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계 몬드리안’이라 불리는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안무가 한스 판 마넨이 17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3세. 판 마넨의 별세 소식은 그가 소속된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테드 브란젠의 성명을 통해 전해졌다. 사망 장소는 공개되지 않았다. 유가족으로는 그의 동성 배우자인 사진가 겸 촬영감독 헹크 판 데이크가 있다.
판 마넨은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상임안무가로 1973년부터 활동하며 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150편 이상의 아방가르드 작품을 남겼다. 국립발레단과 양대산맥을 이루는 발레단인 네덜란드 댄스 시어터(NDT)에서도 1987년부터 2003년까지 상임안무가로 활동했다. 고전 발레 기법과 현대적 움직임을 결합한 춤으로 네덜란드 추상화가 피에트 몬드리안의 작품에 비유됐다.
판 마넨 작품은 음악에 스며들면서도 장식적 움직임을 덜어낸 담백함이 특징으로 꼽혔다. 대표작으로는 각각 지난해와 올해 서울시발레단이 공연한 ‘캄머발레’(Kammerballett), ‘파이브 탱고스’(5 Tangos’) 등이 있다. ‘캄머발레’는 한정된 공간에서 몸의 각을 정교하게 쌓아 올리는 안무를 보여주며, ‘파이브 탱고스’는 반도네온이 뿜어내는 탱고의 선율에 발레 동작이 자연스레 연결되는 작품이다. 서울시발레단은 지난해 창단 이후 판 마넨의 주요 작품을 레퍼토리로 올리며 국내 관객에게 판 마넨 특유의 미학을 선보여왔다.
판 마넨은 2008년 유니버셜발레단의 초청으로 내한해 한국 무용수들을 직접 지도하기도 했다. 당시 초연한 ‘블랙케이크’는 여섯 커플의 일상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 작품으로, 그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음악처럼) 무용도 그렇게 눈과 귀와 몸으로 느끼면 그뿐”이라고 강조했다.
십대부터 춤에 관심을 보이며 발레 무용수 경력을 쌓은 그는 25세가 되던 1957년 첫 안무작을 발표하며 창작을 시작했다. 네덜란드 양대 발레단의 상주 안무가를 모두 지낸 인물로는 판 마넨이 유일하다. 그의 공로는 유럽의 문화·사회 발전에 기여한 개인·단체에 수여하는 에라스무스상, 네덜란드 왕실 훈장 등 수상으로 이어졌다. 이외에도 그는 사진 작업을 통해 인체와 움직임을 꾸준히 탐구했다.
서울시발레단 공연을 통해 그의 작품을 알렸던 세종문화회관의 안호상 사장은 18일 “판 마넨의 예술성과 인간성에 큰 신의를 표하며, 그의 흔적은 이곳 한국에서도 서울시발레단의 아름다운 작품으로 남아 무용수들의 곁에서, 그리고 관객들의 품 안에서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라고 추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