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당 원화가치가 1480원 안팎을 오가는 ‘환율 비상’에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18일 7대 수출기업을 불러 모아 협조를 구했다. 김 실장은 기업들에 “(원화 약세 상황으로) 작은 이익을 보려고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김 실장은 이날 서울 중구 은행회관빌딩에서 ‘외환시장 관련 수출기업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엔 삼성전자, SK, 현대차, LG, 롯데,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의 최고재무관리자(CFO) 등이 참석했다. 문신학 산업통상부 1차관, 윤성혁 산업정책비서관 등도 자리했다.
김 실장은 “지금은 연말이고, 보통 때보다 시장이 얕은(거래량이 많지 않은) 상황이라 작은 거래로도 충격이 클 수 있다”는 취지로 얘기했다. 연말 해외 외환시장이 연휴로 닫으면 원-달러 환율 변동 폭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김 실장은 홍콩·싱가포르 등 외국 금융시장에서 원화 약세가 오래갈 것에 ‘베팅’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7대 수출기업 CFO 등에게 “기업들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외국에서 정상적인 수준 이상으로 투자할 것도 아닌데 과다하게 (달러를) 유보하면 ‘(나중에 환차익으로) 이익 보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오해받지 않도록 해달라”는 취지로 말했다. 이어 “작은 이익을 보려고 하지 마시고, 본업에 충실해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회의를 개최하기에 앞서 각 기업들에 올해 남은 기간과 내년 1~2월 환전계획 자료를 요청했다. 또 올해 연간 수출액, 내년 해외 투자 규모와 투자금 조달 방안, 환헤지 전략도 요청했다. 수출 대기업의 외환 전략에 따라 연말·연초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있기 때문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자료를 요청한 것이다.
이날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금융감독원도 움직였다. 공동으로 ‘외환 건전성 제도 탄력적 조정 방안’을 내놨다. 은행과 수출기업이 달러를 시장에 풀도록 유도하는 각종 조치를 내놨다.
우선 수출기업에 대한 달러 대출도 늘리기로 했다. 현재 수출기업은 국내 시설 자금 목적의 외화대출만 가능한데, 이를 급여 등 운전자금 목적의 대출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또 정부는 시중은행이 외환시장에 달러를 적극적으로 공급할 수 있도록 ‘달러 비상금’ 부담을 줄인다. 금융사는 위기 상황을 가정해 일정 수준 이상의 외화를 쌓아두고, 외화 확충계획도 세워 당국에 보고하는 의무가 있다. 이를 내년 6월 말까지 한시적으로 미룬다.
정여진 기재부 외화자금과장은 “현장에서 은행이 불필요하게 쌓아두고 시장에 내놓지 않는 달러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며 “규제 부담이 줄면 묶여 있던 유동성이 시장에 공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은행 국내 법인의 선물환포지션 비율 규제도 기존 75%에서 200%로 완화한다. 해외 본점 등을 통해 달러를 들여와 국내에 풀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외국인 통합 계좌 개설 활성화를 추진한다. 외국인 개인투자자도 별도의 국내 증권사 계좌 개설 없이 현지 증권사를 통해 한국 주식을 바로 거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금융감독원도 이날 해외 주식 거래와 관련해 증권사들과 간담회를 열고 수수료 무료 같은 해외 투자 마케팅 자제를 요청했다. 이찬진 금감원장이 “투자자 보호를 뒷전으로 한 채 단기적 수수료 수입 확대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다.
금융당국의 이런 압박에 증권사들은 신규 가입 시 해외 투자 지원금 제공과 수수료 무료 등 관련 이벤트를 중단할 예정이다. 기존에 진행 중인 마케팅 역시 법률 검토를 거쳐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기에 종료하게 된다
한편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값은 주간 종가를 기준으로 하루 전보다 1.5원 오른(환율 하락) 1478.3원에 마감했다. 전날엔 장중 한때 1480원을 넘기도 했다. ‘외환위기급’ 환율에 정부는 전방위 대응에 나섰지만 시장의 불안을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