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은 미혼모다. 결혼식도 성대히 잘 치르고, 본인과 남편도 멀쩡한 직업이 있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다. 법적으로 ‘남’이어야 지금 집에 계속 살 수 있어서다.
사연은 이렇다. 현재 그네들이 거주하는 집은 법적으로 남편 명의다. 남편이 전세를 낀 갭투자로 집을 샀고, 그렇게 전세로 들어온 세입자가 법적으로 미혼모인 아내다. 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생겨도 혼인신고를 할 수가 없다. 혼인신고를 통해 부부가 되는 순간 1인 가구 두 사람이 한 가구로 묶이면서, 가구 대출 총량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서울 부동산 가격 급등이 만든 새로운 미혼모다.
아쉽게도 국가 통계는 이런 현상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국가데이터처에서 발표한 ‘2024년 신혼부부 통계’를 살펴보자. 초혼 신혼부부 기준 혼인 1년 차 부부의 주택 보유율은 2019년 이후 매년 상승해 2024년엔 35.8%로 고점을 경신했다. 전체 신혼부부 세 쌍 중 한 쌍은 혼인신고 시점에 이미 자택을 보유하고 있으니, 상황이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해당 통계를 단편적으로 인용한 이들은 2030의 부동산 실책 지적이 언론과 정치에 놀아난 가짜 이슈라는 극단적 주장까지도 내놓지만, 이 통계를 그대로 믿긴 곤란하다. 왜곡이 있어서다.
해당 통계는 공식적으로 혼인신고를 진행한 부부만 대상으로 삼는다. 앞서 소개한 부동산 미혼모 커플 혹은 사실혼 관계의 부부는 애초에 부부 통계에 집계되질 않는다.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해당 통계는 신혼부부가 척척 집을 사는 게 아니라, 집을 사는 데 성공한 이들만 혼인신고를 하니 생기는 착시다.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데 혜택을 주긴커녕 1인 가구라는 대안적 가구 단위를 각자 유지하는 게 훨씬 이득이니, 성평등가족부의 비혼 동거 커플 조사에서도 27.3%가 ‘상속’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혼인신고를 미룬다는 응답이 나온다. 국가가 혼인신고를 권장하기는커녕 기피하게 만드는 잘못된 유인 설계의 전형이다.
가구 단위의 대출 통제 정책은 외벌이 가장이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시대에 자리 잡은 옛 유산에 가깝다. 이미 30대와 40대에서는 맞벌이 비중이 60% 수준에 육박하고 있고, 각기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부부가 소득과 재산을 별산(別算)하는 경우도 흔해졌다. 외벌이 남편이 집안 경제권을 전업주부 아내에 맡겨 가구가 하나의 경제 주체로 굴러가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그런데도 제도가 따라 바뀌질 못하니, 법적으로 가족이 아닌 상태가 가족을 꾸리기엔 더 유리해졌다. 결혼이 경제적 징벌이 되는 기형적 구조를 방치한 채 저출산 극복을 논하는 건 기만이다. 국가가 가족 해체를 유도하는 나쁜 유인 설계부터 바로잡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