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아그네스’ ‘사의 찬미’ ‘명성황후’…. 19일 69세를 일기로 별세한 윤석화는 그 이름이 하나의 장르로 불렸던 연극계 1세대 스타 배우다.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75년 민중극단의 연극 ‘꿀맛’으로 데뷔하고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1987), 뮤지컬 ‘사의 찬미’(1990), 연극 ‘프쉬케’(1991), 연극 ‘덕혜옹주’(1995), 뮤지컬 ‘명성황후’(1996) 등에 출연했다. 1998년에는 오페라가수 마리아 칼리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 ‘마스터 클래스’로 그 해 최연소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특히 1983년 10개월 최장기 공연과 최다 관객동원의 신화를 남긴 화제작 ‘신의 아그네스’는 윤석화의 대표작으로 불린다. ‘예약 없이 볼 수 없는 연극’으로 당시 침체되어있던 연극계에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윤석화 이후 신애라·김혜수 등 쟁쟁한 여배우들이 아그네스 역을 맡을 때마다 화제가 됐다. 1992년 고 임영웅 산울림 대표가 연출한 모노드라마 ‘딸에게 보내는 편지’ 에도 출연해 소극장 매진 신화를 썼다.
고인은 자신의 명성을 연극계를 알리는 도구로 사용했다. 1999년 공연예술전문 월간지 ‘객석’을 인수하며 발행인 역할을 했다. 인수 전엔 ‘객석’의 뉴욕특파원으로 현지에서 수많은 공연을 보며 연극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쌓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2002~2019년에는 서울 대학로의 대표적인 소극장이던 ‘설치공간 정미소’를 운영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본격적으로 제작과 연출로도 발을 넓혔다. 뮤지컬 ‘토요일 밤의 열기’를 연출했고 제작에 참여한 ‘톱 해트’는 영국 로렌스 올리비에상을 받았다. 2011년에는 연극 ‘여행의 끝’을 공동제작해 영국 웨스트엔드 최초의 한국인 공연제작자로 이름을 남겼다.
고인은 이렇게 연극과 뮤지컬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이유를 “스무 살에 우연이었지만 마치 필연처럼 연극을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2004년에 펴낸 『작은 평화-윤석화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다.
윤석화의 스무 살, 사회생활의 시작은 CM송 가수였다.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등 아이스크림과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 드려요’의 오란씨 등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유명 광고 노래를 불렀다. 그러던 중 광고회사 사무실 옆에 있던 민중극단 사무실에 놀러갔다가 연극을 접했다. 고등학교를 졸업 무렵,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봤던 기억이 그를 자극했다.
고인의 과거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미국에서 막 귀국한 연출가 정진수의 권유로 ‘꿀맛’에 출연한 것이 인생을 바꿔놓았다. “연극을 통해 내 나름대로 관객에게 의미와 질문을 던지고, 관객은 다양한 대답을 한다. 좋은 질문은 그 너머까지도 볼 수 있고 그 뒤안길도 보게 한다”며 연극의 매력을 전했다.
연극계 1호 스타가 되면서 고인은 죽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고도 회상했다. 2008년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의 연극배우로는 스타가 없었다가 생긴 것이라 반감이 있었던 것 같다. 지속적으로 열심히 노력하는 데도 단지 관객이 많다는 이유로 저를 상업주의로 매도하는 것이 가슴 아팠다. 내가 크리스천이 아니었다면 벌써 눈을 감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성경을 통해 어떤 고난도 결국 유익할 것이라는 걸 배웠고 좋은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털어놨다.
특히 그가 초연해 ‘명성황후’의 원형 캐릭터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을 땐 개인적으로 크게 힘들었던 시기와 겹쳤다. 미국에서 인공수정을 시도할 때였는데 작품을 위해 아이를 포기하면서까지 힘을 쏟았다. 엄마가 되고 싶다는 윤석화 개인적 바람은 입양으로 이어졌다. 촬영차 방문했던 서울 연희동의 동방사회복지에서 만난 유난히 우는 남자아기에 마음이 끌려 후에 입양을 결정해 첫 아들 수민을 만났고, 둘째 수화 또한 자연스럽게 입양하게 됐다고 한다.
입양 이후 고인은 사회복지에 관심을 쏟았다. 연극인생 30주년 기념공연 ‘어메이징 그레이스’(2006) 수익금을 국내 입양기금과 미혼모의 집 건립을 위해 써달라고 기부했다. 동방사회복지회에 따르면 지난해에도 수익금 전액 기부하는 자선콘서트 ‘만남’을 성공적으로 열어 기부금을 전달했다. 지난해 ‘만남’은 2003년 첫 시작된 이래 7번째 열린 공연이었다. 윤석화는 “배우를 넘어서 사람으로서 제대로 된 일을 한 것 같다는 뿌듯함이 있다. 남은 생은 배우로서는 천천히, 나눔에 있어서는 무모하게 가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고인은 학력 위조 파문에 휩싸이기도 했다. 활동 초기 ‘이화여대 생활미술학과 출신’이라고 적힌 이력을 바로잡지 못해 소문이 커졌고, 2007년 문화예술계 학력위조 문제가 불거지면서 스스로 학력이 위조됐음을 털어놓았다. “어쩌면 지금이 내가 평생 잊으려고 애써왔던, 또 내 마음 속의 늘 짐이었으나 용기가 없었던 문제를 털어놓을 기회라고 생각했다. 거기서 자유로워지고 싶었다”고 월간중앙에 말했다.
고인은 마지막까지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했다.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 시즌3’(2021), 2022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블랙의 신부’(2022)에서 열연했고 연극 ‘토카타’(2023)에 뇌종양 투병 중 5분 우정출연으로 화제를 남겼다.
19일 연극계에 따르면 그간 악성 뇌종양 투병을 해온 윤석화는 이날 오전 9시 54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유족과 측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남편 김석기씨,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될 예정이다.