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의 ‘당원 게시판 의혹’을 둘러싸고 보수 진영이 서로 얽히고설키며 충돌하고 있다. 장동혁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주류와 친한동훈계가 정면 충돌하는 가운데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까지 끼어들며 내년 6·3 지방선거를 앞둔 보수 진영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한 전 대표는 18일 채널A 유튜브 ‘정치 시그널’에 출연해 “다른 사람(김 전 최고위원)을 이렇게 (징계)해서 당을 우습게 만들지 마라”며 “저를 찍어 누르고 싶으면 그냥 하시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위원장 이호선)가 이틀 전 친한계인 김종혁 전 최고위원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하며 ‘당원권 정지 2년’의 중징계를 권고한 걸 겨냥한 발언이었다.
그러자 이호선 위원장은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만약 훔쳐도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면 도둑질은 ‘들키면 본전’인 도박이 된다”며 “불의에는 대가가 따라야 한다”고 썼다. 이 위원장은 사흘 전엔 “소가 사람을 들이받아 죽인다면, 소는 돌로 쳐 죽이고 임자도 죽일 것”라고 썼다.
주류에선 당무감사위에 힘을 싣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낸 권영세 의원은 한 전 대표의 “찍어내시라” 발언을 담은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하며 “대통령이 공격한다고 해서 당 대표라는 사람 본인 또는 그 가족이 비겁하게 익명성 뒤에 숨어 당원 게시판에서 반격하는 일도 정상은 아니지요”라고 적었다. 장동혁 대표도 전날 “밖에 있는 적 50명보다 내부의 적 1명이 더 무섭다”며 한 전 대표를 사실상 ‘내부의 적’으로 규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문수 전 장관과 이준석 대표가 전장에 뛰어들며 전선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전날 밤 전·현직 국민의힘 당협위원장 등의 모임인 ‘이오회’에 참석해 한 전 대표와 ‘러브샷’을 했다. 그러면서 “우리 당의 보배를 누가 자르려고 하느냐”며 한 전 대표 징계 시도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 친한계 참석자는 “한 전 대표는 회색지대에 있는 당 인사를 두루두루 만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전 대표에 우호적인 조갑제씨는 “김문수 세력과 한동훈 세력이 만나면 장동혁 체제를 와해시킬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의 개입은 이준석 대표의 적극 개입을 불렀다. 이 대표는 “한동훈-김문수 연대는 정말 충격적”이라며 “(한 전 대표가) 부정 선거론이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에 대한 입장 등도 같이 품어 안게 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고 했다.
이 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는 ‘한동훈’이란 이름을 가진 당원이 이 대표를 공격하며 국민의힘 게시판에 쓴 글을 정리한 표를 게시한 뒤 “제발 동명이인이길 바란다. 그게 아니면 너무 찌질하지 않냐”며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야 되는데 못하겠지요”라고 꼬집었다. 지난 16일엔 “당원 여론을 조작했다면 정계를 은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오세훈 서울시장은 유일하게 말을 아끼고 있다. 오 시장 측 관계자는 “당 내홍에 뛰어드는 건 적절치 않다”고 했다.
보수 진영에선 “지방선거가 가까워지자 헤게모니 싸움이 거세지고 있다”(국민의힘 중진 의원)는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의 선거 연대, 한 전 대표 등 비주류의 활동 공간 확대 여부 등 지방선거가 분수령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진영 내부 싸움으로 에너지를 낭비하면 대여 공세의 기회를 놓칠 수 있다”(야권 관계자)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