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가데이터처는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발표했다. 특징은 세 가지다. 첫째, 처분 가능한 소득의 불평등(이하 ‘소득 불평등’)이 확대됐다. 처분 가능한 소득이란 본인이 벌어들인 시장소득에서, 세금을 내고 복지혜택을 받은 이후의 소득이다. 가처분 소득 불평등 지수는 2011년 이후 최근까지 추세적으로 하락했다. 지니계수 기준으로 2024년은 0.323였는데 2025년은 0.325가 됐다. 0.002포인트 증가했다. 지니계수가 1에 가까워질수록 불평등이 심해진다.
지난해의 소득 불평등 확대는 수출 증가로 인한 ‘좋은 불평등’
순자산 불평등 심화는 소득·연령·수도권-지방 간 격차 커진 탓
청년 주택담보대출 지원하고 ‘똘똘한 한 채 촉진법’은 폐지를
부자 노인도 받는 기초연금이 빈곤율 끌어올리는 부작용 커져
둘째, 순자산 불평등이 확대됐다. 2012년 자산 불평등 조사 이후 가장 크게 확대됐다. 셋째, 상대적 빈곤율(이하 ‘빈곤율’)이 상승했다. 빈곤율은 2008년 이후 약 15년 동안 꾸준히 하락했다. 그런데, 2022년부터 상승하기 시작했다. 2022~2024년에 걸쳐 3년 연속으로 상승했는데, 2008년 이후 처음 나타난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수출 좋아지면 소득 불평등은 확대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소득 불평등은 세 가지 변수의 영향을 받는다. ①임금 소득 ②세금 ③복지혜택이다. 이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소득은 임금소득이다. 약 70%를 차지한다. 임금소득을 변동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수출 실적’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 대기업들은 임금에서 상여금 비중이 크다. 상여금의 크기는 사실상 수출 실적에 의해 결정된다. ‘수출연동형’ 임금체계다.
대기업 수출이 좋아지면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승하고, 이들은 상위 10%에 해당하기에 상층의 소득 상승으로 결과적으로 불평등이 증가하게 된다. 즉, 한국의 임금 불평등은 대기업 수출 대박→대기업 노동자의 임금 상승→불평등 확대 구조를 갖고 있다.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대기업 수출 저조→대기업 노동자 임금 하락→불평등 축소가 작동한다.
역대 정부 중 노무현 정부 때 불평등이 가장 많이 증가했다. 그 이유는 ‘중국 수출 대박’ 때문이었다. ‘좋은 이유’로 인한 불평등 증가였기에, 나는 이를 ‘좋은 불평등’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사례로 이명박 정부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출범 이후 종부세 환급과 공기업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했음에도 임금 불평등이 축소된다. 왜 그랬을까?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면서, 전 세계 교역량이 반토막 났고 한국 수출도 급감했기 때문이다. ‘교역이 축소되는’ 글로벌 금융위기는 한국의 임금 불평등을 축소시킨다. 이명박 정부의 불평등 축소는 ‘나쁜 평등’의 대표 사례다.
②세금의 경우, 가장 중요한 변수는 고소득자에 대한 소득세 인상 여부다. 상위 10~20%의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소득세를 인상하면 소득 불평등은 줄어든다. 상위 10~20%에 속하는 사람들은 대기업과 공기업 종사자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조합원인 경우가 많다. 서울 거주자들도 많다. ③소득 불평등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변수는 ‘복지혜택’인데, 이는 후반부에 ‘빈곤율 증가’와 함께 설명하기로 하자.
세금과 복지혜택이 그대로라고 가정하면, 소득 불평등의 변동은 ‘수출의 등락’과 연동해서 움직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출이 대박 나면 불평등은 커진다. 수출이 죽쑤면 불평등은 줄어든다. ‘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 시장소득 지니계수 상승은 수출 증가 때문이다. 불평등 증가이긴 하지만, ‘좋은’ 불평등인 셈이다.
순자산 불평등 줄이려면
둘째, 순자산 불평등 증가를 살펴보자. 먼저, 순자산 불평등은 2011년 조사 이후 역대 최고가 됐다.
순자산 불평등은 2016년에 최저점을 찍고 다시 상승하기 시작한다. 2016년은 0.584였고, 2024년은 0.625로 역대 최대가 됐다. 큰 틀로 볼 때, 그 이후는 부동산 가격 상승기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전인 2021년과 직후인 2022년에는 순자산 불평등이 ‘살짝’ 줄어든다. 0.606에서 0.605가 된다. 그 이유는 러-우 전쟁으로 인해 폭등한 물가를 잡기 위해 미국을 포함 전 세계가 금리를 대폭 올렸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부동산 가격 하락 국면이었다.
