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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화장장 부족, 중앙정부와 지자체 공동 책임

중앙일보

2025.12.18 07:16 2025.12.1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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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호 장례와 화장문화 연구포럼 공동대표
인구 1300만 명이 넘는 경기도에는 화장장이 4곳뿐이다. 이렇다 보니 경기도민 중에 전남 해남의 땅끝마을까지 ‘원정 화장’을 하는 사례도 있다. 세계인들에 K컬처와 K기술을 자랑하고 화장률이 95%나 되는 한국에서 망자가 화장장을 찾아 팔도를 헤매는 화장 대란이 방치되고 있다니 어처구니없다. 이전에는 겨울철에만 화장 대란이 벌어졌지만, 근래에는 한여름에도 대란 조짐이 보인다. 화장장 부족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상시적·구조적 문제라는 의미다. 화장장 부족은 인구의 과반이 밀집한 수도권에 국한하는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 문제다. 수도권 화장장 부족은 충청·강원을 넘어 경남·전남에까지 여파를 준다.

양주 화장장 재검토 결정 무책임
복지부·행안부·경기도 뒷짐 행정
장례 대란 해결 위해 적극 나서야

전국적인 화장장 대란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경기도 북부권의 화장 시설 부재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양주시 등 경기 북부 6개 지자체가 공동으로 양주시 백석읍 방성1리에 화장장을 추진해왔다. 양주시가 지난봄 행정안전부에 재정투자심사를 요청하자 행안부는 지난 10월 중앙투자심사위원회를 열었지만, 옥정·회천지구 신도시 주민의 반대 등을 이유로 재검토를 결정했다. 앞으로 경기도가 지시한 갈등조정협의체 구성 등 보완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당초 목표로 내세운 2027년 착공, 2030년 개원 일정에 차질을 빚을 판이다. 모두 합심해도 시원찮을 판에 제동이라니 어이가 없다.

양주 화장장 추진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정책 결정 시스템이 단단히 잘못됐다. 6개 지자체의 문제는 공감대 형성 부족, 화장문화 연구 부족 등을 들 수 있다. 화장장을 건립·운영한 경험이 없다 보니 미숙함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기초 지자체들의 이런 부족함을 보완해줘야 할 경기도와 중앙정부의 노력은 보이지 않았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주민과 소통을 내세워 시간만 허비해왔다. 장사(葬事)법에서는 도지사 등 지방자치단체장의 화장장 설치 의무를 규정하고 있는데, 이를 외면한다면 무책임하다. 그럴 리는 없을 거라 믿고 싶지만, 만약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서 주저하는 것이라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보건복지부는 화장 정책에 관한 최상위 중앙정부 기관이다. 복지부는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순환보직제 때문에 담당 부서 공무원들은 잠깐 스쳐 가는 ‘과객’들일 뿐이다. 전문성이나 적극적인 행정까진 기대하기 어렵다 하더라도, 최소한 법정 의무는 이행해야 마땅하다.

장사법 시행령 제4조는 ‘지방자치단체가 갖추어야 하는 화장시설에 관한 기준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역별 인구·사망자 수·화장수요 등을 고려하여 고시로 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복지부는 이런 법조문에도 불구하고 지난 15년 동안 한 번도 관련 고시를 정하지 않았다. 장사시설 수급 계획에 두루뭉술 언급은 하고 있지만, 명확하게 책임 기준을 밝히는 고시 대신 공문 시달에 그치고 있다. 이게 지자체에 제대로 먹힐 리 만무하다.

양주시 재정투자 심사를 담당했던 행안부 담당관은 “이게 과연 필요한 사업인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화장장 부족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닌데 현장을 전혀 모르는 것 아닌가 싶어 당황스러울 정도다. 행안부는 지자체 행정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지도하는 중앙행정기관인데, 그 많은 화장장 대란 보도에 대해 눈과 귀를 막고 있었다는 말밖엔 되지 않는다. 주무 부처인 복지부 관계자들도 비슷한 태도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2000년대 초 감사원이 화장 업무를 감사한 적이 있다. 당시는 화장을 선택하는 비율이 30% 안팎이던 시절이라 정부와 지자체의 정책은 허점투성이였다. 이후 화장률이 꾸준히 상승함에 따라 정부의 지자체 국고지원금이 한때 1000억원을 넘기도 했다. 최근에도 매년 수백억원이 지원된다. 그런데도 지난 20여년간 감사원이 제대로 감사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국민의 사후(死後) 복지는 중요한 정책 과제다. 그런데도 중앙 행정기관이나 정치권은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화장장 부족 문제 해결은 국민의 고통을 줄이는 시급한 민생 과제다. 화장장 대란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국민의 사후 복지를 책임지는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의 각성과 노력을 촉구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태호 장례와 화장문화 연구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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