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향사랑기부금 누적 모금액이 1000억원을 넘어서며 역대 최고를 기록한 가운데 사용처를 두고 전국 곳곳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부산 사상구가 고향사랑기부금으로 동상을 설치하고 수국길을 조성한 것이 대표적이다. 18일 사상구에 따르면 고향사랑기부금에서 ‘재첩국 아지매 동상’ 제작과 설치에 1억2000만원, 낙동제방 오색 수국길 조성에 5000만원을 썼다.
이를 두고 고향사랑기부금 도입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향사랑기부금은 열악한 자치단체 재원을 보완하는 제도로 사회적 취약계층 지원과 청소년 육성·보호, 지역주민 문화예술 등 증진, 지역공동체활성화 지원 등에 사용하도록 법률에 명시돼 있다. 유호영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부대변인은 “조형물 설치와 경관 조성은 일반회계 예산으로 가능한 전형적인 미관 사업”이라며 전시성 사업에 고향사랑기부금을 쓴 것은 도입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재첩국 아지매 동상을 건립한 위치도 논란이다. 사상구 재첩거리는 삼락동에 있는데 동상은 4㎞ 떨어진 괘법동에 설치됐다. 이에 사상구 관계자는 “삼락동에는 이미 재첩 조형물이 있고, 상권 활성화를 위해 유동인구가 많은 괘법동에 설치했다”며 “수국길 조성 역시 관광객을 유인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려는 취지”라고 해명했다.
━
대전 ‘시계탑’ 울산 ‘꽃길 조성’ 논란…전문가 “사용처 조례로 명시해야”
대전시가 고향사랑기부금 7억원으로 ‘과학자 시계탑’ 설치를 추진하자 김민숙 대전시의원은 “사회적 취약계층 지원과 주민 복리 증진 등에 사용하도록 한 고향사랑기부제 취지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대전시 관계자는 “벨기에 등 외국에 과학자를 기리는 시계탑이 있는데 지역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다”며 “시계탑에 과학 발전에 공로가 큰 과학자 이름을 새겨 많은 사람에게 본보기가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대전 서구가 내년도 고향사랑기부금으로 고엽제전우회 서구지회 차량 교체(7600만원)와 청년 자활근로사업장 꿈심당 푸드트럭 구입(8600만원) 사업을 추진하자 서구의회는 “고엽제전우회 차량은 임대해서 사용하고, 푸드트럭 구입은 대전시와 중복 사업이니 하지 말라”며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울산 중구에서도 고향사랑기부금의 사용처를 두고 논란이다. 중구가 마련한 내년도 고향사랑기금 운용계획안에 보건소 구급차 교체 7000만원, 문화관광과 한글 보급사업 2000만원, 공원녹지과 입화산 꽃길 조성 2000만원 등이 포함됐다.
안영호 중구의원은 “기부금의 합당한 용도에 맞춰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며 “행정 신뢰를 떨어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에 중구청 관계자는 “기금사업의 타당성과 성과분석 등 행정절차를 강화해 투명한 집행이 이뤄지도록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부금 사용처에 대한 구체적 지침을 지자체 조례에 명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형빈 동아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자체장의 가치관에 따라 기부금이 사용되다 보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며 “고향사랑기부금이 매년 늘고 있는 만큼 사용처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조례로 정하고 엄격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