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트럼프의 ‘마가 음모론자' FBI 기용 실험…9개월만에 끝났다

중앙일보

2025.12.17 18:30 2025.12.17 23:37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댄 본지노 미국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이 지난 4일 미 법무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답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 연방수사국(FBI) 파격 인사 실험이 9개월여 만에 끝나게 됐다. FBI 경험이 전혀 없는 마가(MAGA) 팟캐스트 진행자 댄 본지노를 지난 3월 FBI 2인자인 부국장에 발탁했지만, 본지노 부국장이 17일(현지시간) 사임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대중적 인지도와 충성도만 앞세운 트럼프식 인사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본지노 부국장은 이날 X에 “나의 FBI 자리를 내년 1월 떠나겠다”며 “봉사할 기회를 준 트럼프 대통령과 팸 본디 법무장관, 캐시 파텔 FBI 국장에게 감사하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도 “그가 원래 하던 방송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 같다”고 말하며 퇴진을 기정사실화 했다.

댄 본지노 미국 연방수사국(FBI) 부국장은 17일(현지시간) X를 통해 내년 1월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X 캡처
본지노 부국장은 사임의 배경이나 향후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 수사 자료 공개를 둘러싼 법무부와의 갈등이 결정적 이유로 꼽히고 있다. 마가 세력의 지지를 등에 업은 유명 팟캐스트 진행자 출신인 본지노 부국장은 최근까지도 엡스타인이 2019년 교도소 수감 중 숨진 것이 자살이었다는 수사 당국의 발표를 부정해 왔다.

민주당 쪽 인사들이 주축이 된 막후 엘리트 집단인 ‘딥 스테이트’가 엡스타인을 살해한 뒤 이를 은폐했고, 엡스타인과 교류했던 미 정·관계 유력인사들이 연루된 성 접대 고객 리스트가 있다는 마가 진영의 음모론을 지지한 것이다.

지난 4일 미국 워싱턴DC 법무부에서 팸 본디 법무장관, 캐시 파텔 연방수사국(FBI) 국장, 댄 본지노 FBI 부국장(왼쪽부터)이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FBI 부국장이 된 2달 뒤인 5월 “사건 기록 전체를 봤다. 엡스타인은 자살했다”라고 발언하며 마가 진영의 반발을 샀다. 그러다 7월 법무부가 ‘엡스타인은 자살했고, 성접대 고객 명단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발표하자 이번엔 관련 수사 자료 공개를 주장하면서 강하게 불만을 표출했다. 폭스뉴스는 “본지노 부국장은 당시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과 논의 도중 언성을 높인 후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본디 장관과도 언쟁을 벌였다”고 전했다.

이후 본지노에 대한 사임 가능성이 백악관 내부에서 논의됐고, 지난 8월 미주리주 법무장관 출신 앤드루 베일리를 공동 부국장으로 임명하며 FBI 역사상 유례없는 ‘부국장 2인 체제’를 가동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본지노에 대한 (백악관의) 사실상 불신임 표명”이라고 전했다.

지난 7월 영국 런던 주영미국대사관 앞 버스정류장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1997년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성착취범 제프리 엡스타인과 찍은 사진이 걸려 있다. AP=연합뉴스
비(非) FBI 인사 기용 실험의 한계를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FBI 부국장은 전국과 해외 지부를 관리하며 조직의 일상 운영과 수사를 총괄하는 핵심 직책이다. 이로 인해 본지노 부국장 이전엔 100년 넘게 조직 내부에서 근무한 이들이 맡아왔다. 본지노 부국장은 뉴욕경찰(NYPD)과 비밀경호국(SS) 출신이긴 하지만 FBI 근무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 성향 정치 평론가로 자신의 핵심 지지자였던 본지노를 역시 FBI 경력이 없는 캐시 파텔 국장과 함께 지도부에 앉혔다. 조직 관례보다 정치적 충성도를 바탕으로 수사기관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이번 사건으로 트럼프 2기 행정부 인사 원칙에 금이 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동과 음모론 등을 통해 지지층을 결집해 온 인물이 사실과 절차 등을 중시하는 수사기관 최고위직을 맡으며 문제점을 노출했다는 것이다.

NYT는 “트럼프의 정치적 동맹이자 FBI 경력이 전무했던 본지노는 FBI의 일상적 운영을 책임져야 하는 막중한 업무에 때때로 어려움을 겪었다”며 “그가 퍼뜨리는 음모론과 실제 FBI 수사가 제시하는 현실 사이의 어지러운 괴리를 보여준다”고 했다.




이승호([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