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통일부 지지”를 선언한 후 여권에 파장이 커지고 있다. 정 대표는 당내에 ‘한반도평화전략위원회’(가칭)를 설치하고 대표적 자주파 인사들을 위촉할 계획이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관계 접근 방식을 두고 정부 내 자주파와 동맹파의 힘겨루기가 팽팽한 상황에서 정 대표가 자주파에 크게 힘을 싣는 모양새다.
당 핵심관계자는 18일 통화에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문정인 연세대 명예교수를 비롯한 전직 통일부 장관을 모셔서 특위를 꾸리려 구상 중”이라며 “기존의 당 ‘한반도평화경제특별위원회’를 개편해 경제에 앞서 평화에 천착해보려고 한다”며 “한·미동맹만 부르짖는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방식으로는 대북관계를 풀기 어렵다”고 했다.
정 대표는 전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사사건건 미국 결재를 받아 실행에 옮기면 남북관계를 푸는 실마리를 꽁꽁 묶는 악조건에 빠져들 수 있다”며 “정동영 통일부의 정책적 선택 결정이 옳은 방향이고, 이를 지지한다”고 했다.
정 전 장관과 문 교수는 여권에서 ‘자주파’로 분류되는 대표적 인사다. 정 전 장관은 지난 9월 국회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세미나에서 “(대통령실에) 미국이 싫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고 생각하는 동맹파들이 너무 많다”고 언급했다. 정 전 장관을 비롯해 임동원·이재정·조명균·김연철·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은 16일 “(외교부가 주도한) 과거 한·미 워킹그룹 방식으로 대북정책을 협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성명을 냈다. 문 교수는 3일 한반도평화포럼에서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좌장을 국가안보실장이 아니라 통일부 장관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시도에 대해 당내에선 “정 대표가 외교·안보 문제에서도 색깔을 드러낸 것”(친명계 3선 의원)는 분위기다. “원래 정 대표가 자주파와 인식 체계를 공유하는 인사”라는 얘기다. 정 대표는 1989년 미 대사관저 농성에 가담해 2년 간 복역한 적이 있다. 정 대표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열린우리당 의장이던 2004년 17대 총선에 공천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당시 정 장관 지지 모임이던 ‘개나리 봉사단’에서부터 인연을 쌓았고, 8·2 전당대회에서도 2007년 정 장관이 대선에 도전할 때 결성된 ‘정동영과 통하는 사람들’의 지원을 받았다.
다만 한 지도부 인사는 “정 대표도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면서도 “대통령실 인사가 상대적으로 동맹파에 기울고 있어 국회에서 ‘자주’에 힘을 실어야 이재명 대통령의 협상력도 높아지는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정 대표는 지난 2일 케빈 김 주미대사대리를 접견하면서 “(한미 동맹은) 결코 깨질 수 없는 차돌같은 동맹”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민주당 86그룹(1980년대 학생운동권 출신)들은 “외교부 이러면 안 되죠”(지난 16일 박선원 의원) “외교부 주도의 북핵 접근은 한반도 비핵화 의제에서 우리 주도성을 약화시킨다”(지난 17일 이인영 의원) “외교부는 외교정책을 주로 하고, 남북관계는 통일부가 주도하는 게 맞다”(18일 조정식 의원)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모두 자주파에 힘을 싣는 말들이다. 반면 정보위 소속 한 민주당 의원은 “민주당이 ‘자주파’와 오래전부터 같은 인식을 공유해 진보 정당임은 맞지만, 여당이 부처 간 소통을 강화하는 데 힘써야지 갈등을 부추기는 데 나서는 건 잘못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