순자산 불평등이 증가하는 요인을 더 세분화해보면 무엇 때문일까? ①소득 ②연령 ③수도권-비수도권의 격차가 동시에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득은 저소득과 고소득의 격차가 커지고 있고, 연령은 20·30세대는 순자산이 감소하는 데 반해 50·60세대들은 순자산이 커지고 있다. 수도권의 순자산 상승률이 비수도권에 비해 약 2.5배 정도 가파르다.
순자산 불평등을 실제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원인을 인수분해 했으니, 그 반대 방법으로 정책을 사용하면 된다. 두 가지 정책이 필요하다. 하나, ‘고소득+저자산’ 청년 직장인들의 자산 접근권을 높여야 한다. 쉽게 말해, ‘소득을 지렛대로’ 주택담보대출을 받도록 도와줘야 한다. 20·30세대는 소득은 있지만 자산은 아예 없거나 저렴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자산을 매입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상환능력의 범위내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것이다. 소득 있는 청년세대가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것 자체가 자산 불평등을 축소하는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다. 물론, 이 정책은 유동성을 줄여서 부동산 가격을 잡으려는 역대 진보정부의 정책과 상충된다.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청년들의 자산접근권을 희생시키는 것이 정책적으로 가능한지, 혹은 바람직한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둘, ‘똘똘한 한 채 촉진법’을 폐지해야 한다. 똘똘한 한 채 현상이 본격화된 것은 다주택자 규제의 부작용 때문이다. 지방 3채 20억원이 서울 1채 40억원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다주택자를 부동산 가격 상승의 주범으로 생각해서, 다주택자에게는 불이익을 주고 1가구 1주택에게는 엄청난 혜택을 줬다. 다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인해 ‘똘똘한 한 채 현상’이 발생했고, 강남 3구와 한강벨트 아파트 매수세가 더욱 강화됐다. 다주택자에 대한 과도한 규제=똘똘한 한 채 선호=수도권·비수도권의 격차 확대=강남 3구와 한강벨트 아파트 가격 급등=자산 불평등 확대다. 사실상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들이다. 다주택자 규제는 취득세, 보유세(종부세+재산세), 양도소득세를 통해 작동하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보유세는 다주택 여부와 무관하게 합산 금액으로 부과해야 한다. 취득세와 양도세도 비서울 다주택인 경우 폐지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서울 쏠림을 완화하고 지방으로 수요를 분산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동시에 자산 불평등 축소 효과가 있다.
빈곤율 상승의 진짜 원인 이제 빈곤율 상승 문제를 살펴보자. 2011년부터 2021년까지 10년 내내 줄기만 하던 ‘처분가능소득 빈곤율’이 다시 상승하고 있다. 2022년 처음 상승 추세를 보였는데, 2023년, 2024년 3년 연속 처분가능소득 빈곤율이 상승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지점인데, 아쉽게도 비중 있게 보도한 언론을 접하지 못했다.
처분가능소득 빈곤율은 세금을 내고, 복지혜택을 받은 이후의 소득이다. ‘복지 투입 이후’의 빈곤율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분가능소득 빈곤율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면 현행 복지정책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암시한다. 바로 ‘그걸’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빈곤율의 재상승을 주목해야 한다.
빈곤율의 상승원인을 찾아내려면, 2011~2021년 기간 빈곤율이 축소된 원인을 알아야 한다. 2011~2021년은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가 모두 걸쳐 있었다. 진보·보수 정부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럼 뭐였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기초연금 제도’ 때문이었다. 기초연금은 노무현 정부 때, 당시 박근혜 대표의 제안으로 제도화됐다. 2008년에 처음 지급됐다. 당시 65세 이상 노인 중에서 국민연금 수급자는 약 30%에 불과했다. 노인 70%가 국민연금 사각지대에 있었던 셈이다. 2008년 기초연금 도입은 사각지대를 메꿔줬다. 2008년 이후 노인 빈곤율이 줄어들고, 심지어 노인 자살률도 급감하게 된다. 기초연금을 통한 빈곤율 축소와 가처분소득 불평등 축소는 노무현과 박근혜의 공동업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65세 이상 노인 중 약 70%가 국민연금 수급자가 됐다. 그런데 기초연금은 여전히 하위 70%에게 지급한다. 기초연금을 받는 70%에 딱 걸리는 최고 소득자 노인의 소득은 얼마나 될까? 노인 1인 가구는 월 소득 438만원, 노인 2인 가구는 월 소득 745만원도 기초연금을 받고 있다. 평균적인 청년세대보다 훨씬 소득이 많은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현행 기초연금은 ‘부자 노인’에게도 지급되고 있다. 상대적 빈곤율의 정의는 중위소득 대비 50% 미만 비율이다. 2022년 이후 빈곤율 상승은 기초연금을 받는 부자 노인들이 중위소득 자체를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현행 기초연금은 빈곤 노인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예산지출 그 자체를 위한 제도로 전락했다. 2008~2022년 기간은 순기능이 더 컸지만, 지금은 부작용이 압도적으로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