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프로배구는 한국 겨울 프로스포츠 최고 인기 종목이다. 국제대회 성적에 따라 등락하는 여느 종목과 달리 ‘묻지 말고 더블로’ 인기다. 프로배구 V리그 새 시즌을 앞두고 불타는 인기에 기름을 부은 게 예능 프로그램 ‘신인감독 김연경’이다. 프로그램에서 필승 원더독스 배구팀 김연경 감독 못지않게 팬들의 사랑을 받은 게 몽골 출신 배구선수 인쿠시(21·본명 자미안푸렙 엥흐서열)다.
인쿠시는 ‘도전-실패-노력-성공’을 따라가는 성장 서사의 주인공이다. 어린 나이에 가족 품을 떠나 타국에 와서 부딪히고 넘어지고 긁혔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뛰었다. 김연경 감독 말에 “넵, 넵” 하는 그에게 시청자는 감정을 이입했고, ‘넵쿠시’라는 별명까지 붙여줬다. 프로그램 종영 후 학업에 복귀했던 그에게 여자배구 정관장이 러브콜을 보냈다. 부상으로 빠진 아시아 쿼터 위파이 시통(26·태국)을 대신해 뛰게 됐다. 지난 11일 취업비자 발급차 몽골에 갔다가 17일 새벽 입국한 그를 같은 날 오후 대전 정관장 스포츠센터에서 만났다.
주변에서는 아직 걱정스러운 눈치다. 인쿠시는 앞서 지난 4월 여자배구 아시아 쿼터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지만 뽑히지 못했다. 국내 선수였다면 일단 뽑아 키워볼 만한 실력 수준이다. 하지만 외국인 선수는 즉시 전력감을 뽑는 게 구단들 관례다. 모교인 목포여상 배구팀 정진 감독은 그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이런 경우를 염두에 두고 국적 변경을 고민했다고 한다. 입양도 그중 하나였지만 인쿠시 쪽에서 주저했다고 한다. 일반 귀화까지는 적어도 5년이 걸리는데 그는 2022년 입국했다.
프로 무대 진출을 꿈이 아닌 현실로 바꿔준 건 결과적으로 김연경 감독이다. 인쿠시가 입단 소식을 전하자 김 감독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보여줘라”라고 했다고 한다. 김 감독한테 배운 것 중 가장 큰 건 자신감과 긍정적 태도다. 인쿠시는 “전에는 안 될 것 같아 포기했는데 일단 해보자는 자신감을 얻은 게 가장 큰 변화”라며 방송 당시 일본 원정 에피소드를 돌이켰다. 그는 “처음에는 ‘믿고 뽑아줬는데 왜 안 될까’ 밥도 안 먹고 울었다. 하지만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고 결국 칭찬받았다”며 “감독님의 ‘안 되더라도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져라’라는 조언을 간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에 잠깐 다녀온 몽골. 일종의 금의환향이 아니었을까. 방송 출연 덕분에 알아보는 사람도 많아졌다. 가족 반응이 궁금했다. 인쿠시는 “사실 부모님이 방송을 본 것도 아니고 V리그가 얼마나 큰 무대인지 몰라서 그런지 차분하게 ‘건강해야 한다’고만 했다”며 “엄마가 ‘쫄지 말고 할 수 있는 걸 다하라’라고 했다”고 전했다. 몽골 전통 씨름 선수 아버지와 배구 선수 어머니 등 인쿠시는 스포츠 가족 출신이다. 부모님은 “좋은 음식 챙겨 먹고, 건강 잘 챙겨라”라는 당부만 몇 번씩 했다고 한다.
인쿠시의 V리그 데뷔전은 19일 홈에서 열리는 GS칼텍스전이 유력하다. 지난 시즌 정관장의 아시아 쿼터 메가왓티 퍼티위(26)가 워낙 맹활약한 터라 부담도 크다. 스스로는 높은 타점의 공격을 장점으로 꼽았다. 공격력에 비해 수비력이 많이 약하다. 그는 “몽골에서는 어릴 때 수비 등 기초를 탄탄하게 하지 않아서”라고 설명했다. 고교 시절에도 단체훈련 전후로 개인훈련을 더 했고, 정관장에 와서는 비록 며칠 안 됐지만 리베로 출신 이강주 코치와 별도로 야간 리시브 훈련도 한다. 어떤 선수가 좋은 선수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원더독스에서 공격도 수비도 말없이 하던 표승주 선배”라며 “닮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 스타일을 ‘살림꾼’이라고 한다”고 일러주자 그는 “살림꾼, 살림꾼”을 되뇌었다.
인쿠시가 한국에 귀화해 태극마크에 도전하는 모습을 바라는 팬이 꽤 되는 분위기다. 그가 그리는 미래 중 하나지만 다른 그림도 있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래서 불안감도 큰 나이다. 그는 “일단 아시아 쿼터로서 잘하고 싶다. 인정을 받아야 다음에 국적을 바꿔서 (한국 선수로서 신인 드래프트 등으로) 다시 기회를 잡을 테니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