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풀이 우거져 있던 자투리땅이 어떻게 연 400만명이 찾는 ‘핫플레이스’가 됐을까. 서울 성동구에 있는 ‘언더스탠드에비뉴’ 이야기다. 서울숲 진입로에 100여 개의 컨테이너로 조성한 독특한 공간으로, 전시·행사·팝업스토어가 1년 내내 열린다.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는 청년 창업가들의 업무공간, 청소년과 발달장애 예술인을 위한 교육공간, 취약계층 여성들의 일터로도 활용되고 있다.
지난달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안지훈(46) 소셜혁신연구소 이사장을 만났다. “성동구는 최근 10년 새 서울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와 혁신을 겪은 지역입니다. 언더스탠드에비뉴는 그런 혁신을 상징하는 공간이죠.”
그는 10년 전 성동에 혁신 바람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임기를 시작한 2014년부터 4년간 ‘구정기획단장’을 맡아 소위 어공(어쩌다 공무원) 생활을 했다.
“당시 성동은 전체적으로 정체돼 있었어요. 구청 분위기도 비슷했죠. 지방행정이라는 게 극단적으로 역동적일 수 있지만 아무 것도 안 하려면 또 그럴 수 있거든요. 공무원이 살아있어야 국민들이 행복하고 편안해진다고 생각해서 이것저것 일을 벌였습니다.”
성동구청에 근무하면서 그는 성수 도시재생 사업,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사업, 소셜벤처 육성 및 지원 사업 등을 진행했다. 언더스탠드에비뉴도 그때 기획한 프로젝트다. 대기업이 양쪽으로 땅을 사는 바람에 애매하게 끼어 있던 땅. 아무도 신경 안 쓰는 늪지대 같은 땅을 새로운 공간으로 바꾸고 싶었다.
“영국에 ‘박스 파크’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컨테이너로 만든 팝업 복합문화공간으로, 5년마다 장소를 이동하면서 주변 지역을 살리는 콘셉트였죠. 이걸 벤치마킹해 언더스탠드에비뉴를 설계했습니다. 소외되고 힘든 사람들이 교육도 받고 비즈니스도 하면서 자립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어공’ 생활을 끝낸 뒤에는 구청 밖에서 혁신을 이어가는 중이다. 행정에서 경험한 내용을 학문적으로 구체화하고 싶어서 8년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사회적가치·소셜벤처의 개념을 확산하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소셜혁신연구소를 설립해 현장에서 직접 혁신을 실험하고 있다.
“성동구는 시즌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시즌1’은 혁신가들이 만들어낸 자생적인 생태계입니다. ‘시즌2’는 도시재생과 도시계획 등 행정의 지원이 더해지면서 형성된 생태계입니다. 성동에 지식산업센터가 늘어날 수 있었던 건 행정이 용적률을 400%에서 480%로 상향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좋은 자본들이 성동에 들어와 함께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었죠. 지금 성동은 ‘시즌3’입니다. SM·크래프톤·무신사 등 대기업 자본이 들어와 공존하는 모습이죠.”
그는 “이재명 대통령의 K-콘텐츠 공약을 실험하고 실현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성동구 성수동”이라고 했다. 성수동은 소셜벤처·사회적기업이 모여 있는 ‘혁신의 아이콘’이자 다양한 콘텐츠가 집약된 ‘K-콘텐츠의 성지’로 유튜브 에이전시만 200여 개가 들어와 있다.
문제는 성수동에 성수동이 없다는 것이다. 성수1가1동, 1가2동, 2가1동, 2가3동, 송정동 등 5개의 행정동을 성수동이라고 통칭할 뿐, 성수동이라는 법정동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수동을 하나의 ‘대동’으로 만들어 성수만의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콘텐츠, 브랜드를 전 세계에 확산해야 합니다.”
올해 안 이사장은 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 지속가능센터장을 새롭게 맡았다. 지방정부의 역할과 과제를 떠올리며 ‘행복의 토대’라는 책도 펴냈다. 소득 수준을 가리키는 ‘물적 토대’와 사회적 감수성을 가리키는 ‘가치 토대’. 이 두 가지가 행복의 중요한 축이라는 내용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사회적 감수성이 낮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게 책의 핵심 메시지다.
“지방정부의 혁신도 이런 방향이어야 합니다. 진정한 혁신이란 ‘격차’를 줄이는 것. 아무도 배제하지 않고 소외되지 않는 것. 성동구의 ‘시즌4’도 이런 모습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