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유족과 시민단체가 사건 정보를 장기간 비공개할 수 있도록 한 대통령기록물법에 대해 “알 권리를 침해하므로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18일 한국납세자연맹과 서해 피격 공무원의 유족 이래진씨가 제기한 대통령기록물법 11조 1항 등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재판관 9인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했다. 각하란 헌법소원 청구에 절차상 문제가 있어 심판 청구 요건이 안 된다는 결정이다.
앞서 납세자연맹은 김정숙 여사의 옷값 등 의전 예산과 문재인 정부 특수활동비 지출내역 공개를 요구했으나, 2018년 7월 청와대 비서실로부터 정보 비공개를 결정 통보를 받았다. 연맹 측은 대통령비서실을 상대로 기록 공개를 요청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2022년 2월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았으나, 항소심 진행 중 문 전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서 정보가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됐다. 대통령지정기록물은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날의 다음 날부터 최대 15년까지, 개인의 사생활과 연관된 내용이 있을 경우 최대 30년까지 공개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연맹은 대통령기록물법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서해 피격 공무원의 유족 또한 같은 법 조항에 대해 헌법소원을 냈다. 2020년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사망한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는 국가안보실장에게 사건과 관련한 정보공개청구를 했고, 국가안보실장이 비공개 결정하자 행정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다. 그러나 이 역시 문 전 대통령 임기가 끝나며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될 상황에 놓이자, 이씨는 헌재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
헌재 “관리기관 변경일 뿐 기본권 직접 침해 아냐”
두 사건을 병합해 심리하던 헌재는 이날 약 3년 8개월만에 결론을 내놓았다. 헌재는 대통령기록물 이관을 규정한 법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것이 아니므로, 청구가 부적법하다고 봤다. 헌재는 해당 조항에 대해 “기록물 관리 기관의 변경 내지 관련 기관 간의 권한 분장”이라며 “청구인들에게 어떤 의무를 부담지우거나 법적 지위를 불리하게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해당 조항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직접 침해하는 게 아니라는 취지다. 아울러 대통령지정 기록물에 대해서도 국회 의결이나 고등법원장 영장 등 예외적 절차에 따라 열람이 가능하다고도 봤다.
이는 앞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헌재가 내놓은 2019년 결정례를 따른 것이다. 앞서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수행 관련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할 수 없게 된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으나, 헌재는 2019년 12월 전원일치 의견으로 각하 결정했다.
이때 헌재는 기록물 이관에 대해 “대통령기록물법에서 규정한 절차에 따른 관리업무 수행 기관의 변경행위로서 업무수행을 위한 국가기관 사이 내부적·절차적 행위에 불과하다”며 “국가기관이 국민을 상대로 우월적 지위에서 행하는 공권력 작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어 헌법소원심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이날 서해 사건 유족 이씨 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헌법소원이 각하된 뒤 기자들과 만나 “국민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는 결정”이라며 “대통령기록물법이 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