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소셜섹터에 ‘한국 사회적가치 측정·보상 모델’을 향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SK그룹과 사회적가치연구원(CSES)이 개발한 ‘사회성과인센티브(SPC)’가 국내를 넘어 일본과 중국에서 사회문제 해결 도구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다. SPC는 사회적기업이나 소셜벤처 등이 만든 사회적가치를 화폐로 측정하고, 이들이 낸 성과에 비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제도다. 지난 10년간 SK그룹은 468개 기업에 약 715억원을 지급했고, 이를 통해 창출된 사회적가치 규모는 5000억원에 달한다.
SPC를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국가는 일본이다. 지난 3년간 SPC를 모델로 한 ‘아웃컴펀드 for IMM’을 론칭해 일본 현지 상황에 맞는 임팩트 측정과 인센티브 지급 방식을 설계하는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SK그룹이 설립한 공익재단 사회적가치연구원과 일본펀드레이징협회(JFRA)가 공동으로 주도했고, 사업이 마무리되는 2026년 이후에는 JFRA가 운영을 맡는다. 사회적가치연구원은 주요 파트너로 함께 할 예정이다.
아웃컴펀드는 SPC를 그대로 벤치마킹했다. 소셜 임팩트 창출을 목표로 하는 단체나 기업이 설정한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냈을 때, 그 성과에 대한 현금성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구조도 동일하다. 사회적가치연구원과 SK그룹이 하던 성과 측정과 관리 지원 업무를 JFRA와 협력해 수행하고, 참여 기업이 만들어낸 성과를 측정하는 방식이나 기준 등을 일본 현지 상황에 맞게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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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상황에 맞게 지표개발... 측정 노하우 전수
3년간의 SPC 이식 중 가장 중요했던 게 일본 현지 상황에 맞는 지표 개발이다. SPC의 공식목표는 창출한 사회적가치에 대한 현금성 인센티브를 제공해 사회적가치 추구 기업의 활동을 촉진한다는 것이지만, 이를 위해선 각 기업의 활동 목적에 맞는 목표를 정하고 이를 어떤 기준으로 측정할지 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 과정을 통해 해당 조직이 내부적으로 자신들의 활동 목적과 목표를 구체화하고 이를 달성할 방법과 과정을 명료화하게 된다. 유미현 사회적가치연구원 SPC확산팀장은 “SPC의 목표는 사회적가치 추구 조직이 스스로 성과 목표를 세우고 이를 점검할 지표를 구축하는 데 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사회적가치연구원은 일본 현지 파트너인 JFRA와 참여 기업들과 함께 지표 개발에 주력했다. 초기에는 일본 내 사회적 임팩트 측정 논의를 이끌어온 SIMI(Social Impact Management Initiative)를 참고해 지표를 설계했다. 이후 현장 적용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성과를 보다 정밀하게 화폐화할 수 있도록 지표를 단계적으로 고도화하는 방식으로 성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처음부터 도입이 쉽지만은 않았다. 일본에도 SIMI 등 사회적 임팩트 측정 체계가 있지만, 보상과 직접 연계된 모델보다는 사업 관리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JFRA는 일본 국내의 기존 측정 체계와 이에 대한 현장 단체들의 반응을 살피며 하나하나 개선점을 마련해나갔고, 사회적가치연구원과 SK그룹은 지난 10년간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조언을 제공했다.
지난 3년간 ▶︎한부모 가정 주거지원과 지역 커뮤니티를 조성하는 ‘리브이퀄리티허브(LivEQuality HUB)’ ▶︎따돌림 피해 학생을 돕는 ‘스탠바이’ ▶︎병원 직원을 커뮤니티 간호사로 키워내는 ‘CNC’ ▶︎발달장애인의 적성 맞춤형 일자리 찾기를 돕는 ‘키즈키’ 등이 성과를 측정하고 인센티브를 받았다. 우오 마사타카 일본펀드레이징협회장은 “한국의 SK그룹과 사회적가치연구원의 도움으로 임팩트 평가와 투자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이 때 중요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게 됐다”면서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주체가 성과펀드를 만들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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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자이카 준칙에 영향... 중국에서도 ‘러브콜’
SPC의 성과는 일본 민간 네트워크를 넘어 공공으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 4월 일본 외무성은 일본국제협력단(JICA·자이카) 관련 법을 개정하면서 정책 집행 방향성을 담은 개요 자료에 SPC의 핵심 작동 원리인 성과 기반금융을 활용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일본 전문가들은 이를 “SPC의 장점을 벤치마킹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SPC에 대한 관심은 일본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해외 기업과의 교류가 비교적 폐쇄적인 중국에서도 지속적인 문의가 오면서 사회적가치연구원이 중국 측에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자국 기업의 활동 내용을 외부에 공유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중국 특성상 이러 협력을 진행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SK그룹과 사회적가치연구원은 이러한 국제협력 경험을 토대로 국내 SPC를 한층 정교하게 고도화해 나간다는 입장이다.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장은 “일본과 중국 등 해외에서 SPC를 찾는 것은 지난 10년간 SK그룹이 진행해온 사회적가치 평가·측정·보상의 경험이 글로벌 단위에서 인정받기시작했다는 것”이라며 “일본과 중국을 자문하는 과정에서 배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사회 문제 해결과 측정 방식을 다시 국내 SPC현장에 도입해 대한민국의 사회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