양 전 지사에게 인적 네트워크 등을 지원하라는 뜻”이라며 “실제 2지구장과 5지구장이 양 전 지사 선거를 위해 지역 유력 종교인들과 연결해줬다”고 전했다. 실제 보고서에는 양 전 지사가 각 지역의 유력 종교인들과 대담회를 하는 모습이 실렸다.
한 총재가 양 전 지사를 도우라고 지시한 배경도 정교일치가 꼽힌다. 유씨는 “양 전 지사와 저희와의 인연이 더 단단해졌다”며 “대전·충청 지역의 광역시장, 도지사들과 국회의원 등이 중심이 되어 참어머님(한 총재)을 모시고 대전·충청 지도자 정상회의를 개최해 (통일교 현안을)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대선을 앞둔 2022년 2월 28일 윤 전 본부장이 이현영 전 통일교 부회장에게 “여야 모두 우리에게 신세를 지게끔 해야 한다”는 맥락과 유사하다.
양 전 지사는 통화에서 “한 총재와 독대한 적은 있지만, 지역 행사 차원에서 만난 것뿐이다. 특별한 현안을 주고받은 것도 없어, 통일교의 일방적 주장”이라며 “충남에 통일교 재단의 선문대가 있어 아는 통일교도는 많지만, 무언가 혜택을 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또 “3만명에 달하는 연락처 중 윤 전 본부장 번호도 없고, 얼굴도 TV를 보고 알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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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자 며느리, 김종인 접촉…해저터널 국가 공약화 추진
영남권을 총괄하는 5지구는 보고에서 ‘한·일 해저터널 국가 공약화’를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국가 재정을 통해 100조원 이상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는 사업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한·일 해저터널은 통일교 측이 2018년~2020년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전 해양수산부 장관), 임종성 전 민주당 의원, 김규환 전 미래통합당 의원에게 청탁한 사항으로 경찰이 의심하는 사항이다.
한 총재의 며느리인 문연아 천주평화연합 한국의장은 2021년 5월 14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한·일 해저터널을 논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재수 의원에게 자서전을 주며 접촉을 시도한 현 부산·울산회장이자 한·일터널연구회 이사였던 A씨도 이 자리에 배석했다.
영남 지역 담당인 5지구장 박모씨는 “2022년 대선, 지방선거 정책 제안서에 공약 입법화 단계까지 갈 수 있는 지도자를 배출하겠다”며 “생명까지 걸겠다”고 한 총재에게 보고했다. 김 전 위원장은 이후 윤석열 후보 캠프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김 전 위원장은 “당시 국민의힘을 나와 야인이던 시절이었고, 그런 사람과의 만남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알려왔다.
통일교의 세계평화국회의원연합(IAPP)을 통한 국가 공약화 추진 방안도 공개했다. 이는 “6개 기둥을 통한 VIP 라인을 형성한다”는 통일교의 인적 네트워크 활용 방식 중 하나다. 임종성 전 의원이 IAPP 의장을, 전재수 의원은 IAPP 회원이었다. “통일교의 일본 네트워크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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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경기도정에도 접근한 통일교…평화부지사 “기억 안 나”
통일교가 경기도와 강원도를 통해 숙원사업인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을 추진하고자 한 내용도 특별보고 문건에 포함됐다. 통일교 사업을 국가 과제로 추진해 재정 부담을 덜겠다는 계획이었다.
2지구장 황모씨는 “(통일교의) 싱크탱크 2022를 중심으로 삼고 (DMZ 세계평화공원을) 국가 의제로 만들어야 한다”며 “한국(정부)의 자본력과 기술력을 최대로 투입해서 평화 생태 도시로 만드는 프로젝트”라고 한 총재 등에게 설명했다. 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은 통일교 측의 김건희 여사 청탁 사항 중 하나로, 과거부터 정교일치를 통한 현안 해결을 시도한 셈이다.
특히 경기·강원권 2지구는 DMZ 세계평화공원 사업을 위해 2021년 당시 경기도 평화부지사였던 이재강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접촉했다. 다만 이들의 구체적 접촉 시기는 파악되지 않았다. 당시 경기도지사는 이재명 대통령이었다.
황씨는 보고에서 “(2지구가) 평화부지사를 중심으로 180여명 직원과 DMZ 사업을 연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은 “부지사를 직접 만나서 결과 보고까지 하시는 팔로우업을 보면서 우리 지도자들의 역량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답했다. 이 의원 측은 “당시 DMZ 관련 사업으로 여러 단체와 만난 적은 있지만, 통일교 관계자와의 만남은 기억나지 않는다”며 “이 사업은 이전 자치정부부터 늘 추진해오던 것”이라고 말했다.
황씨는 또 정교일치 차원에서 경기도청 핵심 인사들에게 접근하고 있단 점을 분명히 했다. “신통일 한국과 신통일세계의 안착을 위한 전략적 요충지로 DMZ 세계평화공원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면서다. 이 의원이 평화부지사를 맡기 전부터 경기도에선 DMZ 세계평화공원을 추진한 만큼, 통일교가 NGO 단체인 천주평화연합으로 접근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7월 경기도는 ‘경기도 DMZ 일원 발전 종합계획(2021~2025)’을 통해 “DMZ 내 평화공원 조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통일교의 문어발식 정치권 접촉 시도는 “반드시 2년 안에 적어도 국가가 복귀했다는 실적을 만들어내라”(2020년 2월)는 한 총재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복수의 통일교 관계자들이 전했다. 2027년까지 정교일치 사상인 천일국(天一國) 실현을 위해 2년 내로 밑 작업을 마치라는 취지라고 한다.
통일교 관계자는 “정치권과 만났다고 해서 범죄는 아니다”며 “가정연합은 교리 실천을 위해 노력한 것뿐”이라고 해명했다. 다른 관계자는 “윤영호 전 본부장 일당이 한 총재 뜻과 달리 실행한 일탈”이라며 “사전 보고 없이 매번 사후 보고만 이뤄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