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미식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인 셰프 가운데 한 명이 박정현이다. 뉴욕 한식 파인다이닝 ‘아토믹스(Atomix)’를 이끄는 그는 올해 처음 발표된 ‘North America’s 50 Best Restaurants’에서 아토믹스로 1위에 오르며 다시 한번 이름을 알렸다. 미쉐린 가이드 2스타를 유지해온 아토믹스는 음식과 음료, 공간의 디테일이 조화를 이루는 레스토랑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런 박정현 셰프가 처음으로 한국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을 선보인다. 파트너는 루이 비통이다. 루이 비통이 지난 3일 공개한 ‘루이 비통 비저너리 저니 서울(Louis Vuitton Visionary Journeys Seoul)’의 마지막 층, 6층에 자리한 레스토랑 ‘JP at Louis Vuitton(이하 JP)’이 그 무대다. 브랜드의 아카이브와 문화, 예술, 미식을 하나의 동선으로 엮은 이 공간에서 박 셰프는 자신의 방식으로 요리를 풀어낸다. 1월 2일 오픈을 앞두고 준비가 한창이던 JP에서 만난 그는 “기존에 없던 경험을 할 수 있는 다이닝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셰프와의 일문일답.
Q : 루이 비통과의 협업 제안을 처음 받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일단 믿기진 않았어요(웃음). ‘왜 나에게 이런 연락이 왔을까’라는 생각했죠. 저는 그동안 뉴욕 프로젝트에만 집중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루이 비통이라는 브랜드와 함께라면, 기존에 한국에는 없던 레스토랑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Q : 그전에는 한국에서 레스토랑을 열 계획이 없으셨던 건가요.
“네, 없었어요. 다만 1년 전 서울 한남동에 연구소를 만들었어요. 제가 스스로를 ‘한식을 한다’고 표현하진 않지만, 한국인 셰프이고 자연스럽게 먹고 자란 음식이 한국 음식이잖아요. 제 요리에 그런 요소가 드러나고, 외국에서도 한국 재료를 많이 쓰는 레스토랑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그 깊이를 만들고 전달하려면 한국에서도 연구하고 공부하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Q : JP는 아토보이·아토믹스와 어떻게 다른가요.
“아토보이와 아토믹스가 저와 아내 박정은 대표의 이야기라면, JP는 ‘글로벌 언어가 무엇인가’를 많이 고민했어요. 루이 비통이 가진 정체성을 어떻게 해석할지 생각했고요. 그렇다고 모노그램이나 로고 같은 요소로만 표현하는 방식은 피하고 싶었어요. ‘서울에서만 가능하면서도, 루이 비통이 말해온 여행이라는 개념과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까’를 계속 고민했습니다.”
Q : 그 고민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었나요.
“저의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브랜드의 스토리도 중요하잖아요. 두 가지가 어떻게 함께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를 계속 생각했어요. 결국 중심에 둔 건 ‘서울’이었어요. 어디서든 살 수 있는 루이 비통이지만, 이 공간에서 경험하는 루이 비통의 문화는 무엇일지를 고민했고, 그 결과가 메뉴에 조금씩 드러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Q : 브랜드를 이해하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요.
“루이 비통을 생각하다 보니 결국 ‘여행’이라는 키워드로 돌아가게 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출장도 많고, 올해는 호텔에서 100박 이상 잔 것 같고 비행기도 60번 넘게 탔어요. 그런 여행에서 쌓인 감각들을 이 공간에서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았죠. 프랑스 파리에서 ‘LV 드림’을 방문해 막심 프레데릭 셰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초콜릿 공장도 둘러봤고요. 생트로페에 있는 루이 비통 레스토랑도 방문해서, 이 브랜드가 미식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직접 보고 느끼려고 했어요. 그걸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계속 고민했습니다.”
Q : 메뉴를 구성할 때 가장 신경 쓴 지점은 무엇이었나요.
“JP를 찾는 사람이 관광객이든, 서울에 계신 분이든 ‘글로벌하게 통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간장게장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많은 분이 궁금해하지만, 맛이 강해서 부담스러울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그 음식을 우리 다이닝의 톤 안에서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지를 고민했어요. 김이나 고추장 같은 재료도 직관적으로 튀기보다는, 안에서 자연스럽게 받쳐주는 역할로 쓰려고 했고요. 정체성은 분명히 가져가되,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봤어요.”
Q : JP를 한 문장으로 소개한다면요.
“한국에 기존에 없던, ‘원앤온리’ 다이닝 경험을 선사하는 레스토랑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Q : ‘원앤온리’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네요.
“서울에는 이미 정말 좋은 레스토랑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그 흐름과는 또 다른, 새로운 언어를 쓰는 공간이 무엇일지를 고민했어요. 외국에서 비즈니스로 처음 한국에 오신 분들이 기존의 한식 파인다이닝을 얼마나 편하게 받아들일지도 생각했고요. JP는 그보다는 조금 더 접근하기 쉬운 방향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Q : 서울이라는 도시는 요리에 어떻게 반영되나요.
“‘서울’이 가진 빠르고 에너지 있는 느낌이 음식으로 드러났으면 했어요. 조금 더 리듬감 있고, 활기가 있는 방향으로요.”
Q : 한식이 세계에서 지금보다 더 오래, 깊이 사랑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각자 역할을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셰프들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걸 둘러싼 환경도 같이 성장해야 하거든요. 식자재는 많이 좋아졌지만, 더 발전할 여지가 있고, 좋은 채소를 만들기 위한 종자 문제나 유통 구조, 제도적인 부분도 중요해요.
또 브랜딩이나 PR, 미디어 같은 영역도요. 미국에는 레스토랑 전문 PR 회사나 변호사, 회계사까지 있을 정도로 산업 구조가 촘촘한데, 한국은 아직 그런 부분이 크지 않아요. 셰프들의 역량은 이미 글로벌 레벨까지 많이 올라왔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그 외의 영역들이 같이 성장해야 한식이 일시적인 관심이 아니라, 오래 사랑받는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봅니다.”
Q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외국에서 한식에 관심 있는 셰프들의 문의가 많아요. 저는 그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한식 콘퍼런스나 교류도 계속 돕고 있고요. 이런 역할들이 쌓이면, 한국 셰프와 글로벌 브랜드의 협업도 더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